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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영끌’과 ‘갈아넣다’ / 김진해

등록 2020-10-25 15:54수정 2020-10-26 02:37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말에는 허풍이 가득하고 인간은 누구나 허풍쟁이이다. 보고 들은 걸 몇 곱절 뻥튀기하고 자기 일은 더 부풀린다. ‘아주 좋다, 엄청 많다’고 하면 평소보다 더한 정도를 표현한다. 하지만 ‘아주, 엄청, 매우, 무척, 너무’ 같은 말은 밋밋하고 재미가 없다. 더 감각적인 표현들이 있다.

이를테면 ‘뼈 빠지게 일하다, 등골이 휘도록 일하다, 목이 빠지게 기다리다, 목이 터져라 외치다, 죽어라 하고 도와주다, 쎄(혀) 빠지게 고생한다’고 하면 느낌이 팍 온다. 화가 나면 피가 거꾸로 솟고, 엎어지면 코 닿을 데에 살고, 눈 깜짝할 사이에 일이 벌어진다. 상다리가 부러지게 음식을 차리고 문지방이 닳도록 사람이 드나든다. 사진을 보듯 생생하지만 과장이 심하다.

모든 것을 다 쏟아붓는다는 뜻으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다)이나 ‘갈아 넣다’라는 말을 곧잘 듣는다. 장롱 밑에 굴러 들어간 동전까지 탈탈 털어 집을 사거나 투자를 할 수는 있지만, 영혼까지 끌어모으고 갈아 넣어서 뭘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혼을 담은 시공’이라는 건설 광고판을 보며 들었던 두려움과 죽음의 정서와 겹친다.

과장된 말처럼 현실을 견디고 살아내야 하는 사람이 많다. 탈진할 때까지 힘을 써야 하고 등골이 휘어져도 참아야 하고 영혼마저 일에 갈아 넣어야 하는 사람들. 매순간 모든 걸 걸어야 하는 사회. 있는 힘을 다해야 할 건 부동산도 일도 아니다. 뼈도 힘도 영혼도 어디다 빼앗기거나 갈아 넣지 말고 고이 모시고 집에 들어가자. 세상이 허풍 떠는 말을 닮아간다. 허풍이 현실에서 벌어지면 십중팔구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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