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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슈논쟁] 승자독식과 패자몰락을 제도로 보완해야 / 조광희

등록 2019-12-23 20:21수정 2020-01-20 18:55

조광희 ㅣ 법무법인 원 변호사

카를라 브루니의 ‘더 위너 테이크스 잇 올’(The winner takes it all)을 자주 듣는다. 아바의 원곡인데, 묘한 매력이 있다. 제목인 ‘승자독식’은 악명이 높다. 세상은 사랑에서도 경제에서도 자주 이 규칙을 따른다. 잊을 만하면 강력한 영화가 스크린을 점령해 독과점 문제가 거론된다. 국회에는 일정 비율의 스크린 상한제를 두는 여러 법안이 발의돼 있는데 계속 답보상태에 있다. 제한의 비율을 떠나 그 제한이 헌법에 맞는지, 적절한 제도인지 살펴보자.

우선 ‘시장의 자유’를 이유로 반대하는 견해가 있다. 나도 시장의 자율성을 중시하며, 그 메커니즘에 함부로 개입하는 것에 반대한다. 편리한 해결 같지만 시장을 교란시켜 큰 대가를 치를 수 있다. 하지만 순수한 시장의 자유는 환상이다. 칼 폴라니 같은 학자에 따르면, ‘시장’ 자체가 엄청난 국가적 개입을 통해 적극적으로 형성된 것이지,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다. 필요한 경우에 시장의 규제는 불가피하다. 핵심은 그 규제가 헌법의 가치에 맞고, 정책적으로 적절한지다. 즉 시장을 쉽게 생각하는 오류와 시장만능의 오류를 동시에 피하는 실사구시적 접근이 필요하다.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부동산, 교육 같은 분야에서 국가는 늘 시장과 규제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이때 한국은 절묘한 선택을 하지 못하고 자주 비틀거린다.

‘시장의 실패’란 “민간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으로 경제활동이 이루어질 때, 시장이 효율적인 자원 배분을 이루어내지 못하는 현상”을 말한다. 지금의 극장은 실패하는 시장이다. 극장은 어느 시기에 좋은 영화가 많이 몰렸다고 전체 스크린이 늘어나고, 별 볼 일 없는 영화뿐이라고 전체 스크린이 줄어들지 않는다. 단기적으로 스크린의 숫자는 고정돼 있다. 소수의 큰 영화가 스크린을 쓸어 담으면 애써 만든 다른 영화는 관객을 만날 기회를 박탈당한다. 대부분의 영화가 손해를 보고, 일부 영화의 극한 흥행을 통해 그 손해를 보전하는 기형적인 방식이 영화산업에 이미 정착되어 있다. 이 시스템에서는 더 흥행한 영화가 더 재밌고 더 가치 있는 영화라는 보장도 없다. 그냥 어떤 영화가 휩쓸어버렸을 뿐이다. 이것은 자원 낭비다. 어느 감독, 어느 제작사의 영화도 개봉하기 전에는 독점이익을 누릴지 아니면 희생자가 될지 예측할 수 없다. 승자독식을 즐길 때는 달콤하지만, 확률상 패자가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이때 승자독식과 패자몰락을 완화해주는 것이 그렇게 잘못된 것일까.

점유하는 스크린의 수를 제한하는 대신에 긴 흥행 기간을 통해 최대치에 접근하게 하고, 그렇게 숨통이 트인 공간에서 다른 영화도 상생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 누구라도 자기 영화가 힘이 세면 스크린을 최대한 확보하고 싶기 때문에, 시장 참여자의 자발성을 기대할 수는 없으므로 제도로 해결해야 한다. 스크린 상한제를 잘 설계하고 운용하면 승자독식을 해결하고 전체 영화의 수익률을 개선할 수 있다. 또한 작은 영화들의 생태계가 활기를 띠면 한국 영화의 다양성이 보장되고 관객의 선택권이 증진된다.

극장업과 배급업을 동시에 영위하는 것을 제한하는 ‘수직계열화 금지’의 문제도 이 연장선상에 있다. 씨제이, 롯데를 비롯한 대기업은 봉준호 감독 못지않게 한국 영화의 발전에 대단히 기여했다. 예측이 어려운 모험산업에 돈을 투자하는 것은 특별한 애정 없이는 어렵다. 그렇지만 그 사업의 자유를 무조건 지지하는 것이 정답도 아니다. 극장업과 배급업을 동시에 영위하는 것은 개별 기업으로서는 경쟁자보다 상대적 우위에 서고자 하는 합리적인 선택이다. 하지만 시장 전체로 보았을 때에는 공정경쟁을 제한시켜 결국 산업의 발전을 가로막는다.

영화산업의 경우에 수직계열화는 영화산업 전체의 생산성 증진에는 거의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영화제작사가 투자배급사를 구할 때 “극장도 가진 저 회사는 내 영화를 더 많은 극장에서 상영할 수 있겠지”라는 기대와 이익을 주는 것에 그친다. 더 나은 투자 조건을 제시하거나, 제작사의 자율성을 존중한다거나, 제작에 있어서 더 큰 영감을 준다거나 하는 본래적인 경쟁력이 아니라, ‘극장도 있다’는 사실 자체가 큰 유인이 된다면 이는 합리적인 시장이 아니다. 극장과 배급을 겸하는 회사들은 스크린을 배분할 때 철저히 시장논리에 따르며, 관계회사라는 이유만으로 이익을 주지 않는다고 변명한다. 인간의 본성상 설득력이 떨어지는 주장이다. 개별적인 위법행위를 찾아내 제재하면 된다는 견해도 있으나, 은밀하게 이심전심으로 벌어지는 차별행위를 찾아내기는 어렵다.

영화는 짧은 개봉 기간 동안 극장을 확보해 관객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 만듦새나 의미도 중요하지만 상영관의 확보가 관건이다. 어느 영화가 지나치게 많은 스크린을 확보하면 다른 영화는 숨을 쉴 수가 없다. 투자배급사와 극장이 유착되어 있으면 공정경쟁을 해치고 시장의 실패에 이른다. 이때 국가가 개입하여 시장의 실패를 해결해야 한다.

위 두 정책은 반시장적 정책 같지만, 시장의 실패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특정 분야에서 시장과 공공성과 다양성을 구제하는 제도다. 이 문제의 해결에 정치권의 협상 능력과 결단만이 남아 있다. 나는 새로운 제도가 한국 영화를 더 번영시킴으로써 모든 영화산업 참여자에게 더 큰 기회를 준다고 확신한다.

[이슈논쟁] 스크린 독과점 규제

지난달 영화 <겨울왕국>의 개봉을 전후로, 스크린 독과점 규제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한번 일었다. 흥행 몰이를 하는 특정 영화의 스크린 점유가 높아질 때마다, 이런 스크린 독과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법적 규제를 펴지 않으면 한국 영화계의 미래가 어둡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탓이다. 지난달 22일 ‘영화다양성 확보와 독과점 해소를 위한 영화인대책위원회’가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법제도 개선을 촉구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대책위는 대기업의 배급업·영화상영업 겸업 반대, 공평한 상영관 배정, 복합 상영관에서 동일한 영화의 일정 비율 이상 상영 금지 등을 촉구하고 있다. 현재 국회에도 이런 요구들을 담은 영화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하지만 일률적 규제조치에 대해서는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영화제작사 대표를 역임한 바 있는 조광희 변호사와 한국엔터테인먼트법학회 회장인 최승재 세종대 교수의 견해를 나란히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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