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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비계획적 방출 / 김진해

등록 2021-01-24 18:05수정 2021-01-25 02:38

김진해 ㅣ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말은 현실을 왜곡하고 행동을 미화한다. 이른바 전문가들은 예측 못 한 일도 짐짓 예측한 듯이 태연하게 자신의 개념 안으로 그 사태를 욱여넣는다.

‘비계획적 방출’은 ‘계획적 방출’이란 말에서 엉겁결에 나온 말이다. ‘계획적 방출’은 방사성 물질을 법적 범위 내에서 외부로 내보내는 것이다. 정해진 배출 경로로 해야 하며, 주기적인 감시를 받아야 한다. ‘비계획적’이란 말은 ‘정해진 배출 경로가 아닌 곳에서 얼마나 샜는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방출’에는 행위자의 의지가 담긴다. ‘누출’에는 의도성이 없다. 실수의 의미도 덧붙는다. ‘무단 방류’나 ‘무단 방출’은 있어도 ‘무단 누출’은 없다. 꽁꽁 동여맸는데도 바닥에 국물이 흥건하면 김칫국물의 ‘비계획적 방출’이 아니라 ‘누출’이다. 그런데도 이 말을 고집한다. 그들은 처음부터 ‘계획적 방출’과 ‘비계획적 방출’을 알았을까? 처음부터 알았다면, 예기치 못한 누출도 예측해서 대비해야 했다. ‘계획 없음에 대한 계획’이라고 해야 할까? 모순이다.

그래도 효과는 크다. 사람들의 걱정 근심을 덜어준다. 낮과 밤이 ‘하루’가 되고, 홀수와 짝수가 ‘정수’가 되고, 남자와 여자가 ‘인간’이 되듯, 대립적인 걸 하나로 합하면 마치 안정감 있는 완결체 하나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계획적 방출’과 ‘비계획적 방출’을 대등하게 병치함으로써 이런 사태에 모종의 ‘인과적 필연성’이 있는 것처럼 인식하게 만든다. 게다가 자신들이 여전히 통제권을 상실하지 않은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속지 말자. 제대로 된 이름은 ‘방사성 물질 누출 사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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