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두 ㅣ 한국도시연구소 이사장
신종 전염병이 출현하여 생명에 위협을 가하면서 사회활동을 위축시키고 있다. <자연의 역습: 환경전염병>의 저자 월터스에 의하면, 현대 사회는 ‘환경전염병’이라는 자연의 역습에 직면해 있다. 광우병, 에이즈, 사스와 같은 환경전염병은 동물을 매개로 감염되지만, 실제 이를 불러들인 주범은 욕망 충족을 위해 자연에 개입해온 인간이다.
지난해 12월 중국 우한에서 발생하여 ‘코로나19’로 명명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은 환경전염병의 새로운 사례다. 감염 환자가 중국 안에서뿐 아니라 전세계로 급속히 확산되면서, 각 국가는 코로나19의 역습으로 초긴장 상태다. 지난 며칠 중국의 확진자 증가세가 주춤했지만, 13일 하루 1만4천여명이 추가되면서, 섣부른 낙관론은 삼가야 한다는 점이 새삼 강조된다.
이유는 중국 당국의 통계가 의심스러워서거나 춘절 연휴 후 일상 복귀가 이뤄지면서 환자가 폭증할 수 있기 때문만이 아니다. 사태의 발생 원인과 재발 가능성에 관한 의문들은 전혀 풀리지 않고 있다. 코로나19는 어떻게 처음 생성되어 인체에 감염되었는가? 감염 환자들을 살릴 수 있는 백신이나 치료제가 개발될 수 있는가?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중국 당국의 대책은 옳은가?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코로나19’는 우한의 화난수산시장에서 팔던 박쥐에서 감염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초 발병자를 포함한 환자 상당수는 이 시장에 들른 적이 없다고 한다. 첫 발생 장소와 감염 경로에 대한 모호성은 대처 방법의 모색을 어렵게 한다. 하지만 박쥐나 낙타에서 감염된 사스(2002년)나 메르스(2012년)처럼, 코로나19도 야생동물들을 통해 감염된 것이 분명하다.
야생동물들이 바이러스성 질환을 매개하는 근본 원인은 인간이 이들의 서식지를 훼손하고 생태계를 교란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무분별한 자연 개입과 파괴는 이상기후로 인한 대형 산불이나 경제성장을 위한 삼림 개발에서 야생동물 밀거래와 취식, 공장형 축산, 항생제 남용, 유전자 변형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이로 인해 생성된 변종 바이러스들이 부메랑 효과로 인간 사회를 역습한다.
신종 바이러스가 창궐할 때면, 인간은 생명의 위험과 사회경제적 충격에 휩싸인다. 그러다 사태가 진정되면, 곧 둔감해지면서 잊어버린다. 과거 행태가 되풀이되고, 지구환경은 더욱 악화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자연통제능력이 발전해왔다고 하겠지만, 거듭된 신종 바이러스의 반격에도 인간은 속수무책이다. 사스와 메르스 사태를 겪었지만, 이번에도 환자 격리와 손 씻고 마스크 쓰기 외에 별 대책이 없다.
코로나19 백신이 조만간 개발될 것이라고 하지만, 언제 임상시험을 거쳐 환자에게 처방될지 모른다. 사태 후 8년째가 되어가지만, 메르스 백신은 아직 없다. 다국적 제약사들은 엄청난 연구비를 들여가며 유행기가 지난 변종 바이러스의 백신이나 치료제를 개발하려 하지 않는다. 그사이 바이러스는 다시 새로운 변종을 만들어내어 인간에게 반격을 가한다. 인간의 생명관리기술이나 자연통제능력은 바이러스의 진화를 따라잡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신종 바이러스가 발생하면, 국가는 우선 이를 숨기려 한다. 이번에도 중국 당국은 이를 처음 알린 의사 리원량을 유언비어 유포 혐의로 반성문을 쓰도록 했다. 그는 자신도 감염되어 죽음을 맞게 되었음에도, “건강한 사회라면 하나의 목소리만 나와선 안 된다”고 말했다. 정보를 공개하고 대비했다면, 사태는 이렇게 악화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 당국은 지금도 실태를 알리려는 사람들을 구금하고 언론을 통제한다.
지역사회에서 감염 환자의 급증과 확산을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자, 중국 당국은 인구 천만명의 대도시를 봉쇄하고 이동을 통제했다. 현대 사회에서 공적 보건의료는 국가의 책임이지만, 국가는 이를 책임지기보다 권력으로 행사한다. 푸코의 용어로, 생명권력은 국민들을 ‘살게 만들고 죽게 내버려두는’ 권한이다. 생명정치는 일부 환자들만이 아니라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간교한 방식으로 삶을 규제하고 조율한다.
변형된 신종 바이러스는 앞으로 계속 출현할 것이다. 백신과 치료제 개발도 중요하고, 국가 관리능력도 향상되어야 한다. 그러나 환경전염병이라는 자연의 역습은 관료주의적 생명관리기술이나 권력만으로 막을 수 없다. ‘코로나19’가 아니라 인간이 사태를 유발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는 단지 의학적 문제가 아니라 생태학적, 정치적 문제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거듭된 신종 바이러스의 공포에서 벗어나려면, 자연을 파괴·교란하는 인간의 생활·생산 양식을 바꾸고, 이를 실천하는 진정한 민주적 정치체계를 구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