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해 ㅣ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다른[異] 끝[端]. 끝이 다르다. 시작과 중간은 같았다. 다른 옳음. 무엇이 옳은지 다르게 생각하는 데서 오는 갈라짐. ‘옳지 않다’고 하려면 ‘옳음’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 옳지 않음은 진리에 미달했다기보다는 거짓의 편에 섰다는 뜻에 가깝다. 어떤 이야기 구조 속에 있느냐에 따라 이단은 서로를 향하는 총알.
이단에 속한 사람은 전통과 권위에 도전한다. ‘이단아’라는 말에는 ‘권위에 맞섬, 엉뚱함, 아웃사이더, 혁신’의 이미지가 풍긴다. 유독 기독교에 이단·사이비가 많은데, 신이 자신의 모습 그대로가 아닌 인간의 모습으로 왔다는 데에 이 종교의 심오함과 딜레마가 있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아니 상상으로밖에 가늠할 수 없는 존재에 대한 믿음의 체계이다. ‘신이면서 인간’인 예수. ‘A이면서 B’라는 등식은 동시에 ‘A도 아니고 B도 아니’라는 말도 된다. 신이면서 인간인 존재는 신도 아니고 인간도 아닌 존재다. 그게 기독교의 시작점이다. 그래서 쉽게 끝이 달라진다.
‘알 수 없는’ 존재가 우리 곁에 온 사건 때문에 이단에 잘 빠지는 걸까? 아니다. 그 역사적 사건이 ‘반드시’ 자기가 살아 있는 동안에 한 번 더 벌어져야 한다는 욕망이 근본 문제다. 자신이 끝이자 시작이려고 하는 욕망. 우리는 끝도 시작도 아닐지 모른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예수는 신이면서 인간이었다. 신도 아니고 인간도 아니었다. 우리도 나이면서 남이다. 나도 아니고 남도 아니다. 이 둘 사이의 줄타기는 삶 속에 뒤엉켜 거듭 드러날 뿐. 그 외에는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