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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진핑-트럼프 적대적 공생

등록 2020-07-21 18:36수정 2020-07-30 15:51

박민희의 시진핑 시대 열전 _ 02

미 대선 이후 미-중 ‘신냉전’은 위태로운 대결로 향할 수 있다. 특히 트럼프가 패배해 조 바이든이 이끄는 민주당 정부가 등장한다면 미국의 중국 봉쇄 전략이 훨씬 정교해질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 중국의 고민이다. 시진핑 지도부는 바이든보다는 트럼프가 재선되는 게 중국에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움직인다.

2017년 11월8일 중국 베이징 자금성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부인 멜라니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부인 펑리위안이 함께 공연을 보면서 대화하고 있다. 베이징/AP 연합뉴스
2017년 11월8일 중국 베이징 자금성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부인 멜라니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부인 펑리위안이 함께 공연을 보면서 대화하고 있다. 베이징/AP 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절대권력이 동요했던 하루를 꼽는다면 2020년 2월6일을 떠올릴 것이다.

코로나19로 중국이 혼란과 고통의 터널 한가운데 있던 그날 밤, 봉쇄 상태에 있던 후베이성 우한에서 의사 리원량이 숨졌다. 밤 9시30분께 리원량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처음 나왔으나 곧 검열로 삭제됐다. 공식 발표는 다음날 새벽 3시께 나왔다. 여론의 분노를 우려한 당국이 발표 시간을 늦춘 것이다. 리원량은 지난해 12월 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다는 소식을 처음으로 알렸다가 유언비어를 퍼뜨렸다며 공안에 잡혀가 처벌을 받은 뒤, 자신도 코로나19에 감염돼 숨졌다. “사회에 하나의 목소리만 있어서는 안 된다”는 그의 유언과 같은 발언이 한동안 온 중국을 뒤흔들었다. 죽은 리원량이 산 시진핑의 권력을 뒤흔들고 있었다.

시진핑을 구한 것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었다. 중국의 코로나19 상황이 안정되어가던 3월 초부터 미국은 대혼란에 빠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무책임하고 무능한 대응으로 빚어진 미국의 참상이 드러나자, 인구 1100만명의 대도시 우한을 77일 동안 완전히 봉쇄하는 초강수로 상황을 통제한 시진핑 지도부의 비교우위가 두드러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부실 대응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중국 때리기를 강화할수록, 중국 공산당은 미국에 단호히 맞서는 모습으로 국내에서 애국주의를 강화했다. 트럼프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우한 실험실 발원설’이란 음모론을 내놓자, 중국 외교관들은 ‘미국 운동선수들이 바이러스를 퍼뜨렸다’는 음모론으로 맞섰다. 중국 당국은 “중국이 희생해 세계를 구했다”며 선전에 나섰고, 여러 나라에 마스크와 방역물자를 지원하며 ‘구원자’를 자임했다. 리원량 사후 정부를 비판하고 언론자유를 언급하던 글들은 삭제되고, 우한의 진상을 알리려던 시민기자들은 체포되고 실종됐다. 미국과 서구 국가들의 무능한 대응과 참상은 중국공산당이 권위주의적이고 강압적이더라도 매우 유능하다는 결론을 뒷받침하는 생생한 사례가 됐다.

중국 공산당의 정통성을 떠받치는 두개의 기둥은 경제성장과 애국주의다. 코로나19로 중국 전역이 사실상 두달 가까이 봉쇄됐던 여파로 1분기 중국 성장률은 -6.8%를 기록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전부터, 중국 경제에는 성장률 하락, 지방정부 부채, 부실 금융 악화 등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중국은 올해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성장률 목표치를 제시하지 못했다. 2분기 성장률은 3.2%로 반등했지만, 정부가 신인프라건설(新基建·5G·인공지능 등과 관련한 기반시설 건설)에 대규모 투자 등을 해서 끌어올린 성장이고 수출·내수·취업 상황은 여전히 불안하다.

