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해 ㅣ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인간은 게을러서 짧게 말하기를 좋아한다. 이렇게 말을 줄이는 일이 과도하여 요상한 상황을 연출한다.
재수 없거나 기분 나쁘게 만드는 사람을 만나면 ‘밥맛’이다. 밥맛이 떨어질 정도로 기분 나쁘다. 애초에 ‘밥맛이 있다/없다’는 음식 맛을 평가하거나 식욕의 유무를 나타낸다. ‘밥맛이다’가 불쾌한 감정일 이유가 없다. 그러다가 아니꼬운 사람이 나타나면 ‘밥맛없다’ ‘밥맛 떨어지다’라는 말 뒤에 붙은 ‘없다’나 ‘떨어지다’를 싹둑 잘라내고 ‘밥맛’만으로 불쾌한 마음을 표현한다. ‘밥맛’ 입장에서는 뒤에 붙은 서술어의 부정적인 의미마저 모두 넘겨받은 셈이다.
그러다 보니 한 낱말에 긍정과 부정의 의미가 동침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잘났다’가 상황에 기대어 반대로 쓰이는 것과는 다르다. 부정의 의미를 늘 갖고 있는 느낌이다. ‘엉터리’도 비슷하다. ‘엉터리없다’는 말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뜻이라면 ‘엉터리’는 ‘이치에 맞는 행동’이어야 이치에 맞는다. 그런데도 ‘엉터리’와 ‘엉터리없다’는 뜻이 같다. ‘안절부절못하다-안절부절’ ‘주책없다-주책(이다)’ ‘싸가지 없다-(왕)싸가지’도 마찬가지다.
‘바가지를 긁다’ 같은 숙어도 한 요소가 전체 의미를 나타내기도 한다. ‘어디서 바가지야!’ ‘그만 긁어!’ 전체 의미를 한 낱말이 넘겨받은 것이다. ‘밥맛이다’는 이게 과도하게 작동한 예이다. 뭔가가 ‘없다’는 것은 앞말 전체를 부정하는 것이라 매우 중요하다. ‘없다’를 지우고 부정의 의미를 앞말에 모두 넘겨주는 건 큰 모험이 아닐 수 없다. 가끔 말은 선을 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