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인천국제공항 화물터미널에서 열린 코로나19 백신 운송과 돌발상황 등에 대비한 모의훈련에서 백신 운송용 극초저온 항공기용 컨테이너 박스가 비행기에서 내려지고 있다. 인천공항/공동취재사진
김민형ㅣ워릭대 수학과 교수
작년 12월8일에 영국의 마거릿 키넌이 세계 최초로 코로나19 백신을 맞는 장면이 보도되면서 팬데믹의 난관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 역시 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사이에 보급의 효율성, 또 정치·사회·경제적 실정과 엮인 비판과 긴장이 팽배한 가운데서도 66개국의 약 1억400만명이 백신을 맞은 것으로 2월 초 <블룸버그>에 보도됐다.
현대적 의미의 백신은 보통 18세기 말에 발견됐다고 한다.(백신 아닌 다양한 종류의 예방 접종은 훨씬 전부터 중국, 인도, 터키 등에서 사용되었다.) 1796년에 영국 의사 에드워드 제너는 상대적으로 온화한 병인 우두에 걸렸던 노동자들이 천연두에 잘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관찰하고 나서 9살 소년을 고의적으로 우두로 감염시킨 뒤 천연두 바이러스에 노출시킴으로써 천연두 면역성이 생겼다는 사실을 처음 확인했다. 제너는 이 연구와 실험 결과를 기술한 보고서를 왕립과학회에 제출하고도 거절당하는 어려움 속에서 실험적 근거를 끈기 있게 모으며 자비로 백신의 효율성에 대한 책을 출판하면서 점차 영향력을 키워갔다. 몇년 내로 유럽 전역에 제너의 백신 기술이 알려졌다고 한다. 제너의 연구는 바다 건너로도 큰 파급효과가 있어서 1806년에 미국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이 제너에게 ‘전 인류를 대변해서 쓴’ 감사 편지에 ‘후세대는 천연두라는 것이 존재한 사실을 역사책을 통해서만 알 것’이라는 희망찬 예견이 들어 있다. 제퍼슨은 세계 지도자 중에서 일찍부터 제너의 연구에 대한 강한 신념을 표명하고 자국민들에게 예방 접종을 권장했다고 한다. 1958년부터 1977년까지 세계보건기구는 많은 나라의 공동 후원으로 접종 캠페인을 진행해서 전 세계적으로 천연두를 완전 퇴치함으로써 제퍼슨의 예언을 실현시켰다.
백신의 보급은 제너 시대의 기술과 인프라로 감당하기에 굉장히 어려웠다. 지금도 관건이 되는 보존 문제 때문이다. 기본적인 접종 기술은 감염자의 물집을 터뜨려서 고름을 헝겊으로 채취한 뒤 말려서 다른 장소로 운반한 다음 물에 타서 날카로운 기기로 필요한 사람의 살결에 문질러 넣는 것이었다. 난제는 우두 바이러스가 운반 과정에서 잘 살아남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유럽 내에서는 어느 정도 빠른 배송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었지만 백신을 아메리카로 옮기는 항해는 훨씬 큰 어려움을 제시했다. 1800년대 초 남미에서는 천연두가 사망률 50%에 육박하는 무서운 병이었기에 백신이 절박하게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카를로스 4세의 스페인 왕실이 후원하고 왕의 주치의 프란시스코 발미스가 지휘한 의료 파견단이 백신을 전달할 목적으로 1803년 11월에 아코루냐 항구에서 출항했다고 한다. 그 당시 대서양 횡단은 최소 6주 걸렸고 재수가 없어서
나쁜 날씨를 만나게 되면 석달 넘는 항해로 연장되기도 했다. 그들은 살아 있는 백신의 운반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가? 이를 위해서 지금 기준으로 보면 끔찍한 ‘인체 운송 기술’을 고안했다고 한다. 스페인의 고아 20명을 항해에 ‘우두 바이러스 운반용’으로 동참시킨 것이었다. 그중 두명을 항구에서 감염시키고 출발한 뒤 그들이 완치되기 전에 고름을 채취해서 다음 두명을 감염시키는 등 릴레이식으로 계속 바이러스를 살려서 옮겼다. 그래서 도착할 즈음에 병자 한두명이 남아 있게끔 해서 현지 사람들에게 우두를 옮겨주는 전략이었다. 의료단은 몇년에 걸쳐서 아메리카 곳곳과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아시아의 필리핀, 심지어 중국에까지 천연두 백신을 성공적으로 전해주면서 세계 최초의 국제 접종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끝냈다. 그 당시에도 접종 반대파는 많았고 나라에 따라서 지역 의학계와 정치가들의 협조를 구하기 까다로운 경우도 꽤 있었다고 한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발미스와 파견의료단이 이룬 것은 의학의 역사에서 가장 중대한 업적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지금은 제약회사 화이자 같으면 한번에 코로나 백신 약 5000인분이 들어가는 여행가방 크기의 운송 상자를 사용하는데, 지피에스(GPS) 추적기가 설치되어 있고 견고한 열 차단 설비를 갖추어서 드라이아이스와 함께 가는 내용물은 영하 약 80도로 10일간 유지 가능하다고 한다. 상자 하나의 가격이 약 800만원이라니까 그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물론 비행기, 트럭, 기차 등 모든 운송 수단이 다 동원되는 등 전 세계 교통망을 대대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백신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물자를 효율적으로 보급하는 문제는 현대 생활과 경제의 불가피한 고려 사항이기 때문에 온갖 정보와 기술적 제약을 고려한 복잡한 조달망의 구조를 분석하는 ‘네트워크 이론’이란 응용수학 분야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