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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서경식 칼럼] ‘니시키에’가 비춘 근대 일본의 아시아관

등록 2019-12-19 18:34수정 2019-12-20 15:57

서경식 ㅣ 도쿄경제대 교수, 번역 한승동/독서인

‘니시키에’(錦}u)를 아시는지? 니시키에는 일본 근세 회화를 대표하는 우키요에(浮世}u)의 한 갈래인데, 메이지유신을 전후해서 사회가 요동치면서 청일·러일 전쟁 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보도성’이 있는 값싼 대중적인 미디어로 널리 일본 국민에게 보급된 것이다. 미술사적으로 흥미 깊고, 역사자료로서도 매우 귀중하다. 내가 관장을 맡고 있는 도쿄경제대학 도서관에 소장돼 있는 ‘사쿠라이 요시유키 문고’에 니시키에가 약 130점 들어 있다. 사쿠라이 요시유키는 일제강점기에 경성제대의 조교가 됐고, 나중에 조선총독부 관방문서과에서 서지 작성이나 자료 수집 일을 한 인물이다. 조선과 관련된 주제는 ‘진구황후(神功皇后) 분로쿠 게이초의 역’ ‘정한논쟁’ ‘강화도 사건’ ‘임오군란’ ‘갑신정변’ ‘김옥균 암살’ ‘갑오 내정개혁운동’ ‘조선 왕성’ ‘청일전쟁’(모두 일본어 표기) 등 10개 항목이다.

도쿄경제대학에서는 평소엔 별로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도서관 깊숙한 곳에서 잠자고 있는 이 컬렉션을 지난달 부분적으로 공개 전시하고, 관련 학술 심포지엄을 열었다. 니시키에는 다루기 어려운 자료다. 그것은 보기에도 아름답고, 일본 근대 미술 문화의 발전, 나아가 현재의 애니메이션 문화에까지 이어지는 맥락을 고찰하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그와 동시에 사쿠라이 문고의 니시키에는 대부분 ‘전쟁화’이며, 일본이 근대에 침략·지배한 이웃 민족들에 대한 적대와 멸시의 표상이다.

사쿠라이 요시유키는 “조선을 주제로 한 니시키에가 당시의 일본 국민에게 어떻게 반영됐는가, 니시키에를 통해 이웃나라 조선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의식했던가”라는 문제의식을 제시하면서 니시키에가 메이지 시기의 한국에 대한 의식을 고찰하는 데 필요한 가장 전형적인 자료라고 지적했다.(‘메이지시대의 니시키에로 보는 조선문제’ <사쿠신가쿠인 여자단기대학 기요> 1977년 4월) 또 역사학자인 강덕상 시가현립대학 명예교수는 “일본의 역사는 막부 말·메이지 시기의 천황제 국가 형편에 맞춰 변조됐다”고 문제제기를 하면서 “또 하나의 역사 바꿔쓰기 공방(工房)의 산물”인 니시키에는 그런 의문에 대한 해답이며, “조선·중국 침략의 실태는 은폐됐다”고 지적한다.(강덕상 편 <니시키에 속의 조선과 중국―막부 말·메이지의 일본인 시선> 이와나미서점, 2007) 니시키에는 역사적 사실을 보여주는 자료라기보다는 사람들이 거기에 묘사된 ‘인상’(이미지)을 어떻게 내면화했던가, 그것이 나중의 역사에까지 어떤 영향을 끼쳤던가라는 문제를 고찰하기 위한 자료다.

앞서 얘기한 심포지엄에서 동아시아 고대사 연구의 권위자 이성시 와세다대학 교수는 ‘니시키에에 묘사된 삼한(三韓)정벌’이라는 글을 발표했다. 이 교수는 이 글에서 일본 고대신화에서 얘기하는 ‘진구황후의 삼한정벌’(진구황후가 한반도에 원정을 나가 신라, 백제, 고구려를 정복했다는 신화)은 완전한 허구임을 확인하고, 그 허구가 근대 이전부터 비대해져서 정착되고 일본 국민에게 내면화됐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이 신화가 학문적으로 부정된 것은 놀랍게도 일본이 패전한 지 14년이 지난 1959년에 발표된 나오키 고지로의 논문 덕이었으며, 그 이전의 일본인들은 다수의 지식인을 포함해서 이 신화를 사실 그 자체로 받아들였다.

