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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슈논쟁] 그래도 모의선거교육…학교에 정치 허해야 / 장은주

등록 2020-03-02 18:39수정 2020-03-03 02:38

장은주 ㅣ 영산대학교 교수·서울시교육청 모의선거교육 추진단장 

‘18살 투표 6주 전’ 문제와 해법

「지난해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탄생하는 18살 첫 유권자는, 2002년 4월16일 이전에 태어난 이들이다. 공교롭다 할 만하다. 미래 세대 가장 큰 자긍심을 줬던 한일월드컵(2002년)과, 가장 무참히 내몰았던 세월호 참사(4월16일)의 조합. 하지만 우연일 뿐, 진정 공교로운 것은 학내 ‘정치토론' 따위를 바이러스처럼 경계하며 청년을 피부양화하는 논리와, 그러다 진짜 코로나까지 맞아 일시 마비된 교육 현장의 처지다. (미뤄지지 않는다면) 4월15일 21대 국회의원 선거 전까지 당장의 관련 교육, 나아가 중장기적 정치·선거교육은 필요한가, 필요하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두 전문가에게 듣는다.」

다가오는 총선부터는 18살 이상의 모든 국민이 투표를 할 수 있게끔 선거법이 개정되었다. 여기에는 많은 고등학생이 포함된다. 지금 같은 대입 중심의 우리 교육 현실에서 제대로 주권자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새삼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서울시교육청은 4월 총선을 계기로 초중고 학생들에게 모의선거교육을 하기로 했는데, 이는 이런 우려에 대한 적절하고도 정당한 교육적 대응이었다. 현실감 있는 계기 교육을 통해 일반 학생은 물론 당장 투표권을 행사해야 할 유권자 학생들이 구체적인 투표의 방법과 현실 정치의 구도나 문법 등을 좀 더 잘 이해하도록 돕자는 게 그 취지다. 이런 교육은 특히 새내기 유권자들에게는 짧은 시간에 아주 효과적으로 총선의 의미와 후보 선택의 기준 등을 제대로 배우게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한다.

그런데 일부 언론과 교총 등은 ‘학교가 정치판이 될 우려가 있다’며 이런 교육에 반대하고 나섰다. 그러자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18살 유권자는 물론 선거권이 없는 초중고 학생들에게 하는 모의선거교육도, 교육청과 교원이 개입하는 한,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 공직선거법에 위배된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유권자 학생은 모의투표에서 제외하고 결과는 선거 후에 발표한다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선관위는 자세하고 합리적인 설명 대신, 어떤 식으로든 교사가 실제 후보를 대상으로 하는 모의선거교육을 하면 안 된다고만 강변했다. 모의선거교육은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우리보다 훨씬 본격적으로 하고 있고, 심지어 선관위 스스로도 시행한 적이 있다. 이번 선관위의 조처는 일부 반대 여론을 의식한 그야말로 ‘정치적인’ 결정이며, 공교육에 대한 부당한 월권 행사가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일반 학생은 물론 새내기 유권자에 대한 선거교육을 아예 포기하면 안 된다. 모의투표를 못 하게 되어 학생들이 흥미와 정치적 효능감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선거교육이 쉽지 않을 것 같긴 하지만, 민주주의, 시민, 국회, 선거제도 등에 대한 범교과 주제통합 학습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또 이번 선거에 나오는 실제 정당과 후보자의 공약 등을 분석하고 평가하게 해보는 교육도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할 수 있지 싶다. 개정된 선거법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일반 유권자들도 이해하기 어려운데, 이번 선거에서는 이에 대한 교육이 특별히 중요해 보인다. 교육 당국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앞으로다. 선거는 계속 돌아온다. 이제부터라도 좀 더 체계적이고 깊이 있는 주권자 교육, 민주시민교육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우리 미래 세대가 단순한 투표 행위를 넘어 민주주의 정치의 본성 자체를 더 잘 이해하고 실천하는 시민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선거교육 차원이라도, 가령 정당들은 왜 서로 나뉘는지, 각 정당이 내세우는 이념이나 가치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르게 정책에 반영되는지 같은 문제에 대해서까지 깊이 있게 학습하며 스스로의 정치적 신념이나 지향을 정립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되려면 커다란 장애 하나를 넘어서야 한다. 혹시라도 교사가 이런 정치교육을 하면서 편향된 의견을 학생들에게 주입할 수도 있다는 사회 일각의 우려가 바로 그것이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이런 요구는 얼핏 아주 정당해 보인다. 우리 헌법에도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그런 요구는 기본적으로 ‘교육에서는 정치보다 교육적 관점이 우선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해석되어야지, 지금처럼 학교를 정치적 진공상태로 만들어야 한다거나 교사가 무슨 정치적 무뇌아처럼 교육활동을 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이해가 지배하는 한 미래 세대를 성숙한 주권자로 길러내는 교육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확실히 교사가 학생들에게 특정한 견해를 주입하거나 강제하는 일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정치 관련 교육에서 그런 식의 주입식 교화(의식화) 교육을 피할 수 있는 원칙과 방법을 알고 있다. 특히 사회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의 경우, 교사는 원칙적으로 중립적 사회자의 역할만 하면서 다양한 견해들을 공정하게 소개하고 토론하게 하되 궁극적으로는 학생들이 비판적 사유를 통해 독립적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게 그 요점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1948년 8월15일이 ‘정부수립일’인지 ‘건국절’인지를 두고 벌어지는 사회의 ‘역사전쟁’을 학교에서 반복할 이유가 없다. 유일하게 올바른 답을 전제하거나 강요하지 않고 서로 다른 견해와 근거들을 소개하면서 학생들이 성찰과 토론을 통해 스스로가 옳다고 여기는 답을 선택하게 하면 된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민감한 정치적 주제도 얼마든지 교육적으로 전환시켜 학교에서 다룰 수 있다.

학교에 정치적인 사안을 끌고 들어오는 걸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독일에는 ‘정치교육’이라는 이름의 필수 독립 교과도 있다. 또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는 진작부터 학생들이 단순한 모의투표를 넘어 직접 정당도 결성해보고 대표를 선출해서 선거 유세도 하는 수준의 교육까지 하고 있다. 바로 이런 바탕 위에서 10대나 20대 국회의원도 나오고 30대 수상이나 대통령도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이 부러운가? 그렇다면 당장 학교에 정치를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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