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말이 지닌 뜻의 깊이, 그 진지함과 호소력은 소리말이 따라오기 힘든 자산이고, 신문의 기사 선택과 비판적 해석, 논평의 주장과 여론의 기획들은 신문의 존재가치를 루소의 이른바 ‘일반의사’로 수용해줄 것이다. 그렇게, 신문은 읽는 글을 통해 새로 보고 다시 생각하며 깊이 성찰토록 하는 데서 그 미래를 보장받는다.
‘10000번의 오늘’, 한겨레신문이 ‘다섯 개의 이야기’와 기획기사 5·18 민주항쟁 40돌을 더불어 기념하는 것은 우연이기보다 필연의 역사적 어울림으로 보인다. 전혀 다른 이 두 사건은 자유-민주주의의 한 뿌리에서 솟은 우리 시민의식과 열정이 함께 얻은 성과인 때문이다. 두 보수 신문이 올해 창간 백주년을 맞기도 했지만 그보다 68년 어린 <한겨레> 신문의 지면이 더 기특한 것은 내 나이보다 늙은 신문들은 어두운 과거사들이 자주 낀 얼룩진 지면들을 안고 있지만, 55장의 1면으로 돌아본 이 젊은 신문은 창간의 절실함부터 이제까지 겪어온 뜨거운 역사를 몸으로 기억시켜준다. 동아·조선 두 신문사에서 언론자유 활동으로 추방당한 기자들과 민주시민들의 염원이 자발적으로 모여들어 사상 처음 사주 없는, 그래서 이권으로부터 자유로울 신문의 발간을 준비하던 시절의 열기가 회상되며 그 사연들이 1의 숫자 뒤 네 동그라미 안의 따뜻한 추억으로 안겨오고, 이렇게 신문이 천장 높이로 1만장 쌓이는 날 나는 내 이름의 칼럼을 쓰고 있는 것이다.
퇴직기자들 중심으로 진정 신문다운 신문의 창간을 준비할 때 나는 신수동 작은 사무실에서 출판사 일에 바빠야 했지만 그보다 더, 나는 이 신문 창간 멤버로 끼기에는 너무 낡은 ‘외부인’이었다. 그럼에도 고맙게도 이 신문은 내게 끈질긴 연을 맺어주어 어엿한 주주로 해마다 총회 참석 통지를 보내왔고 나는 이 신선한 일간지의 당당한 기자이기를 탐할 수 없었지만 어쩌다가의 기고를 통해, 지금은 이제 두 달에 한 번 내 이름의 칼럼 필자가 되어 8년째 어설픈 글을 발표해오고 있다. ‘평생 기자’이기를 바라온 나로서는, 그렇다면 가로쓰기와 한글전용을 맨 처음 시작한 신선한 <한겨레> 신문의 ‘늙은 인턴 기자’로 자임해도 될는지.
‘기자’라니까 회상되는 일이 있다. 내가 기자생활을 꽤 열심히 하던 1970년대 중반 <대학신문>에 청탁을 받고 수상을 발표한 적이 있었다. 그 글 제목이 ‘왜 기자로 남아 있는가’였다. 왜 기자가 되었는가에 대답한 것이 아니라 왜 굳이 기자로 남아 있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자문자답한 것이었다. 정치권력의 횡포는 자심했고 언론에 대한 억압이 가혹했던 유신 시절의 삼엄한 판에 기자는 감시당하고 기사는 검열을 받아야 했다. 남산에 끌려가기도 했고 웬만한 기사 쓰기는 자기 검열을 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래서 기자들은 진실을 지우거나 휴지통에 던져질 기사 쓰기에 맥이 풀려 정직한 보도는 당초부터 포기해야 했다. 더 나쁜 것은 곡학의 기사를 쓰기도 해야 했고 더러는 아예 정부 대변인이란 아세의 자리로 옮기기도 했다. 그래서였겠다. “나는 기자로 남아 있겠다. 기자는 유보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회피해서도, 물러나서도 안 되며 현장을 기억하고 기록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나는 기자로 남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리라.
