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기 ㅣ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실업률이 높은 그리스(18%), 스페인(14%), 이탈리아(10%)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전만 해도 경제성장과 재정이 양호했다. 현재 우리나라처럼 세수입이 좋다고 돈을 풀다가 세계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재정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경기회복은 더뎌 재정위기가 만성화되었다. 우리나라가 외환위기 당시 국제통화기금(IMF)의 통제하에 놓였듯이 이들 나라는 아이엠에프에 더해 유럽중앙은행과 유럽연합이라는 ‘트로이카’의 긴축재정 요구에 떨고 있다. 긴축재정은 공공일자리마저 사라지게 하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그리스 177%, 이탈리아 135%, 스페인 95%인지라 트로이카는 추가 지원이 곤란하다며 버틴다.
정반대로 실업률이 낮은 스웨덴(6%), 덴마크(4%), 노르웨이(3%)는 지디피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각기 35.1%, 33.2%, 40%로 낮다. 실업률과 정부부채 비율은 양의 상관관계를 보이나 기축통화 국가의 혜택을 누리는 미국과 일본은 예외다. 이들은 실업률(3%)이 낮으나 지디피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100%를 넘는다. 독일은 기축통화 국가지만 그 비율이 60%이고 실업률도 3% 정도다. 지디피 대비 공공지출과 실업률의 관계를 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경우 공공지출 비율이 높으면 실업률도 높고, 재정이 악화하면 실업률이 올라가고 실업률이 늘면 재정이 나빠진다. 재정적자를 헌법으로 통제해 악순환을 막자는 논의가 나오고 있다.
스웨덴 등은 일하는 사람의 비율(고용률)과 노동생산성이 모두 높다. 또 노동시장이 유연하고 복지가 일자리와 연계되며 세수입과 복지지출이 모두 많다. 그러나 이탈리아 등은 둘 다 낮다. 노동시장이 경직적이고 복지가 소비적이며, 세수입이 적은데도 복지지출을 늘리다가 재정적자에 처했다. 재정적자에 빠지면 벗어나기 쉽지 않다. 노동 개혁과 복지 개혁을 외면하면서 재정적자 줄인다고 세금만 더 거두면 소비와 투자가 줄어 성장이 후퇴하고 실업률이 올라간다. 국채를 발행하면 문제가 더 꼬인다. 이자율이 올라가 성장에 장애가 되고, 외국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조건이 악화하며, 채무를 갚기 위한 국채까지 발행하게 된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나라마다 재정 건전성에 매달렸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반대로 재정 악화 속도가 오이시디 국가 중에서 그리스 다음으로 빠르다. 국가채무는 2017년 660조원에서 내년에 986조원으로 49% 증가해 지디피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36%에서 50%로 올라갈 것으로 전망된다. 앞선 원인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소득을 높이고 복지지출을 확대하면 소비가 촉진되어 경제가 성장한다고 한 소득주도성장에 있다. 그러나 저숙련 근로자가 많아 고용을 줄이는 효과가 컸고, 노동시장이 경직적이라 재정에 의한 경기 부양 효과는 작았다. 반면, 고용 악화로 취약계층이 늘어 복지지출은 그만큼 더 늘었고, 재정 효과를 과장해 재정 악화에 대한 사람들의 문제의식이 흐려지고 재정지원 의존의식은 커졌다.
정부마저 그렇다. 다른 나라보다 재정이 건전하다는데 이는 통계의 착시다. 재정위기에 빠진 나라나 기축통화 국가와 비교하면 그렇지만 스웨덴 등은 우리보다 양호하다. 모든 문제를 재정으로 해결한다는 발상이 팽배해지면서 재정의 효율성도 떨어졌다. 맹목적인 재정지원은 이중 피해를 일으켰다. 실업 대책을 공공아르바이트 일자리로 채우고, 고용유지 한다고 생존능력을 상실한 기업을 지원하며, 고용창출 한다며 닥치는 대로 신생 기업에 돈을 퍼붓는다. 고용률을 올려도 유지될 수 없는 허수에 지나지 않고 노동생산성만 떨어져 성장이 후퇴하고 세수입은 지출의 증가를 따라갈 수 없게 되었다.
