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재 ㅣ 세종대 교수·한국엔터테인먼트법학회 회장
우리가 특정한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사용할 수단을 결정할 때, 그 정책 목표가 타당하다고 해서 어떤 수단이라도 쓸 수 있다는 결론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스크린 독과점’이라는 주제가 다시 우리 영화산업에서 화두가 되고 있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지난달 22일 ‘영화다양성 확보와 독과점 해소를 위한 영화인대책위원회’(약칭 반독과점영대위)는 우리나라 영화산업과 관련해 씨제이(CGV), 롯데(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세곳이 국내 스크린의 92%, 국내 입장료 수익의 97%를 차지하는 철저한 독과점 상태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런 문제를 시정하기 위해 영화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영화의 기획, 제작, 유통, 상영 등 일련의 과정이 대기업 아래에서 수직계열화된 작금의 상황에서 고민해야 할 일인 것만은 분명하다. 공룡이 된 소수에 의해 선택받지 못한 영화는 영화인들이 아무리 고생해서 제작하더라도 결국 상영이 되지 못해 시민들을 스크린에서 만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 상황은 단순히 영화산업의 문제만이 아니라 시장왜곡으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에도 위해가 될 수 있는 문제다.
필자도 이를 중대한 문제로 보고 있다. 그런데 의문은 ‘스크린 상한제’나 ‘수직계열화 금지’와 같은 직접적인 규제 방식이 적절한 대안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규제에서 가장 하수의 규제는 직접적으로 가격이나 물량을 통제하는 것이다. 소비자 선택권을 제한하는 경쟁제한 행위나 공정한 시장질서를 저해하는 행위는 공정거래법에 의해 규율되는 것이 옳다. 우리는 항상 무슨 문제가 생기면 대증요법으로 가격을 통제하거나 수량을 통제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는 바람직한 해법이 될 수 없다.
문제로 제기되는 사안들을 하나씩 보자. 먼저 영화 스크린을 일부가 ‘수직계열화’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영화관이라는 장소적인 측면에서 볼 것이 아니라, 영화를 유통하는 플랫폼이라는 점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의 영화는 반드시 영화관이라는 장소에서 소비되지 않는다. 만일 봉준호 감독의 작품 <옥자>가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거부된다고 하더라도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에서 영화 수요자를 만날 수 있다면, 수직계열화로 인해 다양한 영화의 제작·상영을 제한하는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영화를 상영하는 플랫폼이 영화관만 있다고 한다면, 현재와 같은 수준의 시장집중도를 방치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 수 있고 소위 ‘수직계열화 금지법’을 만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또한 그 형태는 법이 아니라 공정거래위원회가 구조적 시정조치로 미국의 거대 통신사였던 벨에 ‘분리매각명령’을 한 것과 같은 유의 강경한 조처를 했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날의 동태적인 시장기술의 발전은 이런 플랫폼에 대한 규제를 영화관에만 한정해서 보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따라서 보충적으로 사용되어야 할 구조적 시정조치나 (수직계열화를) 규제하는 입법은 타당하지 않다. ‘엔(n) 스크린’ 시대의 영화소비 구조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다음으로 ‘스크린 상한제’를 시행해야 하는 것인가의 문제를 짚어보자. ‘스크린 상한제’는 ‘스크린 쿼터’와 같이 물량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이다. 그런데 예를 들어 하나의 영화에 대해 일정 스크린 수 이상은 상영하지 못하도록 하자는 것은, (영화 수요자로부터) 선택받지 못하는 작품의 수를 줄이자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다. 소위 ‘예술영화’는 장사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여전히 선택받지 못하고 일부 상업영화가 추가로 선택이 되는 정도의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시 상한을 더 제한하자고 할 것인가. 또한 스크린에 특정 영화를 상영하도록 하는 문제는 그 자체로 사안별로, 행위별로 공정거래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일률적으로 물량 규제를 하는 것에 비해 훨씬 까다로운 작업이 될 수 있는데, 수직적 혹은 수평적 측면 모두에서 영화 상영관과 특정한 제작사나 수입사와의 관계에서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가 있을 수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아울러 (일률적 규제보다는) 오히려 영화의 공적 기능에 주목하고 사회적으로 이런 공적 역할을 맡을 수 있는 영화관이나 플랫폼을 만드는 방안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공공도서관이 베스트셀러만을 구입해서 읽을 수 있도록 하면 안 되는 것처럼 영화도 문화의 일부로 공적 영역에서 시민과 접점을 찾을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공공도서관을 이용해서 다양한 영화가 관객을 만날 수 있도록 하는 방법, 공적인 플랫폼을 제공하여 사회적 기업으로서 다양한 영화를 만날 수 있도록 하는 방법 등을 고려하여 문화적인 다양성이라는 공익을 말 그대로 공적으로 구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접근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6편 이상 동시상영 가능한 영화관은 오후 1~11시 프라임 시간대에 한 영화를 전체 상영 횟수의 50%를 초과해 상영하지 못하도록 하는 우상호 의원(더불어민주당)의 영화법 개정안이나 △영화 상영업과 배급업의 겸업을 금지하여 수직계열화를 제한하려고 하는 도종환 의원(더불어민주당)의 영화법 개정안보다 경제 원리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대안이라고 본다.
[이슈논쟁] 스크린 독과점 규제
지난달 영화 <겨울왕국>의 개봉을 전후로, 스크린 독과점 규제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한번 일었다. 흥행 몰이를 하는 특정 영화의 스크린 점유가 높아질 때마다, 이런 스크린 독과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법적 규제를 펴지 않으면 한국 영화계의 미래가 어둡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탓이다. 지난달 22일 ‘영화다양성 확보와 독과점 해소를 위한 영화인대책위원회’가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법제도 개선을 촉구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대책위는 대기업의 배급업·영화상영업 겸업 반대, 공평한 상영관 배정, 복합 상영관에서 동일한 영화의 일정 비율 이상 상영 금지 등을 촉구하고 있다. 현재 국회에도 이런 요구들을 담은 영화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하지만 일률적 규제조치에 대해서는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영화제작사 대표를 역임한 바 있는 조광희 변호사와 한국엔터테인먼트법학회 회장인 최승재 세종대 교수의 견해를 나란히 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