13세기 말 원(몽골)의 내습 이후 진구황후 신화는 한 단계 버전 업 됐다. 진구황후는 삼한정벌의 결과 이국(異國, 한반도)의 왕들에게 일본국의 ‘개’가 돼 일본을 수호하겠다는 약속을 하게 만들고, 활로 “신라국의 대왕은 일본의 개”라고 바위에 새긴 뒤 귀국했다는 것이다.(그림 <대일본사 약도>) 임신한 몸으로 삼한을 정벌했다는 진구황후 전설은 지금도 신사신도와 결합돼 일본 국민 정신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신라를 정벌했다는 일본 신화의 주인공 제15대 진구(신공)황후. 도쿄경제대 도서관 제공
신라를 정벌했다는 일본 신화의 주인공 제15대 진구(신공)황후. 도쿄경제대 도서관 제공

또 다른 발표자 고고 에리코 메이세이대학 준교수는 ‘청일전쟁 니시키에로 보는 신체의 표상’이란 제목의 글에서 니시키에에 드러나 있는 신체 표상을 보면 ‘일본인’은 규율, 문명, 강인함으로 묘사되지만 조선인과 중국인은 무규율, 야만, 연약함 등으로 묘사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평양을 공격하는 일본군을 묘사한 그림은 전기라는 당시의 최신 무기를 구사하며 공격하는 일본군의 모습을 원근법을 사용한 참신하고 ‘근대적’인 구도로 묘사한 것이다.

평양을 공격하는 일본군이 전깃불을 사용했음을 보여주는 그림. 도쿄경제대 도서관 제공
평양을 공격하는 일본군이 전깃불을 사용했음을 보여주는 그림. 도쿄경제대 도서관 제공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이른바 ‘문명’의 발전은 타자에 대한 침략·지배 과정과 깊이 결부돼 있다. 제국주의 국가가 타자에게 ‘야만’ ‘미개’ ‘후진’이라는 표상의 딱지를 붙임으로써 자신들을 ‘문명’ ‘개화’ ‘선진’의 위치에 놓고 침략과 지배를 정당화하려 할 때 미술, 사진, 영화 등 시각 미디어가 큰 몫을 했다. 이런 ‘이미지’는 대중의 무의식에 침투해 타자에 대한 우월감을 양성해 몇 세대나 되는 장기간에 걸쳐 계속 영향을 끼친다. 유의해야 할 것은 이런 이데올로기가 단지 권력에 의해 위에서 서민들에게 강제됐을 뿐만 아니라 서민 쪽에서도 이를 기쁘게 받아들였다는 사실이다. 당시 니시키에는 큰 인기를 얻어 날개 돋친 듯 팔렸다.

근대 일본에서 시각 이미지로 대중에게 침투해 내면화된 ‘타자상’을 발견해내는 것은, 그런 ‘거울’에 비춰봄으로써 일본 국민이 근대의 왜곡된 ‘자기상’을 발견하고 그 극복 방향을 모색하는 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뛰어난 예술성과 타자에 대한 멸시의 동거. 이것은 굳이 말하자면 ‘근대’ 자체의 양면성이라는 난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고, 일본과 아시아 민족들에게 ‘근대’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이제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보도록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의 ‘헤이트 스피치’(혐오발언, 타자증오) 등에 대해 생각해보기 위해서라도 앞서 얘기한 ‘근대’에 대한 좀 더 깊은 고찰이 필요하다.

*니시키에 그림은 아래 도쿄경제대학 도서관 사이트의 ‘귀중서 아카이브’에서 열람할 수 있다. www.tku.ac.jp/library/about/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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