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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허버허버 / 김진해

등록 2021-04-12 04:59수정 2021-04-12 08:50

김진해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반대말이 없는 단어를 찾고 있어.” 아는 시인이 말했다. 기발하고 ‘기특한’ 상상이다. 나는 그를 ‘기특하다’고 했는데, 아마 당신은 그가 나보다 어린가 보다고 짐작할 것이다(실은 한참 위). 반대로 한 학생이 나를 ‘똑똑하다’라고 평하는 걸 보고, 맞는 말인데도(!) 기분은 상했었다. 밴댕이 소갈머리 선생은 ‘맹랑한 녀석’이라며 찡얼댔다. 어디에도 안 나오지만 안다. ‘표독스럽다’, ‘교태를 부리다’, ‘꼬리를 치다’가 누구를 향하는지 다 안다.

허버허버. “‘남자’가 음식을 급하게 먹을 때 내는 소리나 그 모양”을 뜻하는 새말. ‘남자’만을 지목하기 때문에 남성혐오라는 항의가 잇달았다. 무심코 이 말을 쓴 유명 ‘남성’ 유튜버는 ‘저는 절대 절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며 고해성사를 하고, 카카오톡에서는 이 말이 들어간 이모티콘을 판매 중지하면서 남성혐오 의도가 없다는 해명을 했다.

이 말의 기원이 ‘남자’만을 지목할지는 몰라도, 계속 그러기는 힘들 것이다. 다른 흉내말을 봐도 남녀를 구분하지 않는다. ‘깔짝깔짝, 깨지락깨지락, 꼭꼭, 오물오물, 우걱우걱, 질겅질겅, 쩝쩝, 후루룩’(‘냠냠’ 정도가 ‘아이’를 가리킨다).

사람이 미우면 뭘 먹을 때가 제일 얄밉다. 게다가 ‘허버허버’ 먹는다면 더 얄밉다. ‘기분 나쁘니 쓰지 말라’는 건 손쉬운 반응이긴 한데 문화적이진 않다. 반대말을 만들거나 새 의미를 덧붙여서 그 표현이 갖는 효력을 회수하는 방식이 좀 더 ‘기특한’ 방식이 아닐지.

그래도 말에 상처받았다고 말하는 남성이 늘어난다는 건, 멀리 보았을 때는 좋은 징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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