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문자와 영어 문자가 함께 표시된 키보드. 픽사베이
로버트 파우저|언어학자
20세기부터 시작한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의 문자 개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넓게 보면 몽골에서부터 중국에 속한 신장위구르자치구, 티베트자치구를 거쳐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을 포함, 인도와 파키스탄 북쪽 지역까지 이어지는 중앙아시아는 역사적으로 수많은 민족과 종교가 교류하면서 문화는 매우 다양하고, 언어 역시 인접한 강대국들의 반복되는 흥망에 매우 큰 영향을 받아왔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언어를 둘러싼 이 지역 상황은 매우 복잡했다. 서북쪽에서는 러시아제국, 남쪽에서는 영국제국, 동쪽에서는 청나라의 영향력이 막강했고, 이러한 제국들이 통치를 강화하면서 지배 계층에서는 자국어보다 이들 언어의 힘이 훨씬 더 강력했다.
20세기 초, 이들 제국의 힘이 약해지면서 언어를 둘러싼 변화가 시작되었다. 1917년 시작한 러시아혁명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러시아제국을 종식시키기 위해 혁명을 주도한 볼셰비키 세력은 소수 민족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방편으로 여러 민족어를 인정하고 나아가 그 사용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1920년대까지만 해도 독자적인 문자를 갖지 못한 이들 소수 민족어를 위한 문자 개발 역시 앞장서 추진했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러시아제국 시대를 상징하던 러시아어의 키릴문자를 쓰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으나, 이 무렵 소수 민족어의 문자를 로마자로 변경하기 시작하면서 소련에 속했던 중앙아시아의 모든 공화국에서 로마자를 도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1930년대 중반 권력을 장악한 스탈린의 독재정권이 막강해지자, 소련은 또다시 ‘러시아어화’를 추진하는 정책을 도입해, 결국 1940년경 소련에 속한 공화국들은 로마자를 버리고 다시 키릴문자를 취해야 했다. 이들 공화국의 의사는 고려하지 않았다.
역사는 또다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하자 많은 나라가 앞다퉈 독립했다. 이들 국가는 민족어 중심의 언어정책을 도입하기 시작했고, 문자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진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그러나 나라마다 상황은 조금씩 달랐다. 러시아인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은 우즈베키스탄은 1992년 그동안 써오던 키릴문자 대신 로마자를 선택했다. 러시아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러시아인 비중이 약 20% 남짓하던 카자흐스탄 역시 로마자를 선택하긴 했지만 이는 러시아와 거리를 두기 위해서라기보다 자국어에 대한 선진적 이미지, 사용의 편리성을 염두에 둔 결정이었다. 2017년 발표한, 아포스트로피 부호(’)가 많은 로마자 안은 비판을 많이 받긴 했지만 2025년까지 수정안을 지속적으로 반영해 나갈 계획을 가지고 있다. 1993년 키릴문자에서 로마자로 바꾼 투르크메니스탄의 선택은 우즈베키스탄과 가까워지기 위해 내린 결정이었다. 언어는 물론 문화적으로 이란과 가까운 타지키스탄은 키릴문자와 로마자, 이란 문자까지 모두 다 사용해온 복잡한 상황으로 인해 여전히 소련 시대의 키릴문자를 사용하고 있다. 키르기스스탄 역시 키릴문자를 그대로 쓰고 있다.
소련에서 독립한 것은 비슷하나 나라에 따라 어떤 문자를 선택하느냐는 조금씩 다른 양상을 보인 셈이다. 1911년 청나라에서 독립한 몽골은 몇 차례 변화를 겪었다. 독립 후 중국과 거리를 두기 위해 1931년 전통문자 대신 로마자를 도입했지만, 1941년에는 한창 유행을 타던 키릴문자를 도입했다. 소련 붕괴 이후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여러 국가와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자국의 전통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전통문자에 대한 자부심이 새롭게 대두되면서 학교에서 전통문자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후 1990년 전통문자 부활을 둘러싼 공론화가 대두되면서 2020년 봄, 2025년까지 전통문자 상용을 확대하고 키릴문자와 함께 공문서에 사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처럼 20세기에 시작한 중앙아시아 여러 국가들의 문자 개혁은 21세기인 오늘날까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들 국가가 문자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자국어에 대한 자부심, 이를 통한 국가의 정체성 확립이다. 이미 21세기에 접어든 세계적인 추세로만 보자면 이러한 노력은 시대에 뒤떨어진 20세기적 발상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자국어의 문자를 스스로의 결정으로 가져보지 못한 이들 국가들이 갖기 위해 노력하는 ‘자국어에 대한 자부심’을 그저 한물간 인식으로 치부하는 것은 어딘지 공평하지 않다. 그런 시선이야말로 강대국 입장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어쩌면 매우 배부른 자들의 태도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