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두 ㅣ 한국도시연구소 이사장
오늘날 대도시는 엄청난 인구와 역동적 활동으로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접촉과 이동의 급증으로 전염병의 온상이나 전파의 중심지가 될 위험을 안고 있다. 이로 인해 전염병이 발생하여 도시 내외로 확산되면, 접촉과 이동을 차단하기 위해 시민의 격리와 도시 봉쇄가 불가피한 것처럼 보인다.
코로나19가 대구·경북에서 창궐할 시점에, 여당 대변인이 당·정·청 협의회 결과를 브리핑하면서 “대구·경북은 최대한의 봉쇄정책을 시행해 확산을 조속히 차단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대구를 중국 우한처럼 물리적으로 봉쇄한다는 뜻으로 해석되면서, 야당과 대구 시민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발언한 대변인은 사퇴했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봉쇄의 의미를 해명해야 했다.
정부 해명에 의하면 봉쇄는 방역 용어로, 적극적 차단과 격리로 코로나19의 지역사회 전파를 최대한 막겠다는 뜻이다. 시민을 감염원으로부터 차단하고 감염된 환자들은 신속하게 병원이나 자가에 격리함으로써, 전염병이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봉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봉쇄를 둘러싼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이 용어는 이번 사태를 설명하는 핵심어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봉쇄란 지역이나 집단을 구분하여 경계를 설정하고 상대방을 적 또는 타자로 간주하여 침투나 접근을 막는 것을 의미한다. 봉쇄는 안과 밖을 구분하는 영역 개념이며, 차단과 격리, 폐쇄, 배제, 적대 등의 동의어를 가진다. 봉쇄는 물리적, 공간적일 뿐 아니라 사회적, 심리적 현상이다. 봉쇄는 중층적이고, 다양한 유형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인간과 더불어 모든 사물은 상호연계된 존재라는 관점에서 완벽한 봉쇄란 불가능하다.
물론 방역과 치료의 측면에서 봉쇄는 코로나19 환자에게 절대 필요한 조치다. 사태 초기 대형병원의 음압병실에 격리 봉쇄되어 치료받는 환자들은 어쩌면 다행이다. 사태의 급진전으로 인한 병실 부족으로 자가에 격리된 확진자들은 얼마나 초조하겠는가? 경증환자를 격리 치료할 생활치료센터의 운영은 매우 고무적이다. 이 같은 격리 봉쇄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다른 여러 유형의 봉쇄와 그 문제점을 드러낸다.
이번 사태를 근원적으로 보면, 봉쇄는 자연과 사회 간 관계에서 비롯된다. 자연에서 생성된 코로나19가 야생동물을 숙주로 인간세계에 침투한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 인간은 스스로 도시를 봉쇄하고자 한다. 그러나 봉쇄는 실패한 것처럼 보이고, 엄청난 희생이 요구된다. 현대 의료기술과 방역체계의 한계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인간과 자연 간 관계를 차단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중국인 입국금지’는 봉쇄와 관련된 또 다른 논란거리다. 국내 상황이 악화되자, 중국에 대한 반감이 커지면서 전체 중국인 입국금지 청원이 쇄도했다. 보수 야당도 편승하여 이를 집요하게 요구한다. 하지만 중국인 전면 봉쇄는 ‘대구 봉쇄’보다 어렵고 실효성이 없다고 하겠다. 지구화 과정과 교통통신의 발달은 국가 간 의존성과 도시 간 연계성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촉진했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자발적 자기 격리도 봉쇄의 한 유형이다. 정부도 외출을 최소화하고 접촉을 최대한 줄이는 ‘사회적 거리 두기’를 당부한다. 능동적 자기 봉쇄는 감염 차단을 위해 필요하며, 일시적으로 가능한 조치다. 그러나 1인 가구나 생계를 위해 외부 활동이 불가피한 시민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또한 사회적 관계의 차단은 개인적 불안과 스트레스, 만남 기피와 상대 불신 등을 초래할 수 있다.
또 다른 유형의 봉쇄는 신천지 교회와 관련된다. 특이한 예배 방식과 은폐된 포교 활동이 사태의 결정적 원인임이 드러나자 예배 모임은 금지되고 시설들은 강제 폐쇄되었다. 종교의 본질을 벗어난 사이비 조직은 해체되고, 지도부는 처벌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교인 개개인은 이단 종교의 희생자이며 전염병의 피해자다. 이들에 대한 혐오와 적대에 따른 사회적, 심리적 봉쇄는 이들의 참된 성찰과 새로운 희망을 막아버릴 수 있다.
코로나19 비상사태의 진정을 위해 봉쇄가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특히 질병의 치료와 방역에 필요한 봉쇄는 철저히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일반적 의미에서 봉쇄는 문제의 근본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 오히려 그 반대에서 해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가 생활·생산 양식을 바꾸기 위해 성찰해야 할 점은 괴리된 자연과 어떻게 공존·공생할 것인가, 경쟁적 국가들과 어떻게 교류·협력할 것인가,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소통하고 연대할 것인가, 참된 삶을 위해 어떻게 종교적으로 포용하고 화해할 것인가라는 의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