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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백기철 칼럼] ‘불법’ 여부보다 중요한 것

등록 2020-09-16 19:53수정 2020-09-17 02:47

문제는 침착하게 해결하면 될 일을 미숙한 대응으로 외려 키운 것 아닌가 하는 점이다. 그간 추미애 장관과 여당은 야당의 의혹 제기에 맞서 합법, 불법 여부에만 매달리다가 사건의 민감성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모든 사안을 불법과 합법으로만 볼 수는 없다. 불법 여부 못지않게 소중히 여겨야 할 기준과 가치가 있기 마련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6일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6일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의 군 복무 관련 의혹을 둘러싼 공방은 현재 진행형이지만 지금까지만으로도 씁쓸한 구석이 많다. 자식을 군에 보낸 부모의 마음을 토로한 추 장관 심경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사안의 성격상 그렇게만 보긴 쉽지 않다. 이 사건은 불법 여부는 물론 공정의 문제, 고위 공직자의 처신, 정당의 미숙한 대응 등 곱씹어볼 대목이 여럿 있다.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현재로선 추 장관이 직접 관련된 위법 사실이 나올 것 같지는 않다. 추 장관 아들의 병가 연장 의혹은 당시 추 장관 보좌관이 상급 부대 장교와 통화한 대목의 위법성 여부가 초점이 될 듯하다. 또 아들의 자대 배치나 평창올림픽 파견 선발 과정에서 추 장관 쪽이 개입했다는 주장이 제기됐지만 법 적용엔 한계가 있어 보인다.

보수 야당이 마치 이 사건을 두고 군과 검찰, 정부 여당이 총체적으로 짜맞춰 부정을 감추고 있다는 식의 공세를 펴는 건 온당치 않다. 권력에 대한 의혹 제기는 필요하지만 사안의 성격을 엄밀히 따져야 한다. 이번 건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건의 ‘재판’이란 주장도 침소봉대다. 폭발성이 적다고 하긴 어렵지만 훨씬 간단하고 명료한 사건이다.

문제는 침착하게 해결하면 될 일을 미숙한 대응으로 외려 키운 것 아닌가 하는 점이다. 그간 추 장관과 여당은 야당의 의혹 제기에 맞서 합법, 불법 여부에만 매달리다가 사건의 민감성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 같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6일 “‘불법이다, 아니다’ 이렇게만 바라보는데, 국민에게 죄송스럽다. 교육과 병역은 국민의 관심사이고 역린인 만큼 예민하게 다루고 낮은 자세로 처리해야 한다”고 말한 건 매우 적절하다. 박 의원 시각으로 이 사건을 돌아보면 짚어볼 대목이 몇 가지 있다.

우선 추 장관이 군에 간 아들 문제를 놓고 제1야당 대표, 집권당 대표로서 적절하게 행동했는지 여부다. 또 사건이 불거진 이후 장관으로서 제대로 처신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추 장관 아들은 2016년 11월 카투사로 입대했고, 2018년 8월 제대했다. 문제의 병가 논란이 불거진 때는 2017년 6월이고, 평창올림픽 통역병 파견 논란이 빚어진 때는 넉달 뒤인 그해 10월이다. 둘 다 추 장관이 여당 대표로 있던 때다. 용산 자대 배치 논란은 신병 훈련 무렵으로 야당 대표 시절이다.

이들 시기는 모두 촛불이 한창 타오르거나 적폐청산이 강력히 진행되던 때다. 공정의 문제가 화두가 됐다. 정치 지도자라면 이 문제에 민감하게 대처해야 했던 때다. 추 장관은 아들을 용산으로 배치해 달라거나, 평창에 파견해 달라는 민원이나 청탁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반면 해당 부대 책임자는 다수 있었다고 한다. 만일 추 장관 쪽에서 어떤 형태로든 청탁이 있었다면 시대의 화두인 공정과는 배치되는 일이다.

무릎 수술에 따른 병가 연장 문제도 마찬가지다. 휴가를 연장하는 과정에서 보좌관이 개입했다면 군 입장에선 그를 추 장관의 대리인으로 볼 수밖에 없다. 설사 추 장관이 여기에 개입하지 않았다 해도 마찬가지다. 결과적으로 추 장관이 아들에게 ‘엄마 찬스’를 제공하려 했다는, 이른바 갑질 논란을 피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더욱 문제 되는 건 추 장관을 비롯한 일부 여당 인사들의 일반 정서와는 동떨어진 언행이다. 추 장관은 “소설 쓰시네”라는 거친 말로 논란을 증폭시켰고, 여당 의원들은 “카투사는 편한 군대” “국민의힘에 군대 안 간 사람이 더 많다” “제보 사병은 단독범”이라는 등의 막말로 국민 정서를 자극했다. 추 장관 아들을 안중근 의사에 비유한 여당 대변인의 궤변은 낯뜨거울 지경이다.

이처럼 ‘불법이 아닌데 뭐가 문제냐’ 식의 생경하고 뻣뻣한 대응은 자칫 진보의 오만이나 독선 아니냐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거친 대응은 일시적으로 지지자들을 불러모아 위기 국면을 벗어나는 수단이 될지 모르지만 길게 보면 국민들로부터 멀어지는 길이다.

지난 주말 추 장관이 페이스북 글에 “기필코 검찰개혁을 완성하겠다”고 적은 대목도 논란거리다. 추 장관은 검찰개혁을 흔들려는 악의적인 의혹 제기에 쐐기를 박겠다는 뜻이겠지만, 자칫 검찰개혁을 명분으로 자신에게 쏠린 의혹을 피해 가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국민들은 첨예한 이슈에 대해 누가 말하지 않아도 직감적으로 사안의 성격과 무게를 감지한다. 모든 사안을 불법과 합법으로만 볼 수는 없다. 불법 여부 못지않게 소중히 여겨야 할 기준과 가치가 있기 마련이다.

백기철│편집인
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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