재정 건전성의 악화는 포퓰리즘의 문제다. 우리나라는 재정의 건전성과 효율성을 강조하면 보수, 그렇지 않으면 진보로 보는 경향이 강한데 이것도 착각이다. 재정의 건전성과 효율성은 진보가 더 중시하는 문제다. 사회민주주의가 강한 스웨덴 등 북부 유럽은 복지국가를 유지하려고 재정 건전성에 더 철저했다. 반면,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그렇듯이 보수 정부는 세금 줄이느라 재정 건전성에 소홀했다. 오이시디 국가도 그렇다. 경기 불황에는 재정이 늘고 선거가 있으면 더욱 그렇다. 경기 불황이 오래가면 재정의 건전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포퓰리즘까지 기승을 부리면 수직 추락한다.
우리나라는 인구구조와 노동시장의 특성상 취약계층이 늘어 재정이 악화할 수밖에 없다. 가계부채도 많아 재정마저 흔들리면 최악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북한과 통일이 되면 대규모 재정투입이 불가피하다.
이런데도 정치권에서는 기본소득과 전 국민 고용보험제를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크다. 그러나 취약계층을 양산하는 제도를 개혁하지 않고 무리하게 도입하면 재정위기를 자초하고 국민에게 손해만 끼치는 포퓰리즘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 절실한 일은 재정 악화를 이겨낸 스웨덴 등이 그랬듯이 산업 혁신, 노동 개혁, 복지 개혁, 교육 개혁이다.
재정도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이익집단에 휘둘린 방만한 재정사업은 수정·폐지하고, 세원은 폭넓게 확대하고 세율은 낮추어야 한다. 재정 건전성은 제도와 국민의식의 문제다. 여야는 물론 좌우를 넘어 정치권과 국민은 각성해야 한다.
재정 건전성 논의는 건전한가
‘건전 재정’이란 무엇인가. 그 논쟁은 건전했나. 재정 건전성 논란이 코로나19 국면으로 새삼 제기되는 건 아니다. 돌이켜보면, 대한민국의 재정 건전성은 여러날 위기였다. 여야 간 공방대로라면, 새 정권이 예산을 편성할 때마다 재정 건전성엔 ‘빨간불’이 켜졌을 법하다. 구호나 입장만 선명할 뿐 재정 건전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코로나 국면에서 특히 중요한 노동정책 등과의 상관성은 무엇인지 등 본질을 들여다볼 기회가 많지 않았다. 보수주의적 입장의 노동경제학 전문가, 새 경제패러다임을 모색하는 진보경제학 전문가가 각기 재정 건전성을 진단하고 전망했다.
[이슈논쟁] 재정 건전성 집착에 잠재 생산력 훼손 우려 / 유승경
유승경 ㅣ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부소장·경제학자
재정 건전성은 아이엠에프(IMF) 외환위기를 겪은 우리에게 경각심을 주는 신호의 역할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건전 재정이 무엇이며, 그것이 훼손되면 어떤 영향이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 논의는 드물다.
모든 경제 단위는 특정 기간의 수입과 지출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그래서 수입이 지출보다 많으면 저축을 하고, 반대의 경우에는 빚을 낸다. 그런데 빚이 이미 많다면 긴급한 필요 때문에 빚을 내려 해도 그럴 수 없다. 금융이 제한되면 경제는 곤경에 처한다.
그래서 재정 건전성이란 채무상환능력이며, 그것을 갖춰야 하는 이유는 필요할 때 빚을 내기 위해서이다. 재정 건전성은 금융활동을 뒷받침하는 능력이지 금융활동을 자제하라는 지침이 아니다.