경제적 불안이 클수록 중국은 다른 한 축인 애국주의를 강화한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코로나19 대응 실패 책임을 떠넘기려 ‘중국 때리기’를 강화할수록, 시진핑 주석은 미국과의 ‘강 대 강’ 대립으로 애국주의를 강조하며 국내 여론을 통제하고 있다. 시진핑과 트럼프는 서로를 간절히 필요로 하는 ‘적대적 공생’ 관계다. 트럼프가 자신이 중국을 더 강하게 압박할 수 있기 때문에 재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시진핑은 자신의 통치 아래서 강해진 중국이 이제 미국에도 할 말을 하고 대등하게 싸울 수 있음을 과시한다. 시진핑의 ‘트럼프 사용법’이다.

시진핑과 트럼프의 첫 만남은 2017년 4월6일 미 플로리다주 팜비치에 있는 트럼프의 별장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열린 정상회담이었다. 대선 선거운동 당시부터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중국으로부터 일자리와 경제적 이익을 되찾아오겠다며 중국을 공격했던 트럼프는 시진핑과 정상회담 뒤 만찬을 하던 도중 시리아 정부군 공군 기지를 토마호크 크루즈 미사일 수십발로 폭격했다고 공개했다. 기선제압을 위한 깜짝쇼였다.

그해 11월 시진핑 주석은 중국 베이징의 자금성을 통째로 비워 트럼프 대통령을 맞이했다. 국빈급 이상의 ‘이례적 대접'인 동시에 국가주석 임기 제한 철폐로 ‘1인 천하' 권력을 다지려 하고 있던 시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을 자금성에서 맞이하는 ‘황제의 의전’으로 미국과 동등한 위상을 과시하려는 의도가 엿보였다.

초호화 대접을 받고 돌아간 뒤 2018년 초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의 무역전쟁 포문을 열었다. 중국의 대미 무역 흑자를 겨냥한 관세 전쟁과 함께 중국 정부가 주도하는 첨단기술 육성 및 기술 자급자족 정책인 `중국제조 2025’를 겨냥한 공세를 이어갔다. 전세계 5G 네트워크에서 중국 기업 화웨이의 장비를 몰아내기 위해 한국, 일본, 유럽 국가들을 압박했다. 올 들어 미국은 중국의 코로나19 책임론을 강하게 거론하면서, 미국이 주도하는 전세계 금융·생산 시스템에서 중국을 쫓아내는 디커플링까지 위협하고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홍콩에 대한 특별대우를 끝내는 행정명령과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에 관여한 중국 관리들과 거래하는 은행들을 제재하는 법안에 서명하면서, 미-중 ‘금융전쟁’ 경고음도 울리고 있다.

하지만 겉보기에 요란한 미국의 대중국 공세에도 불구하고, 11월 대선 이전까지 트럼프 행정부가 경제·금융 분야에서 실제로 중국에 결정적 타격을 줄 조처를 실행할 가능성은 낮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회고록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6월 오사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주석에게 자신의 대선 승리를 도와달라며 미국산 대두와 밀 수입을 늘려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고 폭로했다. 겉으로는 무역전쟁에서 중국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었지만 막후에서는 중국에 손을 벌리는 거래를 한 것이다. 미-중이 올해 초 맺은 1단계 무역 합의에서 중국은 농산물 등을 비롯한 미국산 제품 2000억달러어치를 사기로 약속했다. 트럼프의 대선 승리 가능성은 중국이 이를 약속대로 사느냐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중국이 트럼프의 중요한 약점을 잡고 있는 셈이다.

