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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99’의 쓰임새와 쓸모 / 안영춘

등록 2020-05-03 18:40수정 2020-05-04 11:25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만들어진다”는 토머스 에디슨의 말은 숫자 ‘99’에 관한 가장 유명한 어록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곰곰이 따져보면 꽤나 자기도취적인 말이기도 하다. 저 명제는 천재가 아닌 사람으로서는 입증이 불가능하다. 에디슨은 한껏 겸양까지 드러내며 자신을 천재로 내세운 셈이 된다.

에디슨의 명제와 숫자 구성이 똑같기로는 ‘1 대 99 사회’를 들 수 있다. 경제 양극화로 소수 1%가 부를 독점하고 나머지 99%는 소외됐다는 구조 인식 프레임이다. 미국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 등이 대표적인 주창자다. 우리나라에서도 진보 진영에서 대체로 고른 지지를 받아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새해 기자회견에서 1 대 99 사회를 “전세계가 직면한 공통 과제”로 규정하고, “국제기구와 주요 국가들이 해법으로 제시하는 ‘포용 성장’을 힘있게 밀고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역설은 몇달 뒤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을 법무부 장관에 임명하면서 생각지 못한 반론에 부딪힌다. 상위 1%만 문제 삼는 담론이 상위 20% 가운데 나머지 19%에 면죄부를 줬고, 오히려 격차를 심화시키는 구실을 했다는 것이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1 대 99 사회 프레임의 대안으로 ‘20 대 80 사회’ 프레임을 제시한다.(<강남좌파2>)

99는 상수학적으로 완전수인 ‘100’은 아니면서 100에 가장 가까운 수다. 그래서 강한 주장을 펼칠 때 흔히 쓰인다. “4·15 총선에서 전국 253개 지역구 가운데 43곳에서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의 사전투표 득표율이 99% 일치한다”며 ‘부정 선거의 증거’라고 주장하는 것이 일례다. 물론 논리적인 타당성이 없으면 99의 쓸모는 크게 떨어지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이번에 지성호 미래한국당 국회의원 당선자가 99의 숨은 쓸모를 제대로 보여줬다. 그는 지난 1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사망을 99% 확신한다”고 했다가, 이튿날 김 위원장의 건재함이 확인되자 주장을 거두는 대신 “속단하지 말고 좀 더 지켜보자”고 했다. 그에게는 99도 대단한 숫자지만 ‘1’도 만만찮은 숫자인 듯하다.

안영춘 논설위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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