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해 ㅣ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자본주의4.0’, ‘패러다임 전환’, ‘아침형 인간’이란 말의 위성정당 같은 단어. 세상이 뿌리부터 바뀌고 있으니 ‘새로운 표준’에 맞춰 살라는 시장의 명령. 소비자의 생활 방식과 구매 패턴이 바뀌자 새롭게 떠오른 마케팅 전략. 코로나 사태와 기후위기 이후 지속가능성과 공생의 가치가 부각되고 개인도 현재의 삶에 집중하려는 경향을 반영하면서 생긴 말. ‘새내기’란 말에 ‘헌내기’가 된 2학년처럼 어제의 습관은 냄새나는 ‘올드 노멀’이 된다. 어제와 결별함으로써 새 시대의 맨 앞줄에 선 듯 착각하게 만드는 마약 같은 말.
새말이 유행을 타면 지하실에 곰팡이 피어나듯 널리 퍼진다. 상황이 조금만 바뀌어도 이때구나 하고 이 말을 쓴다. 코로나로 야구장에서 침을 못 뱉는 것도 뉴 노멀이다. 재택근무가 늘어나도, 온라인 강의와 배달문화가 확대되어도 뉴 노멀이다. 어느 평론가는 이번 총선을 평하며 ‘민주당 주도의 1.5당 체제’로 굳어지는 상황을 ‘뉴 노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쓴다.
당최 시공간의 연속성을 찾기 힘든 한국에서는 오늘 당면한 문제를 당면하기 위해 매일 아침 어제와 결별해야 한다. 못나고 늦된 사람들이 고유한 습관 한두 개를 고안해낼 즈음, 그건 이미 ‘올드’하니 버리라 한다. 아뿔싸, 우리는 매일 새로 태어나야 하는 아기이자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묶인 나그네 신세. 하지만 사람은 단골집이 사라졌다는 걸 번연히 알면서도 그 앞을 서성거리듯 기억과 미련의 존재. 이 불온한 세계는 혁명적 단절보다는 누더기옷을 기워 입듯 과거를 수선하여 쓸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