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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비판적 사고, 어디까지가 좋은 걸까 [김민형의 여담]

등록 2023-11-22 16:14수정 2023-11-23 02:40

교육과 학습에서 질문과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과도한 질문 세례는 되레 학습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 그 적정한 경계선은 과연 어디쯤일까. 게티이미지뱅크
교육과 학습에서 질문과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과도한 질문 세례는 되레 학습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 그 적정한 경계선은 과연 어디쯤일까. 게티이미지뱅크

김민형 | 영국 에든버러 국제수리과학연구소장

내가 미국 뉴욕에서 조교수로 지내던 젊은 시절, 재미 삼아 학교의 계절학기 수업을 몇차례 수강한 적이 있다.(교직원에게는 학비가 면제됐다.)

그중 하나가 스페인어 강좌였는데 어른이 돼서 외국어를 기초부터 배우는 것은 상당히 특이한 경험이었다. 문구와 문법을 익힐 때 아무래도 직관적인 습득보다 의식적인 학습에 의존했고, 언어의 여러 면모를 체계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어른 특유의 욕망이 때로는 도움되고 때로는 방해됐다. 스페인어를 전공하는 박사과정 학생이 담당 교사였던 그 강좌는 전체 학생 수가 7, 8명에 불과해 오붓한 분위기에서 수업이 이뤄졌다. 학생들의 배경도 다양해서 미국 학생 몇명 외에 아랍권 출신, 캐나다 출신, 중미인 2세, 그리고 동양인도 한명 더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잡담이지만 그중에는 유명한 지식인 에드워드 사이드의 딸도 있었다.)

남의 약점을 기억해 내는 것 같아 미안하면서도 교육적인 관점에서 이후로도 오랫동안 종종 생각나는 학생이 하나 있다. 계속된 대화를 통한 변증법적인 수업이 진행됐기에 학생들의 능력을 모두가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는데, 마이크는 단연코 특이하게 고생하고 있었다. 성적도 가장 저조했을 가능성이 크다.

인종·문화적 선입견으로 판단하자면 마이크는 그중 가장 ‘미국적’인 학생이었다. 피상적으로 보기에도 그야말로 평범한 미국인의 모습이었는데, 마이크가 고생한 이유 하나를 구체적으로 꼽으라면, 비판적인 사고를 철저하게 활용하면서 너무나 많은 질문을 했다는 점이다. 교육자로서 그리고 연구자로서, 그때나 지금이나 질문을 굉장히 중시하는 나로서 상당히 이상한 판단이라는 느낌이 스스로 든다. 바로 이런 모순이 배우는 과정의 복잡도를 조금 더 깊이 있게 이해하게 했고, 단순하게 좋고 나쁜 것은 거의 없다는 교훈을 지금까지도 되새기게 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마이크의 질문을 예로 들어보자면 이런 것이다. 그는 스페인어 각종 규칙에 관해서 ‘왜 그렇게 하는가’를 자꾸 물었다. 대표적인 경우가 전치사 ‘a’의 사용이다. 스페인어에서는 사람이 목적어가 되는 그 목적어 앞에 뜬금없이 ‘a’가 나타난다. 즉 ‘공을 보았다’는 ‘vi la pelota’이지만 ‘그 여자를 보았다’는 ‘vi a la mujer’가 된다. 이보다 훨씬 평범한 규칙에 관해서도 마이크는 ‘왜 그러냐, 이상하다’는 류의 반박이 잦았다. 심지어 발음까지도 영어와 많이 다르면 반발하는 경우도 있었다. 좋게 해석하자면 당연히 자신이 알고 있는 바에 따라 새로운 지식을 정확하게 습득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언어 공부를 해본 사람은 누구나 이런 상황에서 ‘왜?’란 물음의 한계성을 잘 안다. 별 의문 없이 그냥 해보고 익숙해지는 포용력이 체계적인 공부와 같이 가야만 이상한 어휘들이 몸과 마음에 배어들기 때문이다. 마이크는 모든 것을 항상 꼬치꼬치 캐묻는 습관 때문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교육에서 비판적 사고는 누구나 중요시한다. 특히 지금처럼 데이터가 넘쳐나는 시대에는 자기 선입관을 보강하는 것 같은 근거일수록 비판적으로 보는 습관이 있어야 견고한 세계관이 형성된다. 그러나 마이크의 경우처럼 비판적 사고, 그리고 사물의 이치를 ‘왜’라는 질문을 통해서 파헤치는 습관이 해로울 때도 있다.

사실은 연구에서도 나타나는 어려움이다. 나처럼 수학과 물리의 경계에서 일하는 사람은 수학의 엄밀성이 역동적인 연구에 방해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안다. 내가 아는 뛰어난 이론물리학자 하나는 ‘수학에 비해서 물리학은 각개전투’라고 표현하곤 한다. 많은 계산을 덮어 놓고 해보면서 패턴을 차차 익히는 능력이 물리학자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수학자처럼 명료한 논리와 분명한 근거를 요구하는 사고를 너무 좋아하면 직관과 창조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어떻게 던지는 질문들이 가장 배움에 도움이 될까? 이 역시 상당히 난해하지만 다양한 종류의 학생과 교류해야 하는 선생에게는 더없이 중요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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