그런 다짐 1년 후 나는 어이없이 기자로부터 쫓겨나야 했다. 자못 비장했던 각오가 허무하게 무너진 것이다. 언론자유 선언, 제작 거부, 광고 사태, 기자협회 활동 등 연이은 격렬한 사태에 밀려 끝내 해고되고 만 것이다. 문학 하는 친구들 덕분에 출판사를 만들어 교정부터 편집과 출판의 바쁜 일들로 내 삶의 길이 바뀌어야 했다. 그러고서 10여 년, 정치도 바뀌고 사회도 달라졌으며 무엇보다 신문이 변했다. 기자들은 볼펜으로 갈기던 기사 쓰기에서 그땐 무척 낯선 이메일로, 전화로 받아 쓰던 기사를 이젠 스마트폰으로 주고받는다. 나는 종이신문을 여적 ‘읽고’ 있지만 내 자식들은 인터넷 기사를 검색하고, 유튜브, 트위터 등 지금도 내가 못 쓰는 갖가지 에스엔에스(SNS)로 신문과는 또 다른 매체를 통해 정보와 의견들을 나누고 있다. 그러나 전달 매체의 디지털화에 앞서 무엇보다 중요하게도, 언론계가 자유롭고 활달해져 기사를 옳게 쓰고 진실을 제대로 밝히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매스컴의 환경과 여론의 성격이 바르고 다양해졌으며 독자·시민들의 일과 의식도 바빠졌다.
<한겨레> 신문은 이 거대한 변화가 일기 시작할 즈음 탄생했고 디지털로 바뀌는 일상의 진화와 걸음을 같이했다. 이 신문의 시선이 젊고 진취적이며 세대 감각에 민감한 것은 그런 덕도 클 것이다. 그러면서도 별의별 디지털 매체들의 소란스러움 대신 종이신문의 묵직한 전통의 덕성을 지켜주고 있다. 나 같은 아날로그 세대는 인쇄잉크 냄새를 맡으며 기사의 크기, 배열, 사진으로 사건의 중요도를 짐작하기도 하는데 이때 정보나 여론은 단순한 기계적 나열이 아니라 지적 사유와 예리한 평가로 편집되어 전달된다. 이것이 가장 젊은 신문의 진보적 인식과 전통적 지성의 소리 없는 케미 효과를 일구어주는 듯하다. <한겨레> 신문이 이렇게 신선한 호흡과 신중한 인식으로 제작되기에, 그 어린 나이에도 최고의 신뢰도를 얻게 된 것이리라. 지식이 종이책의 한계에서 벗어나듯 뉴스와 여론이 전래의 신문에 매이는 정도도 앞으로 점점 달라지겠지만 그럼에도 신문은 여전히 엄중한 뉴스의 매체로 기능할 것이다. 방송의 소리말이 빠르고 텔레비전의 현장중계가 실감 나지만 정보와 여론에서 글자말의 메시지와 그 깊이는 그 이상으로 정확한 소식과 깊은 이해로 수용될 것이다. 뉴스의 가치와 해설의 무게를 위해 기자와 논설인들의 양식이 비평적 수준으로 높아지고 있지만, 그 향상은 신문의 영향력을 더욱 크고 무겁게 키워줄 것이다. 글자말이 지닌 뜻의 깊이, 그 진지함과 호소력은 소리말이 따라오기 힘든 자산이고, 신문의 기사 선택과 비판적 해석, 논평의 주장과 여론의 기획들은 신문의 존재가치를 루소의 이른바 ‘일반의사’로 수용해줄 것이다. 그렇게, 신문은 읽는 글을 통해 새로 보고 다시 생각하며 깊이 성찰토록 하는 데서 그 미래를 보장받는다.
나는 신문들이 나름의 개성으로 활발하면서도 큰 포용력으로 우리 사회와 역사를 수용하기를 바란다. <한겨레> 신문은 보수적인 우리 사회에 드물게 진보적인 체질이다. 그 진취적 사유를 통해 따뜻한 진실, 정론의 화해가 열리기를 바란다. 나는 이것을 ‘역사에의 관용’이란 말로 에둘러 표현했는데, 그것은 바로 보되 약자와 패자의 아픔을 부드럽게 싸안으며 옳음을 추키되 고집 센 미움을 풀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 형용모순들이 문리를 얻어 우리 정신의 폭을 열어 넓히면 우리 역사도 적폐를 넘어 적선의 긍정적 역사로 지혜롭게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세계를 큰눈으로 보고 먼눈으로 받아들일 때 ‘일만호’를 맞는 신문이 우리 겨레의 ‘만세’로 환호받으며 그 ‘만세환호’의 참뜻을 채워갈 수 있을 것이다.
김병익 l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