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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뇌부자들 상담소] ‘적당한’ 불안과 ‘과도한’ 불안 / 오동훈

등록 2020-02-12 18:17수정 2020-02-13 02:37

오동훈 ㅣ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계속되는 요즘, 가장 화두가 되는 단어는 바로 ‘불안’이 아닐까 싶다. 맞닥뜨리는 사람 중 열에 여덟이 마스크를 하고 있는 아침 출근길의 풍경은 우리 사회의 현재 심리상태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사실 불안은 가장 원초적인 감정이자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감정이다. 식량을 구하러 나섰다가 깊은 산속에서 처음 보는 동굴을 발견한 원시인의 상황을 가정해보자. 불안을 잘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겁 없이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가 그 안에 있던 맹수와 맞닥뜨리고 말았을 것이다. 반대로 불안을 좀 더 쉽게 느끼는 사람은 동굴 안의 작은 기척에 놀라 도망친 덕분에 살아남았을 것이고, 자신의 불안한 기질을 디엔에이(DNA)에 담아 자손에게 물려주었을 가능성이 높다. 결론적으로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어떤 의미에선 모두 ‘불안한 사람’의 후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불안이 생존에 도움이 되려면 중요한 전제조건이 붙는다. 바로 그 수준이 ‘적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맹수의 기척을 느끼고 무사히 도망쳤지만 이후 두려움 때문에 자신이 살던 동굴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으려 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며칠 내로 굶어 죽고 말 것이다. 이럴 땐 불안에 브레이크를 걸어줄 필요가 있다. 뇌 안에서 불안을 담당하는 부위는 안쪽 깊숙한 곳에 위치한 ‘편도체’이고, 브레이크를 담당하는 부위는 이마 쪽에 있는 ‘전전두엽’이다. 편도체가 활성화되었다는 신호가 감지되면 전전두엽이 이어서 활성화되면서 내가 느끼는 불안의 수준이 적합한지 확인하고, 합리적인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생각을 정리해준다. ‘외출해서 낯선 사람과 접촉하는 건 불안하지만, 마스크를 착용하면 괜찮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은 적절한 불안과 이성이 조화를 이루어 끌어낸 최선의 결론이다.

그런데 불안이 일정 수준을 넘겨 공포가 되면 전전두엽의 기능이 억제되어 버린다. 바로 눈앞의 맹수와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곧바로 움직여야만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에, 논리적인 판단보다는 본능적인 감각에 따라 싸울지 도망칠지를 즉각 결정해야 한다. 문제는 실제로 그렇지 않은데도 눈앞에 너무 큰 위협이 존재한다고 느끼는 경우다. 원래대로라면 전전두엽이 작동해서 불안을 낮춰줄 만한 일인데도, 잘못된 정보에 의해 이미 편도체가 거세게 요동쳐버리는 탓에 손을 댈 수 없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공황장애가 있다. 평범한 상황임에도 머릿속에서는 생존을 위협받는 것으로 잘못 인식을 하게 되고, 이로 인해 강렬한 공포를 느끼며 통제 불능의 상태로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뇌 메커니즘을 고려하였을 때 이번 신종 코로나 사태의 안정에 있어 신속한 대응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과도한 불안을 억제하는 것이다. 특정 이슈가 주목받기 시작하면 에스엔에스(SNS)나 1인 미디어를 통해 관련된 거짓 정보들을 만들고 유포하는 이들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최근에도 살고 있는 지역에 확진 환자가 발생했다고 거짓 소문을 낸 대학생과, 지하철에서 우한에서 온 폐렴 환자 행세를 해 사람들을 대피하게 만든 스트리머가 뉴스를 장식했다. 이러한 거짓 정보는 자극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불안에 취약한 사람들에게 공황장애와 마찬가지로 잘못된 위협 신호를 만들어낸다. 그 결과 편도체가 과활성화되고, 전전두엽의 기능이 더욱 억제되면서 불안감이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되어버리는 것이다. 당사자는 단순히 재미로 한 행동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 모르나 가벼운 말 한마디가 큰 파도가 되어 일상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경우를 진료실에서 자주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거짓 정보가 필터링되어 조기에 차단되고 정확한 사실만이 주어진다면, 우리가 가진 고유의 전전두엽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어 불안을 건강하게 승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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