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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장석준의 그래도 진보정치] 신자유주의를 넘어설 풀뿌리 대안, 지역공공은행

등록 2024-01-17 18:54

미국 로스앤젤레스 100여 개 단체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공공은행 설립 지지’ 트위터. 트위터 화면 갈무리

 

장석준 | 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

최근 미국 도시들에서 뜨거운 쟁점 가운데 하나는 시가 소유, 운영하는 은행 설립이다. 특히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같은 도시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2019년 시 정부가 공공은행을 자유로이 설립할 수 있게 한 법안이 주의회를 통과한 결과다.

유독 미국에서 지역공공은행이 주목받는 이유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이 신자유주의, 금융자본주의의 본산이라는 점이다. 신자유주의에서는 금융이 자본 축적과 지배의 주된 수단이 된다. 너도나도 대출받아 투기에 뛰어들도록 부추겨 자산시장을 키우지만, 막상 자산시장 거품이 붕괴한 뒤에는 은행만 구제해 주고 채무자는 나락으로 내몰린다. 미국 사회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통해 이 진실을 너무나 혹독하게 체험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미국에는 이와 정반대되는 오랜 대안 역시 존재한다. 미국에서 유일하게 지방정부가 소유한 은행인 노스다코타은행이다. 1919년 노스다코타 주정부에 의해 설립된 노스다코타은행은 한세기 동안 온갖 역사적 부침 속에서도 공공은행으로서 정체성을 잃지 않고 운영됐다. 신자유주의 전성기 이 은행은 화석 취급을 당했지만, 금융위기와 팬데믹을 겪으며 새삼 미래의 대안으로 재평가받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노스다코타은행의 임무는 지역 내 중소상공인, 농민, 서민 가계에 장기저리융자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지역공공은행이 생긴다고 하면, 흔히 민간은행과 과잉 경쟁하지 않겠냐고 걱정한다. 그러나 이는 기우다. 노스다코타은행은 민간은행이 배제하는, 하지만 누구보다 더 금융서비스가 필요한 이들에게 돈이 돌게 한다. 학자금 대출은 미국 내 최저금리를 적용해 직접 담당하고, 중소상공인이나 농민의 경우에는 민간 금융기관과 합작하여 장기저리로 대출한다. 덕분에 미국 다른 지역과 달리 노스다코타에서는 금융위기 때도 주택을 압류당하는 가정이 적었고, 팬데믹 이후에도 자영업자들이 높은 대출 이자에 허덕이지 않았다.

게다가 노스다코타은행은 주정부 금고 역할을 해, 여기에서 파생되는 수익이 고스란히 주정부로 돌아온다. 이런 수익을 바탕으로 노스다코타은행은 주정부가 공공투자를 위해 발행하는 채권을 구매한다. 지역에서 발생하는 수익이 지역 내 재투자를 통해 지역 안에서 순환하는 것이다.

이러한 노스다코타은행 사례는 미국의 도시들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도 중요한 참고 사례가 된다. 1997년 말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금융제도 역시 미국을 충실히 뒤따랐다. 생산 활동보다 부동산시장에 돈을 풀었고, 그럴수록 수도권 아닌 지역, 대기업 아닌 기업, 상위중산층 아닌 계층은 소외되거나 피해자가 됐다. 팬데믹 기간에도 서민은 부채 증가로 신음했지만 은행들은 돈 잔치를 벌였다.

이제 한국에서도 지역공공은행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추진해야 한다. 지역공공은행은 신자유주의의 토대인 금융영역을 오히려 신자유주의를 넘어설 발판으로 반전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또한 사회적 신용과 공공투자를 통해 지역 생활현장에서 기후재난, 불평등, 지역쇠퇴 등 복합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유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

마침 정의당과 진보당이 각각 한국형 지역공공은행 설립 법안을 발의했다. 모처럼 새 질서를 과감히 제시하고 추진하려는 시도다. 법안 발의에 그치지 않고, 각 지역에서 지역공공은행 설립 운동으로 이어나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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