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 ㅣ 소설가
지난 1월12일 오후 2시 박종철 33주기 추모제가 박종철이 숨을 거둔 옛 남영동 대공분실(현 민주인권기념관) 마당에서 열렸다. 추모제는 춤패 마구잽이의 북춤으로 시작되었다. 북은 짐승의 가죽으로 만들어진다. 사람이 짐승을 두드리는 소리가 북소리인 것이다. 여기에서 짐승은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다. 먼 옛날, 사람들은 제물을 두드리면서 신을 불렀다. 신이 지상을 떠나지 않았던 시절의 북소리는 일상의 시간을 신이 깃드는 특별한 시간으로 변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 신성한 소리를 통해 세상의 슬픔과 소망을 신에게 보여드리는 초월의 공간이 마련된 것이었다. 사람은 초월의 공간을 오래 견디지 못한다. 일상의 에너지보다 훨씬 밀도 높은 에너지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1987년 1월14일 새벽, 스물세살 청년 박종철은 초월의 공간 속으로 끌려 들어가 오전 11시20분경 숨을 거두었다. 박종철의 죽음은 그냥 죽음이 아니었다. 정화된 죽음이었다. 누군가를 위해, 누군가를 대신한 희생이 그의 죽음을 깨끗이 씻은 것이었다. 그날 이후 박종철의 정화된 육신이 사람들의 마음에 조금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박종철의 육신은 어두운 물속에 있지 않았다. 환한 빛 속에 있었다. 환한 빛 속에서 생명체처럼 숨쉬고 있었다. 그 환한 빛의 세례를 받은 이들은 그전의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다시 꿈을 꿀 수 있겠다는 희미한 예감에 사로잡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박종철 이전의 정화된 죽음들이 쌓은 꿈이었다. 그 꿈이 박종철의 죽음을 통해 되살아난 것이었다. 박종철의 아버지 박정기는 그 꿈의 중심으로 속절없이 이끌려 들어갔다.
부산 수도국에서 36년을 일하고 예순살로 정년퇴임을 앞둔 해에 아들을 잃은 박정기는 그로부터 5개월 후 6월항쟁의 거리에서 시민들이 든 펼침막의 글귀 ‘철아, 잘 가그래이. 이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데이’를 보고 하염없이 울었다. 6월항쟁은 그로 하여금 ‘아들이 나에게 새로운 세상으로 건너가는 다리를 놓아 주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고, 그 깨달음은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가입으로 그를 이끌었다. 유가협 회원들은 죽은 자식을 끌어안고 사는 부모들이다. 그들이 오랜 세월 동안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그토록 치열히 싸울 수 있었던 것은 자식의 혼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가슴 깊이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나이 이제 여든여덟이다. 지난 삶을 돌이켜보면 회한이 없을 수 없다. 나는 아직도 철이가 죽음을 맞바꾸면서까지 지키려 했던 것이 무언지를 생각한다. 스물세살의 철이는 세상의 한가운데서 무엇을 꿈꾸었을까? 그 답을 나는 지금도 찾고 있다.”
박정기는 2018년 7월28일 세상을 떴다. 아들을 잃은 후 31년의 세월은 늙은 육신이 스물세살 아들의 젊은 혼에 이끌린 삶이었다. 개인의 삶이 역사의 삶이 되어버린 것이다. 박정기가 세상을 뜬 그해 12월11일 새벽, 스물네살의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이 태안화력발전소의 어두컴컴한 지하 작업장에서 헤드랜턴도 없이 휴대전화의 손전등 불빛을 비춰가며 일하다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육신이 두 동강 나버렸다. 박정기가 살아 있었다면 생전에 그랬듯 김용균의 빈소로 달려갔을 것이다.
“용균이는 나에게 햇빛이고 공기였다”는 김미숙은 아들이 죽기 전 그곳에서 8년 동안 12명이 산재로 죽었고, 28번이나 시정요구를 했음에도 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묵살당한 사실을 알게 되면서 아들의 죽음이 혼자의 죽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김용균의 죽음은 어둠에 묻혀 있던 노동자들의 죽음을 드러낸 것이었다. 김미숙이 세상의 지붕 위로 올라가 아들의 참혹한 죽음이 품고 있는 진실을 외친 것은 “내 아들은 죽었어도 다른 사람 자식들은 살리고 싶다”는 간절한 염원 때문이었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일구는’ 김용균재단이 만들어진 것은 염원의 결실이었다. 김미숙의 그 염원은 박정기가 자식을 잃고 품은 염원과 일치했다. 김미숙이 박종철 33주기 추모제에 참석한 것은 필연이었다. 그녀가 옛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실에 마련된 박종철의 영정에 흰 꽃 한 송이를 바치는 순간 박종철과 김용균의 삶이 서로에게 스며들면서 시공을 초월한 역사적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