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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뇌부자들 상담소] 감염의 공포로 공황장애까지 / 허규형

등록 2020-03-04 18:39수정 2020-03-05 02:38

허규형 ㅣ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코로나19에 감염된 국내 확진자 증가세가 폭발적이다. 정신건강의학과는 감염의심환자가 진단을 받기 위해 내원하는 일이 없지만, 감염증이 지역사회 감염으로 진행되고 있는지라 아무래도 여느 때보다 조심스럽고 불편한 상황이다. 우선 힘든 점이 하루 종일 마스크를 끼고 진료를 해야 하는 점이다. 환자와의 대화를 마스크가 가로막고 있으니 진료 내용이 잘 전해지지 않는 것 같아 답답하다.

환자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과정에서 표정으로 전달하는 진료 내용의 상당 부분을 마스크가 가리고 있으니 딱한 노릇이다. 환자분의 얼굴에 나타난 감정의 움직임 역시 마스크 안에 숨어 있어 상담에 어려움을 겪는다.

코로나19 감염에 대한 걱정으로 평범한 일상생활이 무너져버렸다. 이웃과 악수를 하고 영화관이나 공연장을 찾거나 친구와 어울려 운동을 하는 즐겁고 단순한 일상이 모두 경계의 대상이 됐다.

내원 환자들도 코로나19 감염 우려에 좌불안석이다. 몇몇 환자들이 지난 진료 이후 처음으로 밖에 나왔다며 최대로 받을 수 있는 약의 처방 일수를 묻는다. 불안감이 높은 환자 중엔 확진자가 나오지 않은 고립된 섬에 들어가서 지내겠다는 분까지 있었다.

감염 확진 사태가 진정되고 있지 않다 보니 코로나19 감염증에 대한 불안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도 늘고 있다. 사랑하는 가족을 호흡기 질환으로 잃었던 아픈 기억이 있는 ㄱ씨는 아무런 증상이 없는데도 코로나바이러스에 걸리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에 시달리다 결국 가슴이 두근거리고 호흡이 가빠지면서 죽을 것만 같은 공황발작 증상으로 병원을 찾았다. 감염증에 대한 공포로 인해 공황발작 증상이 생긴 것이다.

스트레스, 불안, 공포는 공황발작을 유발하는 원인이 된다. 감염병은 눈에 보이지 않고 증상이 바로 나타나지 않아 불안을 누르기 힘들다. 검사를 해도 바로 결과를 알 수 없는 답답함도 불안감을 한층 부추긴다. 통제할 수 없는 존재가 몸 안에 들어올 수 있다는 사실은 기질상 통제가 어렵고 중요한 사람에게는 특히 더 큰 공포다. 만일 자신이 감염되어 병을 앓게 되고 병을 옮길 수 있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두렵기 짝이 없는 일이다. 게다가 확진자가 될 경우 동선이 밝혀져 사생활이 노출되면 큰일이란 공포까지 더해진다면 사태가 더욱 심각해진다.

매주 면담을 하던 ㄴ씨가 어느 날부터 내원하지 않았다. 평소 지각 한번 없던 분이라 무슨 일이 생겼나 걱정이 됐다. 약 한달이 지나 내원한 ㄴ씨는 확진자와 우연히 동선이 겹쳐 2주간 자가격리됐었다고 했다. 다행히 검사결과가 음성이었고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 격리가 해제되었는데, 그동안 자가격리로 겪었던 고통을 이야기했다.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함께 자신을 격리되게 만들었던 확진자에 대한 원망을 참기 힘들었다고 했다. ㄴ씨가 느꼈던 불안, 공포, 분노는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당연한 반응이다. 그러나 이 반응이 지나치게 되면 공황, 우울, 불면 등의 여러가지 정신과적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과 같은 불안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지역사회 감염 확산 상황에서 어떻게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을까. 우선 불안, 공포, 분노 등의 심리적인 반응에 대해 차분히 대처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누구나 지금 시기에는 힘들 수 있는 거야’라고 자신을 다독이면 불안감을 통제하고 안정을 유지하기가 쉬워진다. 다음은 ‘손을 잘 씻는 것’처럼 자신이 조절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보고 행동에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적 거리두기도 좋은 방법이다. 안전한 공간에서 전화나 인터넷을 통해 사람들과 교류하고, 그동안 정리하지 못했던 일감이나 기록 혹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불편한 상황 때문에 관계를 끊는 것이 아니라 주위와 잠시 거리를 두고 자신을 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식으로 생각을 전환한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신종 바이러스 감염증에 대한 공포로 불안하고 우울하지만 감염 질환은 분명히 종식기가 있다. 감염증에 대한 지나친 걱정으로 마음의 병을 얻지 않으셨으면 한다. 위기를 무탈하게 넘기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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