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 장잔이 지난해 2월 코로나19로 봉쇄된 우한의 상황을 취재해 유튜브 등을 통해 보도하던 모습. 유튜브 갈무리/AFP 연합뉴스
시민기자들의 침묵을 강요하는 ‘실종’에는 ‘중국이 공산당의 지도 아래 코로나와의 싸움에서 승리했다’는 공식 역사 이외의 내용은 모두 지우려는 중국 당국의 의도가 담겨 있다. 중국의 성공 스토리에 흠집이 나는 것을 막으려는 중국 당국과 중국의 초기 대응 실패로 전세계가 겪는 고통을 상기하려는 외부 세계 사이에 ‘기억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장잔(張展)은 2020년 2월1일 충칭행 기차표를 산 뒤 도중에 후베이성 우한의 한커우역에서 몰래 내렸다.
우한에서는 2019년 말 ‘정체불명의 폐렴’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지만, 당국은 2020년 1월 하순까지도 바이러스가 우한 도시 전체로, 중국 각지로,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막지 않았다. 1월19일 밤까지도 중국 관영 <중국중앙텔레비전>(CCTV) 메인뉴스인 ‘신원롄보’는 시진핑 국가주석이 운남성 소수민족 거주지를 방문해 빈곤 퇴치와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 성과를 과시하는 모습을 20분 넘게 상세하게 보도했을 뿐, 절규하는 우한의 상황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1월20일 중국 당국은 ‘신형 바이러스’가 사람 사이에 전염될 수 있다고 처음으로 인정했고, 23일 오전 0시엔 예고 없이 인구 1천만명이 넘는 대도시 우한을 봉쇄했다.
관영언론에 속하지 않은 시민기자인 장잔은 봉쇄된 도시의 진실을 찾아 ‘잠입’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금융을 전공한 뒤 2010년 상하이로 가 변호사가 된 장잔은 이후 인권운동에 참여하다가 변호사 자격증을 박탈당한 상태였다. 그는 인터넷에 중국공산당의 권력 남용과 부패를 비판하는 글을 썼고, 2019년 홍콩 송환법 반대 시위 소식을 전하는 글들을 올리고, 상하이 도심에서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1인시위를 벌이다가 체포돼 2개월 동안 구금되기도 했다.
심각한 일이 아니라고 주장하던 당국이 별안간 우한을 봉쇄하자, 중국 민심은 분노로 가득했다. 당국은 여론을 통제하면서 관영언론을 통해 당국의 영웅적인 대응을 홍보하는 선전전에 들어갔다. 장잔은 위험을 무릅쓰고 몰래 우한에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그는 경찰과 보안요원들의 방해와 코로나19에 전염될 수 있다는 두려움 속에서도 거의 매일 병원과 화장장과 거리를 다니며 촬영한, 봉쇄된 도시의 막막한 실상을 웨이보와 유튜브, 트위터에 올렸다. 입원실이 부족해 산소마스크를 쓴 중증 환자들이 병원 복도에 빽빽이 누워 있는 장면, 밀려드는 사망자들로 24시간 가동하는 화장장, 부모와 자녀를 잃은 가족들의 비통함을 봉쇄된 도시 밖으로 알렸다. 5월14일 장잔이 체포돼 거주지인 상하이로 압송될 때까지 그의 보도는 계속됐다.
2020년 12월28일 상하이 푸둥신구 인민법원은 장잔에게 사회소란죄 유죄판결을 내리고 4년형을 선고했다. 방청도 허용되지 않고 판결문도 공개되지 않았다. 장잔은 체포된 직후부터 거듭 단식투쟁으로 당국에 항의하며 유죄 인정을 거부했다. 간수들은 장잔의 팔을 묶고 억지로 관을 꽂아 음식을 강제로 주입하고 있으며, 그의 건강이 심각하게 악화돼 화장실에 갈 때도 부축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고 법정에도 휠체어를 타고 나왔다고 장잔의 변호인은 전했다.
