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분자화합물질인 플라스틱은 자외선이나 외부 충격으로 인해 균열이 생긴 뒤 작은 크기로 쪼개져 대기나 토양, 물 속에 흘러들어간다. 대기 중에 떠있는 미세플라스틱은 다시 비로 떨어진다. 지난해 9월 한 재활용쓰레기 선별장. 연합뉴스
최우리 | 디지털콘텐츠부 기후변화팀 기자
13년 전인 2008년 2월10일 일요일 밤 많은 시민들이 기우제를 지냈다. 이날 국보 1호인 숭례문(남대문)이 화재로 소실되었다.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새벽 화재 현장을 생중계하는 티브이(TV)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 이들의 기도를 하늘은 외면했다. 2월 초를 가리키는 우주의 시간은 봄이 시작된다는 ‘입춘’이었지만 날씨는 여전히 겨울이었다. 강한 북서풍에 좀처럼 빨간 불씨가 사그라들지 않았다. 기상청 예보에 따르면 서울 지역 날씨는 최저 기온 영하 0.9도(11일)~1.3도(10일)였다. 공기 중 포함돼 있던 수증기의 양을 뜻하는 상대습도는 50%를 넘었지만 거센 바람 때문인지 기록된 강수량은 0이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는 대체로 선물이었다. 농업용수와 공업용수 등 인간이 활동하는 적재적소에 물을 잘 이용하는 것은 고대 이래 모든 국가 활동의 기본이었다.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을 추진하며 이수 기능을 내세웠던 것은 건설·토목 경제를 부흥하기 위한 목적이 컸지만, 물이 시민의 삶에 얼마나 큰 즐거움을 주는지 알고 이를 관리하기로 한 권위주의 정부다운 발상이었다.
반대로 최근에는 비가 흉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지난해 쏟아진 집중호우나 폭우 때문만은 아니다. 미세먼지, 황사, 미세플라스틱 등이 섞인 비가 내린다. 특히 색과 맛이 나지 않는 미세플라스틱이 섞인 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흉기를 품고 떨어지는 것과 같다.
지난해 5월 미국 내무부 산하 지질조사국은 ‘플라스틱비가 내린다’는 제목의 보고서를 공개했다.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와 덴버 북서쪽 로키산맥 일대 총 8개 지점에서 채취한 빗방울에서 플라스틱 조각이 검출됐다는 내용이었다. 플라스틱 조각이 발견되는 빈도는 덴버 도심에 가까울수록 높게 나타났다. 이 외에도 북극에서 내린 눈에도, 바닷물에도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됐다는 연구가 있었다. 해외 자료를 보면 미세플라스틱이 분해되지 않은 채 대기 중으로, 토양과 바다로 흘러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미세플라스틱비 연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미세플라스틱을 연구하거나 비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있지만 두 가지를 합친 미세플라스틱비 연구는 따로 없었다. 4대강의 물과 퇴적물에 미세플라스틱이 얼마나 있는지를 연구하는 박태진 국립환경과학원 연구관은 국외 연구 자료를 토대로 자외선이나 충격에 취약한 플라스틱들이 부서져서 공기 중에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박 연구관은 “지상에서의 미세플라스틱 연구는 순차적으로 진행 중인데 비와 관련한 연구는 아직”이라고 말했다.
산성비를 연구하는 관련 기상연구자도 “미세플라스틱비는 기후보다 현상 위주의 문제”라며 “미세플라스틱 입자가 미세먼지(PM10)보다 크고 물에 녹지 않기 때문에 기상 관련 연구자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3년 전쯤 미세먼지와 미세플라스틱이 섞인 비가 내리면 농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자료를 찾아봤는데 역시 찾기 어려웠다.
한파와 눈과 비와 이상고온까지 롤러코스터를 타듯 변화가 심했던 겨울이 지나가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사람들과의 만남도 자제했더니 심심하고 우울했다. 그나마 하늘에서 내리는 눈과 비가 무료한 일상의 친구였는데, 나뭇잎에 내려앉은 눈과 우산살을 따라 떨어지는 빗방울에 손을 대보다 멈칫했다. 자연의 선물을 쉽게 이용하기 점점 까다로워지고 있다.
코로나19 덕분에 인류가 쌓아올린 플라스틱과 쓰레기에 대한 각성이 대폭발하고 있다. 이런 관심이 식기 전에 도시와 농촌, 산과 바다 등 전국적으로 미세플라스틱비 연구가 진행되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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