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해 ㅣ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생각지도 못한 일이 우연히 일어났을 때 쓰는 말. 하지만 어근인 ‘공교’(工巧)는 반대로 ‘솜씨 있고 실력 있다’는 뜻이다. 뛰어난 장인은 작은 실수도 놓치지 않는 섬세함으로 공교한 기술을 연마한다. ‘공교한 작품’은 요행이 아니라 성실한 노력과 몰입의 열매다. 홀로 보낸 시간의 두께에 비례한다. 그래서 ‘공교롭다’는 말에는 우연한 일의 뒷면에 인연의 그물이 촘촘히 쳐져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우연찮게’(우연하지 않게)가 ‘우연히’란 뜻과 같아진 것처럼, ‘공교롭다’는 한 낱말 안에 ‘우연과 필연(운명)’이 하나라고 새겨놓았다.
공교롭게도 코로나는 우리 사회의 약점을 드러내고 있다. 코로나는 사회경제적 약자, 배제되고 뒤처지고 깨어진 자들에게 가장 먼저 찾아와 가장 노골적으로 괴롭히다가 가장 나중까지 머무를 것이다. 공교롭게도 코로나는 신천지 교단의 폐쇄성을 숙주 삼아 우리 사회를 들쑤시고 있다. 배타성, 선민의식, 물신숭배, 성장제일주의는 신천지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에는 독특한 도자기 수리 기법이 있다. ‘금 꿰매기’, ‘금 수선’ 정도로 읽히는 긴쓰쿠로이(金繕い)는 깨어진 도자기를 버리는 대신 옻 성분의 접착제로 조각을 이어 붙이고 금가루로 칠을 하여 깨어진 도자기만의 아름다움을 새로 창조하는 기술이다. 흉터를 금빛으로 탈바꿈함으로써 부서짐을 감추지 않고 그 또한 역사로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자세다. 우리가 신의 피조물이라면 이 깨어진 세상에서 더욱 연대할 의무밖에 없다. 깨지고 찢어진 사회를 이어 붙이는 공교한 실력을 추구할 뿐이다. 우연이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