우한을 취재 중인 시민기자 천추스. 우한/로이터 연합뉴스
장잔에 앞서 먼저 봉쇄된 우한 취재에 나선 것은 천추스(陳秋實)였다. 1985년생인 그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뒤 베이징으로 가 생활하면서 텔레비전 프로그램 ‘나는 연설가’에 출연해 유명해지기도 했다. 2015년 변호사 자격을 취득해 로펌에서 지적재산권, 노동법 관련 업무를 맡았다. 2019년에는 홍콩 시위를 직접 취재하러 가기도 했다. 2020년 1월23일(또는 24일) 그는 우한에 도착해 시민들을 인터뷰하고 여러 병원들을 돌아다니며 취재를 시작했다. 1월30일에는 입원실이 부족해 병원 복도에 많은 사람들이 누워 있는 병원들의 동영상을 올리면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나는 무섭다. 내 앞에는 질병이 있고, 뒤에는 중국의 사법권력이 있다. 하지만 내가 살아 있는 한, 나는 내가 본 것과 들은 것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죽는 것은 두렵지 않다. 내가 왜 당신들, 공산당을 두려워해야 하는가.” 그는 2월6일 실종됐다. 현재 삼엄한 감시 아래 가택 연금 상태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외부와의 연락은 끊긴 상태다.
2020년 2월7일, 유튜브에 ‘복종하지 않는 텔레비전’(不服TV)이라는 채널이 등장했다. 진행자인 리쩌화(李澤華)는 얼마 전까지 관영 <중국중앙텔레비전>의 음식 프로그램 진행자였다. 우한 봉쇄 직후인 1월 말 그는 <중국중앙텔레비전>에 사표를 낸 뒤 2월 초 봉쇄된 우한으로 몰래 들어갔다. 그는 우한의 바이부팅 지역을 찾아가 시민들을 취재했다. 바이부팅은 코로나가 확산된 가운데 “사람 간에 전염되지 않는다”는 당국의 발표를 믿고 2020년 1월18일 4만여명이 함께 음식을 나눠 먹는 잔치를 열었다가 폭발적 감염의 진원지로 지목됐던 곳이다. 주민들은 그에게 “우리는 전혀 상황을 모른다. 몇동 몇호 사람이 열이 난다는 소문들이 들리는데 정부는 상황을 공개하지 않는다”며 모두들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했다. 리쩌화는 우한시의 여러 화장장들이 밀려드는 주검들을 화장하느라 매일 24시간 운영하는 현장도 보도했다.
그는 2월26일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에서 우한의 ‘P4바이러스연구소’(중국과학원 우한국가생물안전실험실)를 취재하다가 국가기관에 쫓기고 있다고 다급하게 호소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발원지일 가능성이 거론되는 민감한 연구소를 직접 찾아간 것이다. 이날 밤 리쩌화는 유튜브 중계 화면을 켜놓고 스스로 ‘최후진술’을 한 뒤 누군가에게 끌려갔다. 그는 “나는 왜 시시티브이(CCTV)에 사표를 냈는가. 중국에서 더 많은 젊은이들이 일어서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 나는 이상주의가 그해 봄과 여름이 교차하던 시기에 이미 파멸했고(1989년 6월4일 천안문 시위 유혈진압을 말함), 조용히 앉아만 있어서는 어떤 역할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했다.
