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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장석준, 그래도 진보정치] 녹색 국회의원이 있어야만 한다

등록 2020-02-13 18:11수정 2020-02-14 09:31

장석준 ㅣ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위원 

이번 총선에서 무엇이 주된 쟁점이 돼야 하느냐는 물음에 나는 두가지 주제가 반드시 부각돼야 한다고 답하곤 한다. 하나는 주거 혹은 부동산 격차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기후위기 대응이다. 그런데 전자는 그나마 논란이라도 있지만 후자는 한국 정치판에서 화제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물론 다들 말로는 기후위기를 우려한다 하고 대응에 나서자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가치와 목표들에 밀려 늘 뒤로 밀리기 일쑤다. 심지어는 환경부가 ‘2050 장기 저탄소 발전 전략’ 수립을 위해 조직한 포럼조차 2050년까지 한국이 탄소 제로 상태에 도달한다는 목표를 포기한 보고서를 제출하는 형편이다.

이런 상황이 더 지속돼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우선 기후위기가 한국 사회에 다시 한번 문명의 전환이라는 거대한 도전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19세기 말에 조선은 인류 문명이 산업 자본주의로 나아가는 대전환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음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고, 이후 그 후손들은 참으로 고달픈 삶을 살아야 했다. ‘한강의 기적’이란 실은 그때 동참하지 못한 대전환을 뒤늦게 따라잡은 결과였다.

그런데 이제는 그 산업 자본주의가 또 다른 새 문명으로 전환해야 할 운명을 맞이하고 있다. 산업 자본주의는 항상 끊임없는 외연 확대를 통해 내부 모순을 우회하고 봉합해왔다. 지난 두 세기 동안은 어쨌든 이 해법이 통했다. 그러나 20세기 말부터 지구 생태계가 더는 이를 견뎌낼 수 없음이 드러났다. 기후위기는 산업 자본주의의 확장에 대한 지구 생태계의 가장 극적인 반격이다. 이제 인류는 산업 자본주의의 동력이었던 화석 에너지와 단절해야 할 뿐만 아니라 끝없는 양적 성장이라는 산업 자본주의의 본성과도 작별을 고해야 한다. 산업 자본주의가 처음 등장했을 때에 그랬던 것처럼 미지의 새 문명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다시금 닥친 이 문명 전환기에 한국인들이 지난번 전환기에 조선 사회가 맛본 엄청난 실패를 반복할 수야 없지 않은가. 화석 에너지 자본주의에 때맞춰 동참하지 못해 겪어야만 했던 고난과 비극을 화석 에너지 자본주의로부터 제때에 빠져나오지 못해 다시 불러들일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 정치권의 모습을 보면, 이런 운명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을 것만 같다. 이번 총선에서 이 양상에 어떻게든 균열을 내야만 한다.

한데 기후위기 대응이 당장 이번 총선에서 부각돼야 할 이유가 이것만은 아니다. 기후위기 대응은 한국 사회에 뜻밖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지금 한국 사회는 소득과 자산, 계급과 세대 그리고 지역의 불평등으로 신음하고 있다. 그런데 불평등이 심한 줄 알면서도 시원하게 고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하나같이 다 한국 사회가 산업 자본주의에 뒤늦게 적응하는 과정에서 내린 선택의 결과들이기 때문이다. 대기업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하려다 보니 중소기업과의 격차가 커졌고, 수도권에 집중 투자하다 보니 다른 지역은 뒤처졌다.

따라서 산업화 성공의 신화에만 안주해서는 불평등을 반전시키기 쉽지 않다. 기후위기 대응은 이런 상황에서 예기치 않은 출구가 되어줄 수 있다. 기후위기에 대처하는 녹색화를 추진하려면, 산업화 과정에서 그랬던 것처럼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고, 대중의 열정적인 참여도 필요하며, 이를 뒷받침할 새로운 제도 또한 필요하다. 이는 산업화 과정에서 굳어진 한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크게 흔들고 뒤집을 다시없는 기회가 될 것이다. 요즘 세계 곳곳에서 새로운 세상을 바라는 많은 이들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공공투자 계획인 ‘녹색 뉴딜’에 열광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대한민국 제21대 국회에 이런 시대정신을 대변할 국회의원이 없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이겠는가. 그 ‘잃어버린 4년’이 우리 후손들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의 시작으로 기억될지 모른다. 단 한명이라도 반드시, 녹색 국회의원이 있어야만 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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