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BTS)이 지난해 2월10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스테이플스 센터에서 열린 61회 그래미상 시상식에 한국 가수 최초로 시상자로 나섰다. AFP=연합뉴스
날이 추워지면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줌을 통해 여러 대학의 특강을 챙겨보고 있다. 한국 관련 강연은 거의 빼놓지 않고 보는데, 그 인기를 드러내듯 ‘케이팝’(K-pop) 관련 강좌가 특히 많다. 그동안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은 것을 살짝 반성하면서 동시에 사회언어학적으로 케이팝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생각해봤다.
1950년대 들어 급부상한 로큰롤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뒤 세계 질서를 확립한 미국과 영국에서 나온 ‘새로운 소리’였다. 새롭기만 한 게 아니었다. 기성세대의 보수성에 대한 저항의 기운이 역력했다. 게다가 텔레비전이 보급되고 음반 기술이 발달하면서 더 많은 이들이 손쉽게 음악을 접할 수 있게 된 것 역시 빠른 확산에 기여했다. 미국과 영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대중음악 산업이 자리를 잡아나갔고, 로큰롤은 그 패권의 선두를 차지했다.
로큰롤의 언어는 다름 아닌 영어였다. 이를 기반으로 대중음악을 비롯한 대중문화 전반에 영어는 물론 영어권 문화가 깊이 침투했다. 비영어권 국가에서는 가사는 자국어로 되어 있을지언정 영어권에서 유행하는 대중음악 스타일이 인기를 끌었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당장 머릿속에 신중현 그리고 산울림이 떠오른다.
케이팝은 오래전 로큰롤이 그랬듯이 급속도로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그런데 이들의 언어는 어떨까? 한국어로만 되어 있는 가사는 드물다. 세계를 휩쓸고 있는 방탄소년단(BTS·비티에스)의 노래만 봐도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 쓴 가사가 많다. 비티에스 이전에 폭발적인 히트를 기록한 싸이의 ‘강남스타일’ 역시 한국어 가사에 영어 가사가 포함되어 있다. 언어를 섞어 쓰는 방식도 노래마다 다르다. 한국어 문장에 영어 단어를 쓰기도 하고, 어떤 노래는 그 반대다. 한국어 문장을 영어로 바꿔 부르기도 하고, 후렴구나 소위 ‘떼창’ 부분만 영어 가사인 경우도 있다. 이렇게 구성한 ‘케이팝의 언어’를 통해 세계 인류는 역사상 최초로 앞다퉈 한국어를 듣고 있는 중이다. 10년 전만 해도 ‘아시아의 작은 나라 언어’라는 이미지가 강했던 한국어는 어느덧 영어와 더불어 ‘대중음악의 대표 언어’가 되었다.
오래전 로큰롤이 그랬듯 새로운 음악에는 기성세대의 보수성에 대한 저항의식이 담기곤 한다. ‘케이팝’을 통해 울려 퍼지고 있는 한국어 가사는 그 자체로 오랜 세월 대중음악계에 패권을 장악해온 영어에 대한 반격처럼도 보인다.
방탄소년단의 노래와 케이팝을 한국어 학습과 연결한 책들이 영어권에서 시판 중이다. 사진 아마존
미국에 사는 나 역시 비티에스의 활동 모습을 자주 본다. 해외 매체와 인터뷰하거나 홍보 영상 등에서 주로 말을 하는 사람은 리더인 알엠(RM)이고, 다른 멤버들은 간단한 인사와 농담에 그칠 때가 종종 있다. 하나같이 모두 개성이 강하다. 원어민을 모방하는 것도 아니면서 한국식 발음도 아니다. 짧은 문장, 몇 개의 단어를 쓰기도 하고, 한국어로 말하기도 한다. 웃음과 몸짓도 매우 화려하다. 싸이는 인터뷰할 때마다 매우 유창한 영어를 썼지만 비티에스는 마치 ‘케이팝의 언어’로 유쾌한 쇼를 하는 것 같다.
이런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한 걸까. 2010년대 영어에 대한 태도 변화에서 가늠할 수 있다. 미국 유학생 출신 싸이가 영어를 잘하는 건 당연해 보인다. 비티에스는 멤버 중 누구도 해외유학 경험이 없다. 알엠은 한국에서 취미로 영어를 배웠다. 비티에스 멤버들 중 누구도 영어를 거부하고 있지는 않지만 편한 마음으로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영어를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자신들의 활동의 핵심이 음악과 춤이기 때문에 유창한 영어로 말하는 것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케이팝의 언어’를 쓰는 것이 브랜드 이미지에 도움이 된다.
방탄소년단의 노래와 케이팝을 한국어 학습과 연결한 책들이 영어권에서 시판 중이다. 사진 아마존
그들의 ‘케이팝의 언어’를 듣고 있노라면 대중문화의 패권을 영원히 차지할 것처럼 기세등등했던 영어권의 힘이 약화된 것을 느낀다. 한국어에서 파생했지만 오로지 한국어만은 아닌, 다른 언어를 쉽게 수용함으로써 등장한 혼합언어가 대중문화의 새로운 패자로 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민족과 인종, 젠더의 구분이 희미해지는 오늘날에 잘 어울리는 미래언어의 감수성이란 이런 형태가 아닐까. 케이팝이 지금보다 더 대중문화 전반에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면 대중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확장하는 걸 넘어 새로운 언어로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미래언어로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그들을 지켜보는 나의 생각이자 바람이다.
로버트 파우저ㅣ언어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