리쩌화가 지난해 2월26일 우한 바이러스연구소를 취재하러 갔다가 쫓기고 있다며 유튜브를 통해 방송하고 있다. 유튜브 갈무리
장잔에 대한 가혹한 처벌, 그리고 다른 시민기자들의 침묵을 강요하는 ‘실종’에는 ‘중국이 공산당의 지도 아래 코로나와의 싸움에서 승리했다’는 공식 역사 이외의 내용은 모두 지우려는 중국 당국의 의도가 담겨 있다. 중국의 성공 스토리에 흠집이 나는 것을 막으려는 중국 당국과 중국의 초기 대응 실패로 전세계가 겪는 고통을 상기하려는 외부 세계 사이에 ‘기억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중국 정부는 ‘우한이 코로나19 발원지가 아니며, 국외에서 발생한 바이러스가 유입됐다’는 주장을 계속 내놓고 있다. 2020년 자오리젠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을 방문했던 미국 병사들이 코로나19를 퍼뜨렸을 가능성을 주장했고, 2021년 1월 왕이 외교부장은 “우리는 서둘러서 처음으로 세계에 바이러스 상황을 보고한 국가다. 점점 더 많은 연구들이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각각의 바이러스에 의해 팬데믹이 일어났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가 어떻게 발생해 인간에게 감염되었는지를 조사하려는 세계보건기구(WHO) 조사팀이 우한에 들어가기까지는 1년도 넘는 시간이 걸렸다. 2021년 1월14일 조사팀은 마침내 우한에 도착했지만, 이미 첫 발원지로 알려진 화난수산물 시장은 봉쇄된 채 많은 것들이 치워졌고, 중국 당국은 초기 환자들과 관련된 가공되지 않은 원자료를 내놓지 않았다.
코로나19로 극심한 고통을 겪는 전세계에서 중국에 대한 분노와 원망이 높아진 가운데, 중국은 ‘우리는 코로나19를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극복했다’는 성과를 과시하면서, 초기 방역 실패의 교훈은 망각으로 밀어넣으려 한다. 중국의 코로나 대응은 극과 극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발병 초기 정보를 은폐해 사태를 악화시킨 것은 통제 국가의 위험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우한 봉쇄 이후 강력한 국가권력의 힘으로 효율적으로 상황을 통제한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당국이 초기 대응 실패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진실을 지우려 하는 것이다. 이는 중국과 외부 세계가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없애고, 중국 내에서 진실을 요구하는 이들을 억압한다.
중국 당국이 초기에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고 우한 시민들이 국내외로 이동하는 것을 제한했다면, 세계는 지금 어떤 상황일까. 코로나19의 고통 속에서 우리가 중국에 바란 것은 ‘우리가 처음에 조치를 해서 이런 혼란을 막았어야 했는데 미안하다. 새로운 전염병이라서 대처에 미흡했다. 함께 진상을 규명하고, 극복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사과가 아닐까.
시진핑 시대 들어와 당의 영도와 애국주의가 강조될수록, 사회의 문제,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보도하려는 언론인들의 침묵을 강요하는 압박은 점점 강해졌다. 시진핑 주석은 언론의 역할에 대해 “긍정적인 에너지를 확산시키고, 당을 사랑하고 당을 보호하고 당을 위해 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2019년 10월부터 중국 정부는 자국 언론인들이 5년에 한번 기자증을 갱신할 때마다 ‘시진핑 사상’ 시험을 의무적으로 치르도록 했다. 당과 주석에 충성하는 것이 언론의 가장 중요한 요건이 되었다.
당내 문제를 비판한 지식인과 학생 등 55만명이 우파로 몰려 숙청된 반우파투쟁(1957~1959), 수천만명이 굶주림과 질병으로 숨진 대약진운동(1958~1960), 문화대혁명(1966~1976)의 혼란, 천안문 시위 유혈진압(1989년)에 대해 중국 당국은 피해자들에게 사과한 적이 없고 진상 규명도 허용하지 않는다. 코로나19의 진상 규명도 그렇게 또 하나의 금기어가 되어가고 있다. 중국은 세계를 향해 ‘코로나는 우리 책임이 아니고, 우리는 승리했다’는 서사를 강요하고 있다. 진실을 지우려는 권력에 도전한 시민기자들은 자신들을 희생해 우리에게 외친다. ‘망각을 거부하라’고.
박민희 ㅣ 논설위원. 대학과 대학원에서 중국과 중앙아시아 역사를 공부했다. 중국 인민대학에서 국제관계를 공부한 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한겨레> 베이징 특파원으로 중국 곳곳을 다니며 취재했다. <중국을 인터뷰하다>(공저)를 썼고, <중국과 이란> 등의 책을 번역했다. ‘혐중’에 반대한다.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공정한 이해와 동행을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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