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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뇌부자들 상담소] 개학을 앞둔 아이들의 마음 / 오동훈

등록 2020-05-06 16:52수정 2020-05-07 14:55

오동훈 ㅣ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일일 확진자 수가 한자릿수로 줄어든 채 유지되면서 정부에서 줄곧 권장하던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이 6일자로 ‘생활 속 거리두기’로 완화되었다. 발 맞추어 사회 곳곳에서 코로나 확산 이전의 일상을 재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 중심에 아이들의 터전인 학교가 있다. 다시 확산세를 보이지 않는 한 5월 중순부터는 학년별로 순차적인 오프라인 개학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4월 중순부터 온라인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오프라인 개학이 갖는 파급력은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클 것이다. 방역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아이들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 면에서 더더욱 그렇다. 학교란 단지 학습만 이루어지는 곳이 아닌 수많은 ‘관계’가 존재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부모의 입장에선 학습이 우선시될지 몰라도,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바로 관계다.

3월은 새 학년이 시작되는 시기이다. 새로이 맞이할 환경에 대한 기대와 희망 섞인 다짐이 있어야 할 때지만 역설적이게도 매년 3월이 되면 병원을 찾는 아이들 수가 늘어난다는 것을 소아정신과 의사라면 누구나 안다. 치료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안정적으로 지내던 아이들 역시 증상이 악화되는 일이 흔하다. 왜 그럴까?

낯선 공간,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새롭게 적응해야 한다는 것은 어른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하물며 아직 마음이 여물지 않은 아이들, 특히 그 안에 상처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누군가에게 거부 내지 외면 당하는 경험을 했던 아이들, 다른 이들과 어울리는 데 서툰 아이들은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긍정적 이미지로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확신이 없다. 누군가 먼저 자신에게 손을 내밀더라도 그 손안에 정말로 자신에 대한 호의가 담겨 있는지 천천히 살피고, 또 살핀다. 반대로 자신이 먼저 손을 내밀면 상대가 그 손을 외면하거나 뿌리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보다는 자신을 싫어하지 않는 것이 확인된 소수의 아이들과 어울리려 한다. 이러한 아이들에게 새 학년이 된다는 건 다시 외톨이가 되지 않기 위해 고통스러운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올해는 예년과 달리 학년의 시작 시기가 두 달 이상 늦어졌다. 낯선 환경과 곧바로 마주하지 않아도 되는 반면, 실체 없는 불안과 그만큼 더 오랫동안 맞서야 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적응에 대한 확신이 없는 아이들은 계속해서 머릿속으로 걱정되는 상황을 그려보며 위안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아이들의 생각은 그들이 두려워하는 결과가 현실이 되고 말 것이라는 쪽으로 흘러가며 불안의 크기를 키운다. 실제로 진료실에서 만난 몇몇 아이들은 개학이 계속 연기되면서 등교를 거부하거나 자퇴를 고민하기도 했다. 개학 후 관계 형성을 위한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 역시 고려해야 한다. 시험과 같은 학사일정을 처리하기 위해 학교 쪽에선 수업에 집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자연스레 아이들끼리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는 줄어들 것이다. 이렇게 되면 새 학년에 들어오기 전부터 형성되어 있던 관계가 그대로 이어지기 쉽고 아이들 사이에서 새로운 자신의 위치를 찾을 여지는 그만큼 사라지게 된다.

크고 작음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러한 고민은 많은 아이들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부모가 이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본인의 기대를 앞세워 “새 학년이 되었으니 달라진 모습을 보여라”라는 틀에 박힌 이야기를 한다면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가능하다면 개학을 앞두고 아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고민되는 점은 없는지 이야기를 나누면서 부모가 그 마음을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쩌면 아이가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는 표현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이야기를 듣더라도 그것을 나무라고 억지로 바꾸려 하는 대신, 아이의 그 표현 속에 어떤 마음이 들어 있는지 충분히 듣고 “그럴 수 있어”라며 인정해 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문제를 직접 해결해 줄 수는 없을지라도 부모가 곁에서 함께 고민하고, 기다려 주겠다는 뜻을 전달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큰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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