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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서경식 칼럼] 은퇴기

등록 2021-03-25 14:58수정 2021-03-26 02:41

미얀마 시민에 대한 군의 폭행 장면을 보고 반사적으로 생각했다. ‘아, 이건 광주다.’ 부상당한 데모대를 구조하려던 구급차에서 구급대원 3명을 군인들이 끌어내려 곤봉과 총대로 마구 두들겨 패는 장면이었다. 그 구급대원들은 어떻게 됐을까. 목숨은 건졌을까. 무도한 폭력이 미얀마뿐만 아니라 홍콩, 타이, 벨라루스, 러시아 등에서 일상적으로 되풀이되고 있다. 정치폭력이 ‘역병처럼’ 세계에 만연해 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시대인가.

서경식ㅣ도쿄경제대 교수, 번역 한승동(독서인)

이번 칼럼은 사적인 얘기부터 쓰는 걸 양해해주시기 바란다. 무슨 일이든 시작하는 것보다 매듭짓는 것이 더 어렵다. 나는 3월 말로 20년간 일해온 도쿄경제대학을 정년퇴직한다. 만 70세가 됐다.

꼭 20년 전에 나는 이 대학에 채용됐다. 그때까지 정규직이 돼본 적 없던 나는 ‘인권과 마이너리티(소수자)’라는 신설 과목을 맡게 됐던 것이다.(나중에 ‘예술학’도 함께 담당)

난생처음 연구실이라는 것을 배당받고 그때까지와는 달리 혜택받는 대우에 오히려 당혹스러워했던 걸 기억한다. 노동조합 간부가 나를 찾아와 가입을 권유했다. 나는 문필가 지망의 고립된 비정규직 마이너리티였기에, ‘조합’이 존재하는 조직에 내가 속하리라고 그때까지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것이 많은 재일 조선인 앞에 놓인 현실이었다. 지금도 기본적으로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1974년의 히타치 취직차별사건 원고 승소까지는 일본 대기업의 민족차별은 당연한 것이었다. 1977년 최고재판소(한국의 대법원)가 김경득씨의 사법연수생 임관을 인정하기까지는 재일 외국적자는 변호사가 될 수 있는 길이 없었다. 내가 40살이 된 1991년까지 공무원 국적조항 때문에 일부 기술직을 제외하고는 공립학교 교원이 될 수도 없었다. 그것은 국공립대학에서도(오직 기술적인 분야로 분류되는 이과계 분야만 빼고) 기본적으로 마찬가지였다. 사립대에서는 재일 외국인 채용 사례가 있었으나 많지는 않았다. 대다수 재일 조선인이 영세기업에서 일하거나 음식·유흥업 등의 자영업을 하는 예가 많은 것은 그 때문이다.

이과계로 가라는 부모님의 얘기를 듣지 않고, 나는 프랑스 문학이라는 ‘밥 벌어먹기 어려운’ 길을 택했다. 원래 문학을 좋아했기 때문이기도 했으나 그것 외에 달리 선택지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럭저럭하다가 언젠가 조국이 통일되고 민주화되면 나 같은 재외동포도 뭔가 보람 있는 일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치기 어린 기대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모국 유학을 간 두 형을 박정희 군사정권이 투옥하면서 그런 기대에도 찬물을 끼얹었다.

