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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최병두 칼럼] 성장의 한계와 탈성장사회

등록 2020-06-21 16:55수정 2020-06-22 13:55

코로나19는 성장의 한계에 쐐기를 박았다. 이후 사회는 성장의 한계를 극복한 탈성장사회라야 한다. 무한 복률 성장을 추구하는 경제체제에서 벗어나 경제·생태 위기를 자율적으로 통제하고 ‘성장을 위한 성장’이 아니라 생명과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사회이다.

최병두 ㅣ 한국도시연구소 이사장

세계 경제는 성장의 한계에 봉착했다. 세계은행의 발표에 따르면,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은 -5.2% 역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1월 발표한 전망치 2.5%보다 무려 7.7%포인트 낮아졌다. 선진국이 개도국보다 더 심각하여 각각 -7.0%, -2.5%로 예측된다. 내년에는 올해 역성장에 따른 기저효과로 기존 전망치 2.6%보다 높은 4.2%로 추정된다.

이러한 전망은 코로나19 대유행의 현 상황을 반영한 것이지만, 올해 하반기에 대유행이 재발할 경우 전망은 더 암울해진다. 전경련의 조사에 의하면, 주요 국가의 대표 경제단체들 중 절반 이상이 세계 경제가 다소 회복세를 보이다 다시 침체에 빠지는 ‘더블딥’ 현상을 보일 것이며, 내년 하반기에야 완전 회복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세계 경제를 이렇게 전망한 주체가 자본을 대변하는 세계은행과 선진국 경제단체들임을 고려하면, 이런 전망조차 낙관적인 것 같다. 사실 선진국 경제성장률은 1970년대 3% 수준에서 계속 하락하여 2000년대에는 1% 유지조차 힘겨웠다. 선진국들은 이 기간에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촉진했지만, 이를 선도했던 미국, 영국 등은 몇년 전부터 보호무역주의로 선회했다.

코로나19는 성장의 한계에 쐐기를 박았다. 신자유주의로 인한 양극화로 코로나19의 충격은 하위계층에 더 큰 피해를 주고 있다. 세계화의 근간이었던 글로벌 가치사슬은 교역 중단으로 해체될 처지다. 변동성이 커진 금융자본은 대규모 재정 투입으로 일단 유동성을 확보했지만, 국가 부채를 급증시킨다. 경제성장이 종말은 아닐지라도 한계에 이른 것은 분명하다.

자본주의는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의 끝없는 확대재생산에 기반을 둔다. 즉 자본은 나선형으로 커지는 복률 경제성장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복률 성장을 위해 다른 부문들이 희생되고 여러 모순과 위기들이 초래된다. 방역과 경제, 즉 자연과 자본 간 모순과 코로나19 위기는 성장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코로나19 이후 사회는 성장의 한계를 극복한 탈성장사회라야 한다. 생태경제학자 세르주 라투슈의 책, <성장하지 않아도 우리는 행복할까?>의 표지에는 달팽이가 그려져 있다. 달팽이는 탈성장의 상징이다. 달팽이는 점점 더 커지는 나선형 껍질을 만들다가 어떤 시점에 도달하면 나선을 줄여간다. 나선을 한번 만들면 껍질의 크기가 16배 증가하여 일정 크기를 지나면 그 부담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경제와 달팽이 껍질은 둘 다 나선형으로 성장한다. 하지만 전자는 무한 복률 성장을 스스로 제어하질 못해 위기에 직면하지만, 후자는 생태적 한계에 따라 스스로 성장을 통제한다. 최근 코로나 이후에 관한 논의에서 ‘90% 경제’ 개념과 유사하다. 코로나19가 일단 진정된다고 할지라도 2, 3차 대유행의 위험 때문에 경제활동은 이전보다 90% 수준으로 축소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탈성장의 개념은 로마클럽의 <성장의 한계>나 ‘지속가능한 발전’의 개념에도 내포되어 있다. 이에 관한 최근 논의는 다양한 이념적 편차를 가지지만, 대체로 코로나19로 인한 역성장과 불확실성에 대한 대책,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의 성장 강박증과 생태위기 등에 대한 성찰에 근거한다. 지난 5월 유럽에서 ‘인류의 미래를 위한 탈성장 선언문’이 발표되기도 했다.

탈성장사회는 무한 복률 성장을 추구하는 경제체제에서 벗어나 경제·생태 위기를 자율적으로 통제하고 ‘성장을 위한 성장’이 아니라 생명과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사회이다. ‘선언문’에 제시된 것처럼, 탈성장사회에서 경제체제는 생명을 중심에 두고, 좋은 삶을 위해 필요한 노동을 재평가하며, 기본소득 등을 통해 생활에 핵심적인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고, 기업과 금융 권력을 민주적으로 통제하면서, 국가 간, 집단 간, 세대 간 연대의 원칙을 실행한다.

지난 6·10 민주항쟁 기념사에서 대통령은 코로나 이후의 새 국정기조로 실질적 민주주의와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정책적 방향성으로 ‘지속가능한 평등경제’를 언급했다. 그러나 실제 이를 위해 제시된 ‘한국형 뉴딜’은 당면한 성장의 한계를 또 다른 성장전략으로 덮으려 할 뿐이고, 실질적 민주주의와 평등경제와는 오히려 더 멀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세계 경제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이 생산하고 부를 축적했지만, 빈곤과 불평등은 심화하고, 지구는 더 황폐해졌다. 한국 경제도 예외는 아니다. 코로나19 이후 사회를 위해 할 일은 한계를 드러낸 기존 경제체제를 부활시키기 위해 애쓸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다른 사회, 즉 탈성장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새로운 발걸음을 시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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