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밤. 가로등 아래서 나란히 서 있는 눈사람들의 모습이 유난히 정겹다. “지금 혼자가 되지 않으면 영영 혼자가 될 수도 있다”는 표어가 피부로 느껴지는 요즈음, 잃어버린 일상에 대한 간절함을 담아 빚어놓은 어울림의 풍경은 아닐는지. 모두가 하루빨리 스스럼없이 어우러지는 일상을 되찾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한다. 사진하는 사람
최우리 | 디지털콘텐츠부 기후변화팀 기자
‘엘사 공주님, 마음을 조금만 풀어주시죠. 너무 춥습니다.’
조카의 ‘최애’ 엘사 공주의 겨울왕국에 초대된 것 같다. 엘사 공주는 마음이 평안하지 않을 때 모든 것을 얼려버리는 능력자다. 그도 코로나19로 마음이 심란한지 어떤지, 아무튼 한국은 꽁꽁 얼어붙었다. 절기상 가장 춥다는 소한(5일) 무렵이긴 하지만 몸이 기억하는 추위를 넘어섰다.
이번 추위는 세탁기와 남편의 롱패딩으로 기억될 예정이다. 지난가을 신혼집으로 이사 오면서 앞 베란다에 설치한 ‘신상’ 세탁기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다하지 못하는 병약한 신세가 되었다. 유리창 앞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맞으며 자체 발광하던 세탁기의 급수부·배수부가 얼어붙어 작동을 멈췄다. 어머니 없이는 살림을 해본 적이 없는 살림 초보 부부는 급하게 철물점에서 은색 호스를 사다 끼워주고 세탁기 결빙 예방법과 해동법을 설명하는 유튜브 영상을 보며 공부 중이다. 이런 고민을 겪는 이들이 매우 많다는 것을 영상 조회수를 보며 깨달았다.
반면 반신반의하며 산 남편의 롱패딩은 열일하고 있다. ‘기후변화로 겨울은 꾸준히 따뜻해질 텐데 홋카이도나 시베리아에서 입을 법한 롱패딩을 한국에서 사 입는 것은 오리와 거위를 착취하는 과도한 소비’라고 생각하고 사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짧은 솜옷 한 벌로 겨울을 버티는 남편이 신경 쓰였다. 내 판단이 오답이었음을 인정하며 롱패딩값 15만원을 ‘기후변화 적응 비용’으로 따로 기억하기로 했다.
눈은 이번 추위를 잊게 하는 작은 이벤트였다. 물론 하늘길이 막히고, 도로가 얼고, 수도관이 동파하면서 크고 작은 혼돈을 겪고 있기는 하지만, 추위가 이어지던 중 지난 6일 하늘에서 쏟아진 하얀 눈을 보며 한겨울의 포근함을 만끽한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눈은 정작 너무 추우면 내리지 않는다. 습도가 높은 저기압이 눈을 만들기 때문이다. 눈이 많이 오는 북유럽 국가에서도 내륙으로 갈수록 기온이 떨어지고 강우량도 적다. 서울 기준 최고기온이 영하 1.9도였던 6일은 눈이 왔지만, 최고기온 영하 10.7도였던 8일에는 눈이 내리지 않았다.
그래서 ‘강추위’란 우리말은 ‘눈도 내리지 않는 매서운 추위’라는 뜻이다. 기상캐스터가 ‘눈이 오는 강추위’라고 말한다면 이는 ‘매우 센’이라는 뜻의 한자어 강(强)을 접두어로 쓴 단어로 우리말과는 다르다. 이상기후로 기온이 더 떨어지면 눈도 오지 않는 ‘강추위’만 견뎌야 할 수도 있다.
지난해 9월 이 칼럼을 통해 날씨 일기를 쓰자고 제안했다. 해보니 초등학생 때나 지금이나 날씨를 꼬박꼬박 적는 것은 익숙하지 않았다. 기상청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정확한 기온과 강수량을 적으려 하다 보니 오히려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찾은 방법이 그날 출퇴근길에 느낀 감각을 기록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최저기온이 영하 16.5도에 이른 지난 7일 마트에서 장을 본 날은 ‘장갑을 안 낀 손이 금세 아플 정도로 추운’ 날이었다. 청명했던 지난해 가을 어느 늦은 밤 불어왔던 바람은 혼자 앓던 고민거리를 실어 보내준 기분 좋은 바람이었고, 지난해 11월 중순 백년 만에 내린 폭우로 쫄딱 젖었는데 생각보다 비가 차갑지 않아 의아했다. 12월 초 출장 갔던 남쪽 도시는 두꺼운 패딩 점퍼를 입을 필요가 없이 따뜻해 기후변화를 실감했다. 이렇게 일상과 날씨를 함께 기록하다 보니 더 생생한 나만의 기록이 남았다.
날씨 일기를 쓰다 보면 무탈한 하루를 보내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 자랐다. 또 이상기후 때문에 누군가가 울고 있다는 생각에 닿으면 지구인으로서 연대하는 마음도 커진다. 새해에 도전해보고 싶은 작은 계획들을 아직 세우지 못했다면 날씨 일기를 써보는 것은 어떨까 다시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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