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가 내린 지난 5월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 초등학교에서 학교보안관이 우산을 미처 준비하지 못한 아이들에게 우산을 씌워주며 교실로 함께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예고 없던 소낙비에 어쩔 줄 모르고 서 있던 날/ 조심스레 안녕 하곤 작은 우산 하날 건네준 너/ 툭 떨어진 빗방울처럼 내 맘속에 들어와 불쑥/ 화창해진 하늘에도 문득 네 생각이 나/ 그때 그 인사는 뭐였어 흠흠.”
지난해 5월 나온 오마이걸의 정규 1집의 ‘미제’(Case No.L5VE)는 비 오는 날 우산을 건네고 간 그의 마음이 무슨 뜻이었는지 혼자 “정답을 헤매는” 노래다. 사랑인지 아닌지 서로 조심스러워하며 수줍어하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지난 1일에야 32일 만에 비가 내린 올가을, 쌓여가는 일을 뒤로하고 기분전환하고 싶을 때 이 노래를 듣고는 했다.
오마이걸이 소개했듯이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는 사랑과 우정을 나누는 드라마의 좋은 배경이 된다. 소나기를 뿌리는 ‘적란운’(쌘비구름)은 많은 양의 수증기가 탑 모양으로 높이 솟은 키 큰 구름이다. 국제선 비행기가 지나는 10㎞ 높이까지 쌓여 있다. 이 때문에 적란운 상부의 얼음 알갱이가 비가 되어 떨어지는 소나기는 평범한 비보다 차갑다. 기상청의 윤기한 통보관은 “소나기는 주로 여름에 내리지만 소나기를 맞으면 서늘해진다.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의 병약한 소녀가 영영 소년을 떠난 나름의 과학적 이유가 있다”며 소나기구름의 비밀을 설명해주었다.
소나기와 관련한 사연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 우산은 소나기와 잘 어울리는 짝꿍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방과 후 교실 청소를 마치고 집에 가려고 하는데 비가 쏟아졌다. 같이 청소한 친구들 중 평소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던 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의 집이 학교에서 조금 먼 곳이었다. 우산이 없어 1층 현관 밖으로 발을 떼지 못하고 있는 친구에게 ‘나는 집이 가까우니 내 우산을 쓰고 가라’고 하며 우산을 건네주었던 기억이 난다. 친구는 내게 고맙다며 우산을 받았고 나는 비를 맞으며 집에 왔다. 그러고 얼마 뒤 나는 전학을 갔고 그 친구와는 연락을 한 적이 없다. 나는 그날 내가 우산을 건네기 전 굉장히 오랫동안 고민하다 용기를 냈던 시간들이 아직도 생각난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내 행동이 괜히 자랑스러웠다. 그때부터 비를 맞아도 옷은 빨면 되고 몸은 씻으면 별문제가 없다는 걸 알았고, 그 이후로 나는 좀 더 자란 것 같다.
또 다른 기억은 4년 전이다. (결혼할 줄 모르고) 어머니께 비혼을 선언한 30대 초반의 딸은 어머니와 둘이 오순도순 함께 사는 재미를 찾아가고 있었다. 우리는 주말에 똑같은 구두를 샀고 그날은 그 신발을 처음 신고 출근한 날이었다. 야속하게도 퇴근시간에 맞춰 소나기가 내렸다. 어머니는 ‘우산을 갖고 갔냐’고 물으시고는, 집에서 10분 거리의 지하철역까지 비에 젖지 않는 나의 슬리퍼와 우산을 갖고 나와주셨다. 일하는 어머니의 사정을 알았기 때문에 비가 오면 당연히 맞고 집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올라 잠시 울컥했다. 이제는 내가 보호자가 되어드려야 하는데 60대가 된 어머니가 여전히 나를 지켜주고 있다는 생각에 몽글몽글해진 밤이었다.
“그대는 내 머리 위에 우산/ 어깨 위에 차가운 비 내리는 밤/ 내 곁에 그대가 습관이 돼버린 나/ 난 그대 없이는 안돼요.”
사람의 온기를 더 잘 느낄 수 있고, 맑은 날을 상상하며 힘내라고 흐리고 비 오는 날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가수 윤하의 ‘우산’이라는 곡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우산 같은 존재가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8년 전 빗방울 떨어지는 버스 창가를 바라보며 재즈음악을 듣다 버스 기사님께 아메리카노를 시켜버렸다는 ‘멋쟁이 희극인’ 박지선씨와 그의 어머니가 더는 하늘에서 아프지 않길 기도한다.
최우리ㅣ 디지털콘텐츠부 기후변화팀 기자 ecowoor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