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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최우리의 비도 오고 그래서] 여성에게 더 위협적인 기후위기

등록 2021-03-07 12:51수정 2021-03-08 02:36

최우리 ㅣ 디지털콘텐츠부 기후변화팀 기자

6년 전 국제구호개발단체 굿네이버스와 함께 인도 남부 도시 벵갈루루의 물 부족 지역을 다녀왔다.(<한겨레> 2015년 3월25일치 14면) 물을 길으러 호수에 가다 곰에게 습격을 받아 팔과 다리를 다친 한 주민은 “몇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도에 머문 5일 동안 비를 맞은 기억은 없었다. 그때 만났던 8살 소녀 아차나는 가족들을 대신해 동생들을 데리고 자신의 몸통만한 항아리를 들고 왕복 30~40분 거리의 약수터까지 물을 받으러 걸었다. 그의 가는 허리는 물통 모양대로 둥글게 휘어 있었다.

2015년 3월 중순 인도 남부 도시 벵갈루루의 한 물 부족 마을에서 만난 8살 소녀 아차나는 가족들이 마실 깨끗한 물을 뜨기 위해 수돗가까지 매일 30~40분씩 걸어다녔다. 기후위기로 인한 젠더 문제는 저개발국가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만, 기후위기로 사회 혼란이 심해지면 모든 지역에서 아동과 노인, 그리고 여성이 먼저 희생될 수 있다. 인도 벵갈루루/최우리 기자
2015년 3월 중순 인도 남부 도시 벵갈루루의 한 물 부족 마을에서 만난 8살 소녀 아차나는 가족들이 마실 깨끗한 물을 뜨기 위해 수돗가까지 매일 30~40분씩 걸어다녔다. 기후위기로 인한 젠더 문제는 저개발국가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만, 기후위기로 사회 혼란이 심해지면 모든 지역에서 아동과 노인, 그리고 여성이 먼저 희생될 수 있다. 인도 벵갈루루/최우리 기자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는 남성과 여성 중 누구에게 더 클까. 지난해 10월 기후변화 관련 데이터를 다루는 영국 언론사 ‘카본 브리프’는 2016년 11월 ‘글로벌 젠더 기후 연대’(GGCA)가 ‘젠더와 기후변화’ 보고서를 통해 발표한 데이터를 토대로 추가 분석을 했다. 그 결과 130개의 연구 중 89개(68%) 연구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기후변화로 인한 영향을 더 많이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발표했다. 예를 들어 프랑스나 중국, 인도에서는 폭염으로 인해 여성이 더 위험했고, 방글라데시와 필리핀은 태풍으로 여성과 소녀들이 사망할 가능성이 높았다. 남성이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결론이 나온 연구는 30개, 성별 차이를 발견하지 못한 연구가 11개였다. 연구자들은 “이 결과는 여성의 사회적 위치를 반영한 결과”라며 “기후변화가 성별로 인한 불평등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기후변화가 성별을 따진다니, 쉽게 그림이 그려지지 않을 수 있다. 미국 텍사스 한파에서 보듯 선진국형 사회는 저소득국가보다 여성의 피해가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택배·건설 등 야외노동자를 포함해 석탄발전과 내연기관차 관련 노동자 대부분이 남성이라는 점에서 한국에서도 남성 노동자의 일자리가 기후변화로 더 위협받는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기후변화는 현실의 모순과 이중으로 여성의 삶을 옥죌 수 있다. 아차나와 인도 여성들은 가부장적 사회의 압력과 성폭력의 위협 때문에 폭염에도 먼 거리를 걸어 물을 뜨러 다녀야만 했다. 어린이, 노인과 여성은 성인 남성보다 일상이 무너지는 위기에 놓였을 때 더 취약한데, 기후변화는 바로 일상이 무너지는 위기다. 성과 가정폭력, 실업과 식량난 등에 내몰리기 쉽다. 이 때문에 한국의 여성환경연대도 지난해 총선 당시 각 정당에 ‘기후변화 대응 정책의 성별영향평가 실시’와 ‘여성 농업인의 기후위기 적응 능력 향상을 위한 대책 마련’ 등 젠더 관점에서 본 기후위기 대책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여성주의의 상징인 ‘돌봄’과 ‘연대’가 기후위기 등 재난 상황을 극복하는 가장 유효한 열쇳말이 될 수 있는 것도 상징적이다. 코로나19로 인한 혼란을 겪으며 건강과 복지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나아가 재난 상황에 탄력적으로 적응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는 페미니스트 탈성장주의자들의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가장 쉬운 운동으로 꼽히는 탈플라스틱 운동을 여성들이 주도하는 것도 이런 현상의 하나라고 이해할 수 있다.

굿네이버스 인도에서 보내온 올해 3월 초 아차나의 사진. 굿네이버스 제공
굿네이버스 인도에서 보내온 올해 3월 초 아차나의 사진. 굿네이버스 제공

7일 굿네이버스 인도의 로우드 리처드 대표는 “아차나가 마을 공립학교 8학년에 재학 중이며 굿네이버스의 근거리 식수지원 사업 때문에 더이상 멀리까지 물을 길으러 다니지는 않는다”며 아차나가 웃고 있는 사진을 기자에게 보내왔다. 하지만 리처드 대표는 “농촌 마을에서는 불규칙한 강수량과 이를 극복할 수도시설이 여전히 부족해 많은 여성 청소년들이 물을 길으러 가는 엄마가 외출했을 때 어린 동생들을 돌보느라 학교를 다니지 못한다. 여전히 수돗가에는 색색깔의 주전자를 들고 한낮 태양 아래 물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여성들을 자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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