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상 중인 그린뉴딜은 진정한 녹색전환 대책이라 보기 어렵다.
지난 정권의 ‘녹색성장’ 모델에서 대규모 토목사업만 뺀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한국형 뉴딜이 생태위기의 극복과 새로운 사회를 위한 대책이라면, 위기를 초래한 사회경제 체제의 전환에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최병두 ㅣ 한국도시연구소 이사장
현재 인류는 두 가지 절박한 생태위기에 봉착해 있다. 하나는 기후위기다. 지구 기온이 산업혁명 이후 1도가량 올랐고, 이로 인해 빙하 소실과 해수면 상승, 폭염과 폭우, 대형 산불 등 기후 재난이 빈발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1.5도 더 오르면 인류가 파멸할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기후위기의 파국을 막기 위해 남은 시간은 불과 10년 정도다.
다른 하나는 코로나19 위기다. 전세계 확진자가 하루 약 10만명씩 늘어나 5월 말 누적 600만명에 육박했다. 그 기세가 언제 꺾일지 알 수 없다. 자연에서 진화한 바이러스가 야생동물을 통해 인체에 감염된 이 전염병은 예방 백신과 치료법이 아직 없다. 변형된 바이러스가 계속 출현하여 인류의 존립을 위협할 것이 예견된다.
이 위기들은 자연의 위험요소들이 인간 생존과 사회 활동에 엄청난 충격을 주고 인류의 종말을 초래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들은 자연 그 자체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근대적 인간의식과 사회경제 체제에 의한 자연의 황폐화에서 기인한다. 생태적 위기는 단지 경기순환에 따른 경제위기나 여타 사회정치적 위기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 같은 생태위기의 극복은 표피적 현상들에 대한 대증요법보다 심층적 원인에 대한 근본 치료를 요구한다. 물론 무섭게 번지는 산불이나 전염병을 신속하게 통제하는 대책이 우선 필요하다. 그러나 대증요법일지라도 근원 해소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런 점에서 현상 복귀적 논리나 대책이 아니라 새로운 생태사회로 나아가는 녹색전환의 논리와 대책이 필요하다.
정부는 코로나19 위기로 악화된 경제를 살리기 위해 대규모 재정을 투입하는 ‘한국형 뉴딜’을 구상·시행하려 한다. 처음 발표 때 이 대책의 핵심 내용은 디지털 인프라 구축, 비대면 산업 육성, 사회간접시설의 디지털화였다. 이 대책은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성장동력의 확충에 초점을 두지만, 일자리 창출이 미흡하고 ‘비대면’의 고착화를 전제로 한다.
국내외 많은 단체뿐 아니라 정부와 여당 안에서도 디지털 중심 대책의 한계를 지적하고, 보완책으로 그린뉴딜을 제시했다. 한국형 뉴딜은 다행스럽게 디지털뉴딜과 그린뉴딜을 두 축으로 삼게 되었다. 그린뉴딜의 세부내용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재생에너지산업 육성, 에너지 효율적 수송수단 개발, 노후 시설들의 에너지 효율화 리모델링 등이 거론된다.
그린뉴딜의 취지는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에너지 전환과 이를 통한 일자리 창출 및 불평등 해소에 있다. 그러나 구상 중인 그린뉴딜은 에너지·수송·건설 분야의 새로운 산업 촉진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진정한 녹색전환 대책이라 보기 어렵다. 지난 정권의 ‘녹색성장’ 모델에서 대규모 토목사업만 뺀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한국형 뉴딜이 생태위기의 극복과 새로운 사회를 위한 대책이라면, 위기를 초래한 사회경제 체제의 전환에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물론 현 사회체제의 전환은 인위적으로는 불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를 위한 가설이라도 설정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리영희 교수는 <전환시대의 논리> 머리말에서 지동설을 증명한 코페르니쿠스를 언급하면서 교회 권력과 신학 도그마로 인한 박해 때문에 그의 책에 ‘가설’이라는 궤변이 삽입됐다는 일화를 소개한다. 이를 통해 리 교수는 자신의 저서도 독재권력이 우상화된 시대에 코페르니쿠스적 ‘가설’과 같은 것임을 암시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우리에게도 당면한 위기 극복을 위한 가설의 설정과 이를 입증할 실천이 요청된다.
지구적 생태위기의 극복을 위한 녹색전환의 논리로 두 가지 가설이 제시될 수 있다. 첫째, 자연에 대한 인간의 의식 전환이 없다면 위기는 극복될 수 없다. 자연을 인간 사회와 분리시켜 지배의 대상, 성장의 수단으로 인식한다면, 자연 파괴의 가속화와 오염 물질의 누적으로 지구적 생태위기는 더 심화될 것이다. 녹색전환은 성장의 화폐적 가치가 아니라 생존의 생태적 가치를 우선해야 하며, 자연과 공생하는 사회생태 체계를 지향해야 한다.
둘째, 사회경제 전반의 체제 전환이 없다면 위기는 극복될 수 없다. 병리 현상에 대한 기술적 대응이나 부분적 대책은 위기를 잠시 완화·지연시킬 수 있다. 하지만 위기의 근원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위기는 언제든 재발·증폭된다. 녹색전환은 자연의 사적 독점과 기업 중심의 산업화가 아니라 공정한 배분과 시민사회의 생활경제에 기반한 사회경제 체제를 지향해야 한다. 이러한 녹색전환의 논리는 위기에 처한 인류가 실천해야 할 가설이며, 한국형 뉴딜이 나아갈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