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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닥치고 이재용 사면론의 배경 / 김경락

등록 2021-04-27 15:09수정 2021-04-28 02:36

김경락 ㅣ 산업팀장

“통(대통령)이 정말 이렇게 발언?”

“네, 맞습니다.”

지난달 30일 밤 11시가 막 지난 즈음.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청와대 담당인 이완 기자에게 문자메시지를 넣었다. 늦은 시각 느닷없는 물음에도 불쾌한 기색 없이 후배는 문재인 대통령의 국무회의 머리발언과, 회의 뒤 청와대 브리핑 내용을 보내왔다. 뜯어보니 보수 언론이 대통령 발언을 왜곡했다고 볼 여지는 없었다. 난감했다.

진위 확인을 하려 한 발언은 이렇다. “그동안 신용이 높은 사람은 낮은 이율을 적용받고, 경제적으로 어려워 신용이 낮은 사람들이 높은 이율을 적용받는 구조적 모순이 있었다.” ‘구조적 모순’에 숨이 막혔다. 시장 맹점을 보완하기 위해 공공자금에 뿌리를 둔 저신용자를 위한 저리 대출이나 연체 채무 탕감 등 정부의 공적 기능 강화를 촉구하는 발언으로 선해하기 어려웠다.

이 발언은 국무회의에 앞서 기자들에게 배포한 머리발언 자료에는 없었다. 청와대 부대변인의 회의 뒤 브리핑에 담겼다. 회의 내용을 기계적으로 갈무리한 ‘청와대 입’의 단순 전달인지, 문 대통령의 기묘한 금리관을 확인 사살하기 위해 부러 브리핑에 담은 것인지, 아니면 임기 말에 접어든 청와대 ‘게이트키핑’ 시스템에 구멍이 나 빚어진 촌극인지 알 길이 없었다.

하루 지난 뒤 금리 정책과 관련 있는 금융당국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여당 의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구조적 모순’을 타개하기 위한 정책을 입안하는지 물었다. “뭘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나. 김 기자도 진지충이야”란 핀잔 섞인 반응과 함께 이런 얘기도 나왔다. “(나도) 보도를 보고 너무 이상해서 발언 사실부터 확인했다. 정제되지 않은 발언을 청와대가 브리핑을 통해 소개한 이유는 모르겠다.” ‘진지충’은 그 그룹 내에도 있었다.

2018년 4월 문 대통령이 밑도 끝도 없이 “(금융은) 근본적으로 개혁이 필요한 분야”라고 말할 때만 해도 그 지향점을 놓고 관료 사회와 시장에선 저마다 ‘주석 달기’라도 했다. 이번에는 이마저도 없었다. 엄중히 검토되고 치밀한 준비 속에 나와야 할 대통령 메시지가 해프닝이 되는, 아니 해프닝이 되어야만 하는 게 지금의 씁쓸한 현실이다.(청와대 부대변인은 페이스북 ‘개인’ 계정에 대통령 말을 잘못 옮겼다고 시인했다. 그는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해프닝이 반복되면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낮아진다. ‘촛불 정부’를 자임하며 ‘적폐 청산’을 외쳐온 정부가 자칫 조롱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면론에서 그 징후가 읽힌다. 반도체 품귀를 ‘기회’ 삼아 삼성 등 재계 일각에서 익명을 전제로 나온 주장은 그렇다 치더라도, 종교계의 탄원에 이어 경제 5단체 공동 요구로까지 사면론은 세를 키워가고 있다. 이곳저곳에서 ‘닥치고 사면’을 노래한다.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온 지 4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데다 또 다른 범죄 혐의로 1심 재판이 막 시작한 시점에 터져 나온 ‘이재용 사면론’은 현 정권과 이를 이끄는 문 대통령을 조롱하는 듯하다. 현 정권 사람들이 가장 각을 세워온 이명박 전 정부 때 ‘이건희 원포인트 사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전 대통령은 법원 판결 4개월이 지난 시점인 2009년 12월 “평창이 올림픽을 반드시 유치하기 위해서는 이 전 회장의 활동이 꼭 필요하다는 체육계 전반, 강원도민, 경제계의 강력한 청원이 있었다. 국가적 관점에서 사면을 결심하게 됐다”며 헌정사상 첫 원포인트 경제인 사면을 단행했다.

사면 공동 건의에 참여한 한 경제단체 간부는 이렇게 말한다. “경총에서 요구해 (우리도) 도장을 찍어줬다. 흐름이 그리 가고 있지 않나.” 그가 말한 ‘흐름’은 뭘까. 이 흐름을 삼성이 만든 것일까, 혹시 스스로 취약성을 드러내는 현 정권에서 시작된 흐름은 아닐까. 다시 궁금증이 인다.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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