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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말의 아나키즘 / 김진해

등록 2020-09-27 18:01수정 2020-09-27 19:35

김진해 ㅣ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강원도 홍천군 서석면에 가면 ‘밝은누리’라는 대안학교 겸 공동체가 있다. 학교와 집을 손수 짓고 적정기술과 농사를 익히며 삶과 배움의 일치를 추구한다. 그들의 ‘말글살이’는 자못 의연하여 생활 용어를 힘껏 바꿔 쓴다. ‘하늘땅살이(농사)’, ‘몸살림(수신)’, ‘고운울림(예술)’이라든가, ‘어울쉼터, 아름드리(생활관)’ 같은 말을 만들었다. 일주일을 ‘달날, 불날, 물날, 나무날, 쇠날, 흙날, 해날’로 부른다. 코로나19는 ‘코로나 돌림병’이다.

삶의 방식이 다르면 말본새도 달라진다. 이들에게 말은 도구가 아니다. 새로운 말의 발명은 인식과 태도의 변화를 이끈다. 삶의 자리에 말을 초대하고, 초대받은 말은 다시 삶을 정돈한다. 고유어로 바꾸려는 강박이 보이지만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방문객은 ‘쇠날’로 듣고 ‘금요일’이라 ‘번역’한다. 낯설지만 과잉되지 않다. 그들은 삶의 변혁을 추구하지 언어운동을 하지는 않는다.

이들을 보며 말의 아나키즘을 상상한다. 아나키즘을 ‘모든 지배의 거부’, ‘제도가 아닌 자발성에 의한 연대’라고 당돌하게 요약해 놓고 보면, 우리 사회는 말의 아나키즘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걸 느낀다. 한국 사회는 말의 무질서나 오염을 걱정하고, 올바른 말을 병적으로 강요해 왔다. 질서는 인위이고 위계이자 명령이다. 엘리트주의고 전체주의적이다. 그래서 표준어를 참조하지 않는 자유의 영토, 작은 공동체의 자율적 합의로 만드는 언어가 여기저기 꽃피어야 한다.

이게 어찌 그곳 사람들만의 문제겠는가. 말을 법 아래가 아닌 삶의 곁에 서게 할 때 우리는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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