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리ㅣ 디지털콘텐츠부 기후변화팀 기자
또 한 해가 간다. 지구인들에게 가혹했던 한 해가 드디어 지나간다. 종일 마스크를 걸고 있는
두 귀는 빨갛게 부었다. 활동량이 줄어 몸은 굳었고 군살이 붙었다. 이것은 작은 생채기에 불과하다. 손님이 끊긴 일상을 버티는 것이 힘겨운 자영업자, 가족과 떨어져 외로이 일을 하는 해외 노동자와 가족들의 고통은 깊어지고 있다. 드문드문 들려오는 캐럴은 흥겨움을 잃었고, 텅 빈 거리에 외로이 불을 밝힌 크리스마스트리는 쓸쓸해 보인다. 코로나19와 이상기후로 지친 지구인들을 위한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고대하지만, 하늘은 그 감동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서울 지역 기준 1981년부터 지난해까지 39번의 크리스마스 중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8번이었다. 기상청 통계를 보면 2015년(0.2㎝), 2012년(1.5㎝), 2009년(0.4㎝), 2005년(0.7㎝), 2002년(1.2㎝)과 2000년(1.8㎝)에 크리스마스 당일 눈이 내렸다. 20세기까지 포함하면 1990년 2.1㎝, 1985년 0.1㎝의 눈이 쌓였다.
통계에서 보듯 적설량이 그리 많지 않다. 하늘에서 함박눈이 펑펑 내려 발로 밟으면 뽀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눈이 쌓인 적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통계만으로는 얼음 알갱이와 비가 섞인 진눈깨비도 눈이 내린 것으로 기록하기 때문에 사실은 ‘레이니’ 크리스마스였을지도 모른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평균 기온이 0.6도였던 2009년의 크리스마스는 레이니 크리스마스였던 것 같다. 홍명보장학재단 주최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자선경기를 전하는 이날치 기사를 보면 오전에는 비가 내리다 해가 진 뒤 눈으로 바뀌었다. 서울 지역의 이날 적설량은 0.4㎝였지만 강수량도 1.9㎜가 집계됐다.
2017년 크리스마스 이브 오후 서울 중구 명동에 설치된 포토존에 달린 장식에 빗방울이 맺혀 있다. 연합뉴스
기후변화로 겨울철 평균 기온이 높아지고 겨울이 짧아지면서 눈을 보기 더 힘들어지고 있다. 유독 따뜻했던 지난해 12월 서울 지역의 눈이 내린 날은 0일이었다. 2019년 1월부터 12월까지 서울 지역에 눈이 내린 날은 15일에 불과했다. 1981~2010년 30년 동안 12월의 눈 내린 날은 평균 6.1일이고,
365일 중 평균 25일가량이 눈이 왔던 것과 비교해보면 지난해는
이례적으로 눈을 보기 힘든 해였다.
짧은 기간이라 과학적으로 단언할 수 없지만, 최근 10년 동안 눈이 내리는 날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10년 동안 12월의 눈 내린 날은 평균 8.2일, 1년으로 치면 26.4일이었다. 가까운 5년 동안 그 일수가 더 줄어 12월은 7.0일, 한 해 동안은 23.4일만 눈을 볼 수 있었다
. 더운 나라에 사는 외국인들이, 사계절이 뚜렷하다고 알려진 한국에 가도 눈을 볼 수 없다며 겨울철 한국 방문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를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여름도 아닌데 104년 만에 11월 역대 최고 일일 강수량을 갈아치운 가을 폭우(11월19일)와 17년 만에 12월이 되어서야 내린 서울의 첫눈(12월10일)도 올해의 기후변화 뉴스로 기록할 만하다.
레이니 크리스마스라도 서운해하지 않도록 마음 단련이 필요해졌다. 이미 1985년에도 10.1㎜의 비가 내렸다. 2017년에도 일부 지역은 비가 내렸다는 기록이 있다. 더욱 최악인 것은 ‘그레이’ 크리스마스다. 2018년과 지난해는 미세먼지 가득한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올해 크리스마스 날씨는 화이트일까, 레이니일까, 그레이일까. 하얀 눈으로 그려지던 한국 겨울의 풍경이 비와 미세먼지로 덧씌워지고 있다. 기상청은 올해 크리스마스 날씨를 열흘 앞선 14~15일께 예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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