코로나 사태로 위기에 몰린 트럼프는 경제적 성과와 중국의 도움이 더욱 절박하다. 홍콩 국가보안법 통과 이후 미국의 중국에 대한 대응은 최대한 강경하게 보이되 실제로는 조심스러운 정치 쇼였다. 트럼프 행정부는 홍콩에 대한 달러 공급 제한도 검토하다 접었다. 1달러를 7.75~7.85홍콩달러로 고정시킨 홍콩달러 페그제를 흔드는 이런 조처는 홍콩과 중국 금융 시스템의 급소를 찌르는 것이지만, 홍콩에 진출해 있는 미국 기업과 미국 금융자본도 큰 타격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군사적 대치나 홍콩·신장위구르 문제를 둘러싼 기싸움은 계속하겠지만, 적어도 미 대선 때까지 중국의 급소를 겨냥하는 미국의 결정적 한방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미 대선 이후 미-중 ‘신냉전’은 위태로운 대결로 향할 수 있다. 특히 트럼프가 패배해 조 바이든이 이끄는 민주당 정부가 등장한다면 미국의 중국 봉쇄 전략이 훨씬 정교해질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 중국의 고민이다. 시진핑 지도부는 바이든보다는 트럼프가 재선되는 게 중국에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움직인다. 중국 공격의 선봉에 선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양제츠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이 6월17일 하와이에서 1박2일 비공식 회담을 한 것은 일종의 ‘휴전 밀약’으로 볼 수 있다. 미·중 모두 겉으로는 강경하지만 당분간 상황 관리를 원한다는 신호다. 중국 견제 필요성에 대해서는 민주, 공화당 구분 없이 미국 내에서 초당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는 것을 중국도 잘 알고 있다. 트럼프의 반중 공세는 중국이 농산물 구매 등의 ‘거래’로 관리할 수 있다. 민주당 정부가 들어설 경우, 금융·첨단기술·인권 문제에서 중국을 더욱 날카롭게 공략할 것이고 특히 트럼프가 뒤흔들어놓은 미국의 동맹들을 재규합해 중국을 포위하는 상황을 시진핑 지도부는 우려한다. 반면, 트럼프가 재선된다면 독일, 프랑스 등은 ‘미국과의 결별’을 고민할 것이다. 중국은 이를 활용해 지정학의 판을 바꿀 전략을 구상하고 있을 것이다. 중국-이란이 곧 체결할 것으로 알려진 ‘협력 협정’도 이와 관련한 준비 작업이다.

미국이 구축한 국제질서가 심각한 한계를 드러내는 상황에서, 중국은 일대일로(육해상 신실크로드) 정책을 통해 새로운 국제질서 또는 천하질서를 실험해왔다. 시진핑 지도부는 중국이 더 이상 서구의 제도와 사상을 따르지 않고 ‘중국의 길’을 가겠다고 선언했다. 덩샤오핑이 설계한 ‘도광양회’(실력을 감추고 힘을 기른다)의 규범을 충실히 연기했던 전임자 후진타오와 달리, 시진핑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기치 아래 공세적 외교를 추진했다. 중국은 미국 힘의 공백을 틈타 홍콩, 신장, 남중국해, 대만, 인도와의 국경 분쟁 등에서 초강수를 두고 있다. 미국이 전열을 정비한 뒤 본격적으로 중국 포위에 나설 가능성에 대비해, 약점이 될 만한 위험 요소들의 싹은 모두 자르겠다는 행보다. 홍콩 국가보안법 입법을 강행한 것은 미국이 홍콩을 조종해 중국을 흔들거나 홍콩의 민주화 시위가 본토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포석이다.

국제적 비판이 고조될수록 중국은 힘을 과시하려 한다. 중국 지도부는 물러서거나 타협하는 모습을 보이면, 미국이 약점을 파고들게 되고 국내에선 시진핑의 지도력에 도전하려는 세력의 빌미가 될 것이라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 소련 붕괴의 교훈, 문화대혁명의 트라우마와 함께 미국과의 대결에 대한 위기감은 시진핑 체제를 만들어낸 3대 축이라 할 수 있다. 힘을 통해 ‘중화 제국의 부활’을 거듭 확인하려는 중국의 행보에 주변국들에는 불안감이 번져가고 있다.

박민희 논설위원. 대학과 대학원에서 중국과 중앙아시아 역사를 공부했다. 중국 인민대학에서 국제관계를 공부한 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한겨레> 베이징 특파원으로 중국 곳곳을 다니며 취재했다. <중국을 인터뷰하다>(공저)를 썼고, <중국과 이란> 등의 책을 번역했다. ‘혐중’에 반대한다.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공정한 이해와 동행을 희망한다.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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