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희 감독의 영화 <귀로>의 한 장면. 당시 영화는 성우의 더빙을 통해 남녀의 억양이나 말투 차이를 과장하며 고정된 성역할을 반영했다. 영화 스틸컷
ㅣ로버트 파우저 언어학자
1982년 여행자로 처음 한국을 접한 뒤 서울의 옛 모습을 보여주는 영상을 흥미롭게 찾아보곤 했다. 1967년 이만희 감독의 영화 <귀로>도 그중 하나였다. 한창 개발 중인 서울의 모습은 예술적으로 그려졌고, 콘크리트 보행로, 지하도, 고가도로 등은 미래 건축물 같았다. 남녀 배우의 대사나 억양 역시 기억나는데 남자들의 굵직하고 권위적인 말투, 여자들의 높은 어조에 귀여운 목소리가 우습기까지 했다. 같은 시기 미국 영화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1961년 작품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남녀 배우 말투는 가짜 뉴욕 사투리 같아서 더 우스웠다. 1980년대 이미 그런 영화를 보며 우습다고 생각했으니 지금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우습다’는 느낌은 수십년 사이 일어난 언어 변화를 드러낸다. 변화의 원동력은 사회 변화다. 사회가 변하면서 성별에 따른 표현과 어조 차이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1960년대 양국은 여러모로 달랐지만 남자는 사회 활동을 하고, 여성은 가정을 지킨다는 고정관념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현실의 반영이라기보다 사회에서 제시하는 이상적인 관념에 불과했다. 1960년대만 해도 전문직 비중은 낮긴 했어도 사회 활동을 하는 여성은 이미 많았다. 그러나 영화 속 남녀의 말투는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에 매우 충실했다. 물론 지금은 다르다. 여성의 사회 활동이 일반화되고 전문직 비중도 높아지면서 이제는 남녀의 억양 차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일은 상상할 수도 없다. 2021년에 제작하는 어떤 영화에서도 <귀로>나 <티파니에서 아침을> 같은 남녀 배우의 목소리를 들을 일은 전혀 없다.
이러한 변화는 비단 영화 속 이야기만이 아니다. 언어에서의 성 정체성 변화는 훨씬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남성과 여성을 이분법으로 뚜렷하게 나누는 기준에서 벗어나려는 논바이너리(Non-binary)의 언어 사용은 주목할 만하다. 비교적 성별 차이가 없는 영어를 예로 들어보자. 여성은 ‘she/her’, 남성은 ‘he/him’이다. 논바이너리는 남녀 모두 3인칭 복수 ‘they/their’로 지칭한다. 이미 2019년 저명한 메리엄웹스터(Merriam-Webster) 사전에 등재되었다. 이런 기조의 연장으로 최근에는 에스엔에스(SNS)에서 ‘올바른’ 용어 사례도 늘어나고 있는데 새로운 논바이너리 대명사 ‘xe’, ‘Ms’와 ‘Mr’가 아닌 ‘Mx’ 등이 대표적이다.
영어 외의 다른 언어들은 어떨까. 논바이너리를 위한 새로운 단어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은 대명사는 물론 모든 명사마다 젠더가 있다. 명사에 붙는 관사와 형용사 역시 명사의 젠더를 따른다. 독일어, 러시아어 등은 남성과 여성에 중성도 있다. 이 가운데 스페인어를 예로 들어보자. 논바이너리들은 남성 대명사인 ‘él’과 여성 대명사인 ‘ella’를 섞는다. 여성 대명사 ‘ella’의 마지막 글자 ‘a’를 ‘e’로 바꿔 ‘elle’라는 새로운 논바이너리 대명사를 만들어 쓰는 식이다. 이뿐만 아니다. 스페인어에서 젠더는 보통 여성 단어가 ‘a’로, 남성 단어는 ‘o’로 끝나는 차이가 있다. 이러한 특징을 고려하여 모든 명사 끝에 ‘a’와 ‘o’ 대신 성별을 드러내지 않는 ‘e’로 바꾸는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시작은 2010년대 말 아르헨티나 젊은이들로부터였다. 단지 논바이너리에 대한 배려라기보다 스페인어에 내재된 젠더 구분을 없애려는 변화의 움직임이었다. 아직은 에스엔에스 등을 통해 젊은이들 사이에 확산하고 있는 단계이긴 하지만 이 움직임이 성공한다면 스페인어는 영어처럼 성별이 적은 언어가 된다.
여러모로 눈여겨볼 만한 현상이다. 언어 변화의 원동력은 사회 변화를 주도하는 젊은 세대로부터 비롯한다. 유연한 사고를 장착하고, 고정관념으로부터 벗어나려 애쓰며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것은 젊음의 특권이자 특징이다. 젊은이들이 나섰으니 어쩌면 언어에서의 젠더는 생각보다 더 빨리 사라질지도 모른다.
1980년대 한국 여학생들은 남학생 선배를 ‘형’으로 불렀다. 비록 ‘형’은 한국 사회에 정착하지 못했지만, 나는 그 여학생들의 패기가 이후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의 자리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아르헨티나 젊은이들의 에스엔에스에서 ‘e’로 끝나는 단어를 볼 때마다 그때 그 여학생들의 패기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