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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로버트 파우저, 사회의 언어] ‘주인 침실’에서 모두 같은 ‘방’으로 변화

등록 2020-09-02 17:53수정 2020-09-03 13:38

역사적으로 집 구조의 명칭은 사회 변화에 따라 바뀌어왔다. 2019년 4월, 새집을 사고 기뻐하는 미국 유타주의 젊은 부부. AP 연합뉴스
역사적으로 집 구조의 명칭은 사회 변화에 따라 바뀌어왔다. 2019년 4월, 새집을 사고 기뻐하는 미국 유타주의 젊은 부부. AP 연합뉴스

지난 6월 초 미국 전역으로 확산했던 반인종차별 시위는 사회 여러 구석에 변화의 불씨를 일으켰다. 이 가운데 부동산 업계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변화는 매우 흥미롭다. 미국에서 집주인 침실은 1920년대부터 ‘마스터 침실’(master bedroom, 주인 침실)이라는 용어가 생겼다. 시대에 따라 크기와 구성은 조금씩 달라졌지만 집 안의 다른 침실보다 크기가 크고 화장실이 따로 붙어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마스터 침실’에 매력적인 요소가 있는 매물은 부동산 업체에서 홍보할 때 적극적으로 활용하곤 한다.

그런데 반인종차별 시위가 사회운동으로 확산하면서 ‘마스터’라는 말에 대한 거부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남부 흑인 노예들이 백인 ‘주인’을 바로 ‘마스터’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노예제도에 대한 반성이 새롭게 대두되면서 무심코 쓰던 ‘마스터’라는 말 대신 새로운 용어를 도입하자는 제안이 등장했고, 그 논의가 본격화하면서 몇몇 지역 부동산 협회에서는 급기야 앞으로 ‘마스터 침실’이라는 말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마스터’에 대한 비판은 젠더 관점에서도 대두되었다. 명사 ‘마스터’는 ‘남성 교사’, ‘남성 세대주’를 뜻하기도 한다. 때문에 ‘마스터’라는 단어가 옛날 영화나 텔레비전 프로에 나오는 남성 중심의 가족을 연상시키니, 오늘날의 여러 가족 형태에 맞지 않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스터 침실’이라는 단어의 대안은 어떤 걸까? 가장 많이 쓰는 건 ‘주 침실’(primary bedroom)이다. 흔히 부모가 자는 방을 뜻했던 ‘마스터 침실’에 비해 애들이 없거나 일인 가구에서 쓰기에도 적합하고 젠더 문제도 없으며, 주인이 다른 곳에 사는 임대 주택에도 자연스럽다.

역사적으로 보면 집 구조의 명칭은 사회 변화에 따라 바뀌어왔음을 알 수 있다. 한국 아파트 도면을 떠올려보자. 한옥 마당처럼 집 가운데 가장 큰 방에는 으레 ‘거실’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영어 ‘리빙 룸’(living room)의 번역어다. ‘거실’은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등장한 용어로 그 당시는 도시 중산층의 시대였다.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1870~1920년 사이 일어난 도시화로 인해 중산층 비율이 26%에서 51%로 늘어난 것이다. 이처럼 50여 년에 걸쳐 전문직 중산층이 등장해 증가하자 새로운 주택이 필요했다. 뉴욕이나 시카고 같은 큰 도시에서는 중산층을 위한 아파트가 등장했지만 인구밀도가 적은 더 많은 도시에서는 단독주택이 인기를 끌었다.

그 이전까지 부유한 집에서는 일반적으로 ‘응접실’(parlor)이 있었다. 손님을 맞이하는 공적 공간이었다. 집 안에서 방 하나를 온전히 공적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는 그 자체가 부의 상징이었다. 이곳에는 사회적 지위의 과시를 위해 예쁜 가구와 장식물을 두었는데, 아주 부유한 집에서는 유화나 조각 같은 미술품을 두기도 했다. 이에 비해 도시 빈민은 주로 방 한두 개 남짓의 작은 집에 살았다.

앞서 언급한, 19세기 말 20세기 초 등장한 중산층은 방 하나를 공적 공간으로 사용할 만큼의 여유까지는 없지만 빈민층보다는 여유가 있었다. 그렇게 해서 등장한 곳이 거실이다. 방 하나를 가족이 대화하는 공간으로 쓴 것이다.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이자 가족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간 거실은 그렇게 탄생했고, 중산층이 계속 늘어나면서 거실이라는 단어가 일반화되고 어느새 응접실은 사라졌다.

변화는 줄곧 이어졌다. 1950년대 티브이가 급속히 보급되면서 거실은 대화하는 방에서 노는 방이 되었다. 1960년대 집 면적이 커지자 티브이를 중심으로 가족이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가족 방’(family room)이 생겼다. ‘마스터 침실’도 이 무렵 일반화되었다. ‘가족 방’이나 다른 침실보다 큰, 가족 중 가장 연장자가 주로 사용하는 ‘마스터 침실’이 있는 집은 중산층의 표본이 되었다.

그리고 2020년 ‘마스터 침실’은 반인종차별 시위로 인해 ‘주 침실’로 명칭이 바뀌고 있지만, 정작 집의 변화는 다른 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코로나19 대란으로 화려한 ‘주 침실’보다 ‘홈 오피스’가 매력적인 공간으로 떠오르고 있다. 1990년대부터 유행한 개방적 도면보다는 작은 방이 많은 집의 인기가 급상승 중이다. 코로나19가 끝나도 예전보다 재택근무는 훨씬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이제 앞으로는 미국의 여러 방은 명칭을 통해 용도를 지정하는 대신 한옥처럼 모두 다 그냥 ‘방’이라는 이름으로 불릴지도 모르겠다.

로버트 파우저 ㅣ 언어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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