경제학자들은 정부부채의 적정 수준을 가늠하는 기준을 찾으려 했다. 2010년 미국의 로고프와 라인하트는 정부부채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90% 이상인 나라의 경제성장률이 90% 미만인 나라에 비해 낮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지디피 대비 90%가 정부부채의 임계치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 논문은 큰 오류가 있었다. 사실 이런 절대적 기준이란 없다. 왜냐하면 채무상환능력은 빚을 낼 때 사전적으로 결정되지 않고, 빚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사후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정 건전성의 판단 기준은 이론적으로 도출할 수 있다. 수리적으로 재정 건전성은 명목 경제성장률과 국채 금리의 차이를 통해 판단할 수 있다. 명목 경제성장률이 국채 금리보다 높으면 이자를 갚고도 원금을 줄여갈 수 있기 때문에, 나라의 부채가 일시적으로 높아져도 중장기적으로 원래 수준으로 수렴한다.
한국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약 1.35%이다. 따라서 물가상승률을 포함한 성장 전망이 이보다 높다면 적자 재정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균형 재정을 유지하더라도 성장이 후퇴하면 재정 건전성은 오히려 악화되기 때문이다.
한가지 더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이론적으로 부채가 많으면 금리가 높다. 그런데 21세기에 들어와서 중앙은행이 양적완화를 실시한 경우 정부부채 수준과 국채 금리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일본은 정부부채가 지디피의 약 240%이지만 10년 만기 국채의 금리는 -0.01% 수준이다. 유로존 주요국들도 정부부채 비율이 높지만 국채 금리는 대부분 마이너스이다. 결국 국채 금리는 부채 수준에 의해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정책에 의해서 주어진다. 따라서 적극적 재정과 함께 양적완화와 같은 통화정책이 따라준다면, 부채 비율이 일시적으로 높아져도 성장에 의해서 장기적으로 원래 수준을 회복한다.
한국은 기축통화국이 아니기 때문에 이 같은 정책은 불가능하다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국채를 원화 표기로 발행한다면 한국은행이 매입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나라와 동일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사실 기축통화는 달러의 태환이 정지된 이후 사라졌고, 달러도 자국 경제력에 의해 뒷받침되는 법정화폐이다. 더욱이 위에서 언급한 정책이 미국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또 다른 반론은 재정 적자가 늘어나고 중앙은행을 통해서 돈이 풀리면 인플레이션이 일어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경제 침체기에는 유휴생산요소가 많아서 통화량이 늘어 수요가 확대되면 생산도 늘어나기 때문에 과도한 인플레이션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일정 정도의 인플레이션은 우려할 일이 아니다. 디플레이션을 경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물가가 내려도 부채는 액면가치가 고정되어 있어서 그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에 민간 부채의 과다한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일정한 인플레이션이 오히려 긍정적이다.
거듭 재정 건전성의 핵심은 채무상환능력, 달리 말해 채무조달능력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재정 여력을 확보하는 이유는 비상시에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이다. 현재의 코로나 위기는 방역이라는 외부 요인이 경제 순환을 단절시키는 예외적 위기이다. 이 같은 시기에는 외부 요인이 사라질 때까지 국민 생계를 보호하고 경제의 공급능력을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래야 위기 이후 성장을 조속히 정상화할 수 있다. 현재 단기적인 재정 건전성에 집착하는 것은 경제의 잠재 생산능력을 훼손할 뿐이다.
위기 이후에도 재정 건전성은 중장기적 관점에서 고려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1946년에 막대한 전비 때문에 국가부채 비율이 지디피의 119.1%에 달했지만 이후 35년 동안 무려 지디피의 88%가 줄어서 1981년에는 31.0%까지 낮아졌다. 이 같은 부채 감축은 전후 고도성장 때문에 가능했다. 그런데 미국의 국가부채는 1980년대부터 작은 정부를 내세우는 신자유주의가 시작되면서 다시 늘어났다. 큰 정부를 지향하던 그 이전 시기에 국가부채가 줄고 신자유주의 시대에 늘어났다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현 시기는 시대적 전환기이다. 산업적으로 새로운 산업혁명이 진행되고 있는데다 기후와 환경의 위협이 커져가고 있다. 전환기의 재정 지출 확대는 미래의 경제 기반을 다지는 투자로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예외적 위기와 시대적 전환기를 맞이하여 정부는 적극적이고 탄력적인 재정 운용으로 위기를 타개하고 시대 전환에 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