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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5·18’이라는 말 / 김진해

등록 2020-05-17 18:37수정 2020-05-18 02:08

김진해 ㅣ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겉보기에 언어는 불합리하다. ‘버스 파업’이란 말만 봐도, 사람이 아닌 ‘버스’가 어떻게 파업을 하겠나. 밥 말고 ‘도시락’을 먹기도 하는데, ‘말 그대로’ 따라 했다가는 응급실행이다.

말은 유연하여 딱 들어맞지 않는 것을 새롭게 배치하는 데 능숙하다. 일종의 ‘빌려 쓰기’이다. 망치가 없으면 벽돌이 망치가 된다. 절실하면 주먹으로도 못이 박힌다! 가까이 있는 거로 원래의 것을 대신하는 것을 환유라고 하는데, 부분이 전체를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 국수 먹고도 밥 먹었다고 하는데 이때 ‘밥’은 모든 요리를 대표한다.

시간이 특정 사건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되기도 한다. 사건이 집단적 기억이 되면 그렇게 된다. 5·18을 비롯해 4·3, 4·19, 6·10, 6·25, 8·15가 그렇다. ‘광주’처럼 장소명을 쓸 수도 있는데, 장소는 그곳에 없었다고 변명할 수 있어서 헐겁다. 시간은 모두에게 주어지므로 피할 재간이 없다.

그런 사건은 하루에 끝나지도 않는다. 5·18도 5월27일까지 열흘 동안의 ‘사태’였다. 6·10도 보름을 넘겼고, 4·19는 달포 이상 계속됐으며, 4·3은 장장 7년7개월 동안 이어졌다. 그럼에도 우리는 시작일을 사건 전체의 대표자로 삼는다. 첫날은 사건의 촉발점, 민심의 변곡점, 각성, 솟구침, 뒤엉키고 뒤집히는 충격의 시간.

이렇게 글이 주변을 뱅뱅 도는 건 여전히 5·18 앞에 말문이 막히고 죄의식에 휩싸이고, ‘취미처럼’ 분노가 솟구치기 때문일 게다. 눈앞의 부조리함 하나 막아서지 못하니, ‘5·18’을 입에 담기조차 부끄럽다. 그렇게 4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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