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홀로페르네스를 죽이는 유디트>(1620), 캔버스에 유채, 146.5×108㎝, 우피치 미술관의 90호실, 이탈리아 피렌체.
김민형 ㅣ 워릭대 수학과 교수
이번 여름 서울에 와서 격리 기간을 끝내자마자 트레바리라는 독서클럽에서 강연을 했다. 물론 코로나 확산에 대한 걱정 때문에 여러 번 망설였다. 그러나 정부 지침을 잘 지키면서 교육문화 행사를 무난히 개최할 수 있는 모습도 나름대로 의미 있다는 주최측 논리에 설득돼서 인원수 제한, 연속적인 환기, 강사와 참여자 전원 마스크 착용 등을 시행하면서 조심스럽게 행사를 진행했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두시간 넘는 저녁 강의에 집중하면서 수준 높은 질문을 계속 던져준 관중의 열의에 감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강의 주제는 17세기 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그림 <홀로페르네스를 죽이는 유디트>에 나타나는 과학이었다. 목을 베는 순간 뿜어져 나오는 핏줄기의 궤적이 포물선을 그리며 갈릴레오의 최신 탄도학 이론을 반영하고 있었다는 몇몇 역사학자들의 가설을 대학생, 중고등학교 교사, 화가, 회사원 등으로 이루어진 다양한 청중은 고맙게도 관심 갖고 들어주었다. 사실 1610년대에 피렌체의 디자인 아카데미와 토스카나 대공작의 궁정에서 두 사람이 교류하면서 그 이론이 직접 전해졌을 가능성이 있다. 발사된 물체가 직선운동을 하다가 동력이 소비되면 떨어진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옛 이론을 1600년경에 갈릴레오가 세밀한 실험과 과감한 수학적 통찰의 결합으로 깨뜨린 것이 문화예술계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는 이야기다.
아르테미시아는 당대 여성으로는 극히 드물게 화가로서 각광을 받아서 피렌체, 로마, 나폴리, 베네치아 등을 여행하면서 약 60점의 걸작을 남겼고 40대에는 영국으로 건너가 찰스 1세의 궁전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17세기 이후로 오랫동안 회화의 역사에서 잊혔던 그녀는 20세기 후반부터 대대적으로 재평가를 받아서 현세대의 시각으로는 바로크 시대 최고의 화가 중 하나로 굳게 자리 잡고 있다. 그녀는 1656년경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당시 나폴리 왕국을 휩쓸며 100만명 이상의 죽음을 재촉했던 흑사병 때문이었다고 짐작된다.
흑사병의 가장 처절한 효과는 중세 말에 나타났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 이후로도 주기적으로 돌아오며 수차례에 걸쳐 세계적인 재앙을 가져왔다. 17세기에는 오스만 제국, 그리고 유럽 전역을 공포에 몰아넣으며 특히 상황이 심각했던 이탈리아 외에도 프랑스에서는 1628년에서 31년 사이에만 100만명 이상 죽었고 1665년의 대역병 때문에 런던 인구가 25% 정도 감소했다고 전해진다. 물론 지금 이야기한 모든 숫자를 의심하며 보아야 한다. 공식 기록이 드문 당시 인구를 책정하는 것 자체가 어렵고, 런던같이 비교적 기록이 잘 보존된 도시에서도 사인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교구마다 ‘사망자 추적원’을 한두명 임명해서 교회에 보고하도록 했지만, 그들은 대체로 가난하고 글도 모르는 일반 시민이었고 사망자 가족의 부탁으로 거짓 보고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몇몇 역사학자들은 17세기를 ‘위기의 세기’로 분류하기도 한다. 질병의 효과도 심각했지만 세계 전역의 연동적인 정치적 혼란이 영국의 내전, 프랑스 투석기의 난, 신성로마제국의 30년 전쟁, 그리고 멀리 중국에서는 명나라의 붕괴까지 가지고 왔다는 주장이다. 최근에 역사학자 제프리 파커는 이런 글로벌 위기의 원인을 기후변화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시기적절한 이론을 펼치기도 한다.
놀라운 것은 위기의 세기가 과학혁명의 세기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갈릴레오가 이룩한 이론과학의 개혁은 1687년에 뉴턴의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의 발행으로 이어져서 인류의 우주관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고, 세포의 발견, 혈액순환의 체계적인 묘사, 미적분학의 개발, 확률론의 정립, 이 모든 업적이 17세기에 이루어졌다. 예술계에서는 아르테미시아 외에도 벨라스케스, 렘브란트, 페르메이르, 엘 그레코 등이 다 17세기의 혁신적인 화가들이고, 셰익스피어 연극의 상당수도 17세기에 쓰였다. 몬테베르디와 퍼셀도 대부분의 작품을 17세기에 작곡했고, 세기의 후반부는 바흐, 비발디, 헨델 등의 탄생을 목격했다. 네덜란드 독립전쟁 때문에 제국이 흔들리던 시기의 스페인에서는 세르반테스가 불후의 명작을 집필하고 있었다.
세계가 다 그렇지만 유럽의 역사를 읽으면 일종의 평행 우주를 연상하게 될 때가 많다. 문화의 역사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창조적인 에너지가 이룩한 문명의 발전만 보아서는 그 주위로 펼쳐지는 정치사회적 혼란을 짐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현대 대학의 테두리 안에서 안정과 평화를 연구의 필요조건으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나 같은 교수에게 보내주는 교훈이 있을 것이다. 전염병의 위기 속에서도 강연을 진행한 것이 작게나마 좋은 결정이었기를 바란다.
* 바로 잡습니다
당초 원문에는 “17세기에는 동로마, 오스만 제국, 그리고 유럽 전역을 공포에 몰아”넣었다고 소개됐으나 ‘동로마’는 해당되지 않아 이후 삭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