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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계의 창] 가해자의 범죄를 피해자가 지우는 나라, 미국 / 슬라보이 지제크

등록 2020-06-21 16:04수정 2020-06-22 14:45

슬라보이 지제크 ㅣ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경희대 ES 교수

영국 드라마 <데스 인 파라다이스>의 한 에피소드. 무대는 카리브해 작은 섬이다. 낙원처럼 아름다운 이 섬에서 서바이벌 캠프의 교관이 대나무 창에 찔려 살해된 채 발견된다. 이상한 일은 범인이 잡히지 않도록 범죄의 흔적을 말끔히 지운 제삼자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놀랍게도 살인의 조력자는 살해당한 교관 자신으로 밝혀진다.

교관과 범인은 고등학교 동창 사이다. 교관은 어렸을 때 범인을 놀리고 괴롭혔다. 성인이 되고 시간이 한참 지난 뒤, 교관은 동창을 서바이벌 캠프의 참가자로 다시 만난다. 그는 자신이 동창에게 고통을 주었다는 사실을 기억조차 못 하다가, 뒤늦게야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극심한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교관은 원한을 품은 동창이 휘두른 대나무 창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다. 그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 동창이 잡히지 않을 수 있도록 범죄의 흔적을 완전히 지운다. 그리고 숨을 거둔다.

여기에는 보이지 않는 이데올로기가 있다. 범죄의 흔적을 지우는 이는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다. 피해자의 행동은 누구의 강요도 아닌 피해자 자신의 의지에서 나온 자발적 선택으로 보인다. 그것이 과연 자신의 자유 의지에서 나온 선택일까? 이제 나는 미국이라는 ‘낙원’에서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는 두 시위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지난달 미국에서는, 코로나 봉쇄령의 해제를 요구하는 시위가 있었다. 트럼프는 봉쇄령을 조기 해제할 경우 많은 이들이 치명적인 위험에 노출될 것을 알면서도 ‘정상으로의 복귀’를 성급하게 밀어붙였다. 많은 노동자도 봉쇄령의 조기 해제를 요구하는 시위에 참여했다. 피해자인 노동자들이 가해자인 트럼프와 ‘자본’이 노동자들 자신에게 저지른 범죄의 흔적을 스스로 나서 지워준 것 같은 모습이다.

19세기 초, 웨일스 지역의 탄광 노동자들은 빈번히 일어나는 사고에서 자신의 목숨을 지키려면 헬멧을 비롯한 보호장비를 사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보호장비를 선택할 수 없었다. 그 비용이 급여에서 공제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받는 돈을 생각할 때 그 장비들은 원한다고 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우리는 다시 저 때로 되돌아간 것이나 마찬가지다. 강도가 ‘돈이냐, 목숨이냐’라고 협박할 때, 돈을 선택하면 돈도 잃고 목숨도 잃는다. 목숨을 선택하면 살아남는 대신 빈털터리가 되어 비참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도 목숨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 위기에서는 반대다. 목숨을 선택하면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 결국 돈도, 목숨도 모두 잃는다. 돈을 선택하면 생계는 유지할 수 있지만 감염의 위험에 노출되어 목숨을 위협받는다. 그래도 돈과 목숨을 모두 잃을 수는 없기 때문에 돈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는 지금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에 아무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어느 쪽을 택하건 그것은 노동자들이 직접 고른 선택이라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선택의 외관을 하고 있을 뿐, 노동자들에게는 애초부터 자유 의지로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았다. 트럼프는 노동자들에게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협박하고, 모욕적이게도 ‘일터에서 죽을 권리’를 노동자들 스스로 요구하도록 부추긴다.

지금 미국에서는 또 다른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으로 촉발된 시위다. 코로나로 인한 흑인 사망자 수는 백인 사망자 수를 훨씬 압도한다. 항의 시위의 중요한 맥락은 흑인에 대한 구조적 차별이다. 항의 시위는 이 구조적 차별이 코로나 위기를 촉매로 삼아 물질적 결과로 드러난 것이기도 하다. 코로나 위기도, 흑인에 대한 경찰 폭력도, 말 그대로 살아남느냐 죽느냐가 달린 ‘목숨’의 문제다.

조지 플로이드 사망 항의 시위에서 폭력적인 양상이 벌어졌다. 그렇다. 그것은 정당화될 수 없는 행동이다. 하지만 우리는 왜 피해자인 이들이 가해자가 저지른 범죄의 흔적을 직접 지우게 되는지 이해해야 한다. 최소한 우리는 어떤 선택의 여지도 주어지지 않은 이들의 절망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번역 김박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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