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파우저 | 언어학자
지난 2023년은 ‘언어 통제의 해’였던 듯하다. 언어 사용과 교육을 둘러싼 논쟁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몇가지 예를 들어보자.
우선, 언어 ‘사용’에 대한 논쟁이다. 일상생활에서 실제로 사용하는 말과 글은 사회적 영향을 많이 받긴 하지만 개인의 성격을 무엇보다 많이 드러낸다. 그 사용의 방식도 매우 다양하다. 이를 둘러싼 논쟁이 낯선 건 아니지만, 지난해에는 젠더부터 전쟁까지 수많은 사회적 현상을 둘러싼 언어 사용 논쟁이 벌어졌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 직후 미국 대학에서는 양쪽을 지지하는 시위가 산발적으로 벌어졌다. 시위 구호를 놓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핵심은 ‘학살’이었다. 상대방을 공격하고 자신들의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서로를 향해 학살의 주체라며, ‘학살’을 언어적 무기로 썼다. 미국 국회에서는 지난달 5일 대학 총장 몇을 불러 청문회를 열었다. 한 공화당 의원이 하버드대 총장에게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학생단체 구호 관련 질문을 던졌다. ‘그 학생단체의 주장에 반대하지만, 유대인을 학살하자는 것은 해석 나름’이라는 총장의 답은 커다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총장 자리에서 물러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셌지만 대학 이사회는 해임하지 않았다. 하지만 2일 그는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또 하나는 이민자 언어 관련 논쟁이다. 최근 ‘글로벌화’에 대한 공감이 약해지면서 이민에 싸늘한 시선을 보내는 나라가 부쩍 늘고 있다. 시작은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우익으로부터라지만, 점차 주류 여론으로 진입 중이고, 이민자와 외국인 노동자들이 사회통합을 해칠 수 있으니 문화가 비슷하거나 통합 의지가 강한 이들만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런 의지 확인법의 하나로 언어가 등장했다. 자신들의 국어 또는 다수가 사용하는 언어를 적극적으로 배우려는 이들만 받아들여야 한다는 정책이 등장한 것이다.
캐나다에서도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퀘벡주는 실제로 외국인 노동자가 3년 비자를 갱신하려면 프랑스어 구두시험을 통과해야 한다는 법을 도입했다. 통과하지 못하면? 비자 갱신은 불가능하다. 여러 선진국처럼 퀘벡주 역시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필요한데 대부분 이민자는 프랑스어가 아닌 영어에 관심이 더 크다. 하지만 프랑스어를 주로 쓰는 퀘벡주의 대다수 사람은 영어를 더 많이 쓰는 이주민들이 늘어나면서 자신들의 지역이 영어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그래서 이 문제에 매우 예민하다.
국가 관련 논쟁도 빼놓을 수 없다. 꽤 오래된 논쟁으로 이미 19세기 이후 유럽에서 민족주의가 강해지면서 나타났다. 핵심은 국가 언어, 지역 언어, 소수민족 언어의 사회적 역할이다. 국가의 힘이 강력했을 때는 ‘국어’를 강제로 보급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 이후 인권 침해로 여겨지면서 지역 또는 민족어 사용은 인간의 고유한 권리라는 해석이 정착되었다.
그런데 이를 둘러싼 논쟁이 다중언어국가인 스페인에서 등장했다. 현재의 중도좌파 정부가 연임을 위해 바르셀로나를 포함한 카탈루냐 지역주의 세력과 손을 잡았다. 스페인에서는 스페인어를 ‘주언어’로 지정했지만, 1970년대 민주화를 통해 지역 언어를 인정하고 교육현장에서 그 교육과 사용을 허용해왔다. 그런데 지난해 그 지정이 삭제되었고, 논쟁이 이어졌다. 스페인어의 주언어 지정이 사라지면, 지역어 교육이 강한 카탈루냐에서는 스페인어가 점차 사라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스페인의 국가통합이 약해질 거라는 주장이 보수층을 중심으로 제기되었다.
하버드대 총장의 ‘학살’에 대한 해석, 퀘벡주의 외국인 노동자 프랑스어 실력, 스페인어의 ‘주언어’ 삭제에 대한 우려 등의 공통점은 뭘까. 한마디로 ‘언어 통제’다. 다른 사람이 사용하는 말을 특정한 목적을 위해 통제하는 행위. 이런 현상이 지금 당장은 그들의 일로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행위가 확산이 된다면 오늘날 우리가 가진 언어 사용의 자유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이는 곧 머릿속까지 누군가로부터 지배당한다는 의미다. 새해 연초부터 무거운 주제지만,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볼 일이 여기 또 하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