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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혜진, 노동 더불어 숲] 험난했던 99일, 장례식, 그리고 그 이후

등록 2020-03-12 18:05수정 2020-03-13 02:07

김혜진 ㅣ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3월9일, 양산 솥발산 공원묘역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렸고 해는 져서 컴컴했다. 문중원 기수의 하관식은 그 아내의 눈물만큼 서러웠다. 문중원 기수는 한국마사회의 갑질과 비리를 폭로한 세장짜리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유가족들은 유서에 담긴 분노와 절망을 가슴에 안고 99일을 싸워 마사회와의 합의에 이르렀다. 그런데 마사회는 장례식 당일, 유가족과의 합의를 공증하기로 한 약속을 깼다. 다시 공증 약속을 받았으나 영결식은 분노로 넘쳤고, 하관식은 빗물과 눈물이 뒤섞였다.

이런 험난함은 장례식 당일만이 아니었다. 마사회는 문중원 기수가 죽은 지 한달도 안 되어, 사망 당일 경마를 열지 못했으니 보전경마를 하겠다며 슬픔에 젖은 기수들을 압박했다. 마사회에 항의하러 간 유가족을 막아선 경찰은 아내의 목을 조르고 머리채를 잡았다. 유가족과 시민대책위원회는 코로나19의 방역에 협조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참여하는 ‘희망버스’를 철회했으나, 정부와 경찰, 용역을 동원한 종로구청 쪽이 칼과 가위로 분향소를 지키는 농성천막을 찢고 철거했다.

2015년 부산·경남 경마공원이 개장한 후 무려 7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마사회는 물론이거니와 정부도 왜 이런 죽음이 반복되는지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 2017년 두명의 말관리사와 2019년 문중원 기수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는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선진 경마’ 때문에 기수와 말관리사들이 고통에 처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기수들은 생계 때문에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지 못했다. 기수의 재해율은 72.7%에 달했다. 말관리사의 고용안정을 위한 2017년 합의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죽음을 통해 드러난바, 마사회의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마사회는 국정농단 사건 책임자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않았다. 감사 결과 많은 직원이 비위 행위로 적발되었지만 늘 솜방망이 처벌이었다. 성과급을 더 많이 받으려고 공공기관 고객만족도 조사 결과를 조작하거나, 매출을 늘리기 위해 해외원정 도박단의 진입을 묵인하고,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에 허위자료를 제출한 것에 대해 공익감사도 청구되어 있다. 도박을 근절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도 않으면서 온라인 경마를 합법화하려고 했다.

이러한 문제를 고발한 이들은 홀로 분투하다 스러졌다. 마사회의 비리를 제보한 한 노동자는 문중원 기수의 영정 앞에 다음과 같은 조사를 바쳤다. “마사회가 쌓아놓은 콘크리트 벽 속에서 벗어나려고, 주먹질하다 피멍 들고, 주저앉고 다시 일어나고, 날이 저물 땐, 내일 하루만 더 살아보고 결정하자, 그렇게 하루하루를 넘기고 있었던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었구나”, “아내와 자식에 대한 사랑마저도 삶을 지켜낼 이유가 못 되는 억울한 마음이 멀리에 한명 더 있었구나.”

문중원 기수 죽음의 진상규명을 위해 유가족과 함께 싸운 시민대책위원회는 여덟번째 죽음을 막아야 한다는 절실함이 있었다. 부정한 지시가 이루어지는 구조를 드러내어 경마를 건전한 레저스포츠로 만들고자 했다. 마사회가 매출 증대를 위해 사행성 산업을 확장하려는 것을 막고, 사회공헌사업과 말산업 육성에 더 힘을 기울이도록 만들고자 했다. 기수와 말관리사들이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마사회가 무소불위의 권한만 갖고 책임은 지지 않는 왜곡된 구조를 바꾸려고 했다.

그래서 시민대책위원회는 장례를 치른 뒤 ‘마사회 적폐권력 해체를 위한 대책위원회’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마사회가 장례 당일 합의에 대한 공증을 거부한 것은 이 전환을 막기 위해서였다. 마사회는 “마사회 적폐권력을 해체하겠다”고 한 입장문을 내리고, 마사회에 대한 비판을 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스스로 적폐권력임을 자백한 것이다. 그러니 마사회를 좋은 공공기관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싸울 수밖에 없다. 정부가 의지를 보이지 않으니 문중원 기수의 호소에 응답하여 그 죽음의 마지막을 지킨 시민들이 나서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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