형들이 1980년대 말에 살아서 출옥한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으나 이미 40살이 가까웠던 나 자신의 미래상은 막막하고 불투명했다. 다만 고맙게도 당시에는 형들을 비롯한 한국 정치범 구원 운동이나 한국 민주화 연대 운동에 공감해준 일본인들이 많이 있었다. 그분들이 나를 응원하고 이끌어주었다. 그중에서 내가 직접 말씀을 들을 수 있었던 분들 중 일부만이라도 존함을 들어 기념하고자 한다.(이하 경칭 생략) 목사 쇼지 쓰토무, 정치사상학자 후지타 쇼조, 사회학자 히다카 로쿠로, 철학자 고자이 요시시게, 역사학자 야마다 쇼지,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 평론가 가토 슈이치, 이와나미서점의 잡지 <세카이>(세계) 편집장(나중에 사장) 야스에 료스케 등이며, 게다가 실제로 구원 운동에 참여해주신 분들은 말할 것도 없다.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이는 지금의 일본 사회 상황에서라면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그 시대의 공기가 그 뒤에도 유지되고 커졌다면 일본 사회는 지금과 같진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앞서 얘기한 선생님들의 격려와 조언을 들으며 나는 간신히 글을 쓰고 있었으나 그것이 세인들의 눈에 들게 됐다. 복수의 사립대학에서 10년 가까이 비상근 강사로 일한 뒤 1990년대 말 도쿄경제대학이 내게 말을 걸어 왔다. 나는 물론 내 행운을 기뻐했지만, 그것이 단순한 ‘행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도 늘 의식하고 있었다.(형들의 투옥 결과라고 생각하면 ‘행운’이라고 하기도 꺼려진다) 나보다 능력 있고, 성실한 재일 조선인 동포들이 불합리한 상황이나 불우 때문에 닳고 닳다가 찌부러져가는 모습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대학 노동조합의 권유를 받았을 때, 그것을 마치 예상외의 ‘특권’인 것처럼 느꼈던 것은 이런 사정 때문이었다. 하지만 일본 전체로 보면 노조 조직률은 계속 하락하고 있고 조합운동의 보수화 경향은 멈출 기색이 없다. 안정된 기업에 정규직으로 취업할 수도 없고 ‘조합’에 가입할 수도 없는 사람들이 지금 오히려 늘고 있다. 그들 다수는 여성, 재일 외국인, 뭔가의 핸디캡을 안고 있는 사람들, 즉 ‘마이너리티’이다. 코로나 재난 중에 실직해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여성과 아이들의 자살률이 급증하고 있다. 나는 노동조합이 자신들의 권리에 민감하면서 동시에 그에 못지않은 마이너리티의 권리에도 민감하기를 바란다.

도쿄경제대학 재직 중에 내가 관여한 여러 이벤트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로 2003년 7월12일의 특별강연회 ‘‘교양’의 재생을 위하여’가 있다. 가토 슈이치씨와 시카고대학 교수 노마 필드씨를 강사로 초빙해 내가 사회를 봤다. 그 기록은 한국에서는 <교양, 모든 것의 시작>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간행됐다. 내가 고교생이었던 1960년대 말, 세계는 베트남 반전운동의 한복판에 있었다. 가토씨는 당시 캐나다의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으면서 북미 지역의 반전운동에 대한 논평을 발표했다. 가토씨에 따르면, 학생들이 먼저 반전운동을 시작했으나 교수들은 엉덩이가 무거웠다고 한다. 학문의 문제로서 전쟁을 저지할 가능성을 생각하면 그것은 곤란하다는 답밖에 나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베트남 농민들의 머리 위에 네이팜탄이 쏟아져 내리는 현상에 눈을 감을까 말까라는 윤리적인 질문, 인간적인 상상력이야말로 사람들이 운동에 나서도록 만들었다고 가토씨는 말했다.

그것은 내게 인생의 가치를 ‘승패’로 결정해선 안 되며, 행동의 원리를 ‘승산의 유무’에 두어서는 안 된다는 귀중한 가르침이 돼, 대학교원 생활을 하는 데에도 중요한 교훈이 됐다. 가토씨를 비롯한 일본의 ‘선한 지식인’들로부터 받은 지적 은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소수의 ‘선한 지식인’들로부터 배운 것의 하나는 ‘관용’이라는 사상이다.

‘관용’이란 자기만족적으로 높은 곳에 서서 타자를 연민하는 태도가 아니다. 생생한 인간적 관심을 갖고 ‘다양성’에 마음을 여는 것이다. 일본 사회는 오늘날까지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관용적인 사회가 되는 데에 실패해왔다. 이것은 단지 살기 어렵다는 차원에 그치지 않고, 일본과 일본인에게(세계에도) 매우 위험한 것이기도 하다.

지금 세계를 뒤덮은 불안은 ‘코로나 재난’뿐만이 아니다. 나는 일전에 미얀마 시민에 대한 군의 폭행 장면을 뉴스 영상으로 보고 반사적으로 생각했다. ‘아, 이건 광주다.’ 부상당한 데모대를 구조하려던 구급차에서 구급대원 3명을 군인들이 끌어내려 곤봉과 총대로 마구 두들겨 패는 장면이었다. 그 구급대원들은 어떻게 됐을까. 목숨은 건졌을까. 그 뒤의 일은 모른다. 이런 무도한 폭력이 미얀마뿐만 아니라 홍콩, 타이, 벨라루스, 러시아 등에서 일상적으로 되풀이되고 있다. 정치폭력이 ‘역병처럼’ 세계에 만연해 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시대인가.

다음 대통령 선거까지 앞으로 1년. 한국이 저 암흑시대로 되돌아가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정년 뒤 조용한 은퇴 생활을 바라는 마음이 절실하지만, 세계는 그것을 허용해줄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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