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조 바이든 현 당선자와 도널드 트럼프 현 대통령이 지난 11월 대선을 앞두고 내슈빌의 벨몬트대학에서 열린 마지막 토론회에 참석한 모습이 반사되어 비친다. AFP 연합뉴스
다사다난한 2020년도 이제 저물어간다. 다사다난했던 트럼프 대통령 시대도 곧 막을 내린다. 2021년 1월20일이면 도널드 트럼프는 백악관을 떠나고,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입성한다. 지난 4년은 많은 미국인에게 그야말로 괴롭고 어려운 시간이었다. 바이든에 대한 기대가 그리 높은 편은 아니지만 그저 지난 악몽의 시대를 씻어주기만 해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언어학적으로 놓고 보면 트럼프 시대는 괴로우면서 흥미로웠다. 그의 시대를 한마디로 압축하면 ‘스토리텔링’이다. 이미 이 단어는 2010년대 한국에서 유행어가 되었고, 당시 국가 브랜딩과 도시 재생에 대한 논의 과정 중에 자주 들렸다. 그만큼 국가나 지역을 홍보하는 데 효과적이고 매력적인 서사이기 때문이다. ‘서사’란 이야기의 기술과 구조를 지칭하는 학술적 용어이다.
‘스토리텔링’은 ‘스토리’(story)와 ‘텔링’(telling)을 합한 말이다. ‘스토리’는 이야기의 내용이고 ‘텔링’은 그 내용을 전달하는 방법이다. 서사의 매력을 높이는 데 목적이 있으니, 그에 맞춰 내용을 선택하고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 활용한다.
2016년 대선 운동 당시 트럼프는 ‘가짜 뉴스’(fake news)라는 신조어를 자주 썼다. 그 이전까지 ‘뉴스는 사실에 근거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있었다. 물론 언론사의 성향에 따라 편견이 반영된 보도가 없지 않았지만 최소한 언론사라면 객관성 유지를 위해 애쓰는 태도를 갖는다는 인식이 보편적이었다. 하지만 대통령이 된 트럼프의 입에서 나오는 ‘뉴스들’이 ‘가짜’라는 주장이 이어지면서 뉴스 역시 트럼프의 말처럼 또 하나의 스토리텔링이라는 인식이 만들어지고 널리 퍼져나갔다. 사실과 상관없이 트럼프 지지자들은 트럼프의 ‘스토리’를 믿었고, 반트럼프 진영에서는 그의 말을 단 한마디도 믿지 않는 동시에 ‘트럼프가 악마’라는 또 다른 스토리텔링으로 그를 공격했다. 그를 향한 지지와 반대 의견이 팽팽해지면서 갈수록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혼란스러워하는 이들도 많아졌고, 정치 그 자체에 환멸을 느낀 시민도 부쩍 늘었다. 사실에 대한 믿음이 흔들린 셈인데, 이러한 현상은 결론적으로 트럼프의 스토리텔링에 도움이 되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정치적 전략으로 삼은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 와중에 코로나19가 터졌다. 재선을 앞두고 있던 트럼프는 당연히 경제적 타격이 클 거라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처음부터 이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서둘러 대응에 나서긴 했지만 코로나19 확산을 막기보다 경제적으로 타격을 입는 것에 더 집중하는 바람에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오히려 보건당국과 충돌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부동산 전문가답게 본인의 이익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대통령 재선’을 스토리텔링하면서, 자신에게 유리하지 않은 코로나19의 심각성은 축소하려 한 셈이다. 그로 인해 트럼프 지지자 중에는 코로나19의 심각성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이 늘었고, 심지어 마스크 착용 여부가 정치적 성향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가을이 되면서 기온이 떨어지자 코로나19가 다시 폭발했다. 트럼프와 달리 바이든은 그 심각성을 인정하고 보건당국의 지침에 따라 행동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셈이다. 1973년부터 2009년까지 델라웨어주 상원의원을 거쳐온 전형적인 정치가 바이든에게 정치는 스토리텔링이 아니라 협상이다. 법안을 통과시키려면 표를 모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요구와 입장을 사실 그대로 인정하면서 공감대를 찾아야 한다는 걸 그는 잘 알고 있다.
결국 코로나19 대란을 겪으며 스토리텔링은 트럼프를 구원하지 못했다. 트럼프는 백악관을 떠나지만 과연 앞으로의 정치에 스토리텔링의 영향력도 사라질까. 전형적 정치가인 바이든은 미국 정치를 정상화하려고 노력한다. 본인의 발언은 물론 장관의 선택, 도입하려는 정책 모두 현실적이다. 트럼프 시대 이전의 기준으로 보면 지극히 정상이다. 미국 정치의 정상화 여부는 바이든의 성공에 달려 있는 셈인데, 그는 과연 성공할까?
이 질문에 어려울 거라는 답을 하고 싶지만 역사는 직선이 아니라 천천히 흔들리는 추처럼 늘 변한다. 미국뿐만 아니라 온 세계를 뒤흔든 코로나19는 물론 인류 앞에 닥친 기후 변화를 극복하려면 사실을 바탕으로 논의하고 협상을 통해 현실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나는 부정적인 답 대신 스토리텔링 정치는 트럼프와 함께 점차 역사 속으로 사라질 거라는 희망을 말하고 싶다. 오늘은 2021년을 기대해도 좋은 날, 2020년 마지막 날이니 그러하다.
로버트 파우저ㅣ언어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