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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혜진, 노동 더불어 숲]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등록 2019-11-21 18:15수정 2019-11-22 02:35

김혜진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상담을 위해 만난 그 젊은 노동자는 몹시 피곤해 보였다. 잔업 때문에 밤 9시가 되어서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일까. 그는 토요일에는 특근을 하고, 일요일은 하루 종일 잠을 자거나 누워서 텔레비전을 본다고 했다. 하루를 그렇게 빈둥거리지 않으면 다음 주를 버텨낼 수 없기 때문이란다. 회사와 집을 왔다 갔다 하는 삶. 친구도 만나고 싶고, 영화도 보고 싶고, 불합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공부도 하고 싶지만, 귀찮아 쉽게 포기한다고 했다. 그의 피곤한 얼굴을 보며 인간다운 삶의 조건에 대해 생각한다.

헌법 32조는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고 말한다. 인간의 존엄성은 임금만으로는 보장되지 않는다. 편하게 쓸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49년 전, 전태일 열사의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외침은 장시간 노동으로 피폐해진 노동자의 삶을 증언한 것이었다. 기업은 늘 노동시간을 늘리려고 한다. 적은 수의 노동자를 장시간 노동 시키면 노동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이다. 노동시간의 상한선을 법으로 정하지 않으면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근로기준법에는 주 40시간이 명시되어 있다. 착각하지 말자. 한국의 노동시간은 주 40시간이며, 당사자의 합의로 일주일에 12시간을 연장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은 기업도, 언론도, 정부도, 주 52시간제라고 말한다. 주 52시간을 일하려면 하루 10시간 이상을 일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와 기업은 노동자가 하루 10시간만 일하면 기업이 망한단다. 그래서 탄력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을 확대하여 13주 연속으로 주 64시간을 일하게 하자고 한다.

주 64시간을 일하려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밤 10시에 별 보며 퇴근하고, 토요일에도 나와 일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일하고 자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런데 사람은 일만 하고 살 수는 없다. 친구도 만나야 하고, 문화생활도 해야 하며, 집에서 밥도 먹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삶을 보장할 수 없다고 한다. 기업과 국회, 정부가 나서서 ‘밤 10시까지의 노동을 보장하라’고 외친다. 이들에게 노동자의 삶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이렇게 일하면 노동자는 죽는다. 노동자가 세달 동안 평균 60시간 일해서 뇌혈관 질환이나 심장 질환이 생기면 ‘과로로 인한 산재’로 인정된다. 이렇게 일하면 몸이 견딜 수 없다는 것을 정부도 알고 있다는 뜻이다. 장시간 일할 경우 육체적으로도 아프고 죽지만, 사회적으로도 죽는다. 친구와 가족관계를 유지하기 어렵고, 회사 외의 다른 관계를 만들 수도 없다. 세상 돌아가는 것에 관심 갖기도 어렵고, 사회의 변화를 위한 일에 동참하기도 어렵다. 이게 인간답게 사는 건가.

정부는 탄력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가 예외적으로 장시간 노동이 필요한 때를 대비하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임시·간헐적 업무에는 비정규직 채용이 가능하고 탄력근로시간제도 3개월 단위 기간으로 도입되어 있다. 그런데도 탄력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을 확대하려는 것은 주 40시간제를 무력화하기 위함이다. 이미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멕시코 다음으로 세계 최장 노동시간 국가이고, ‘저녁이 있는 삶’이 구호가 될 정도로 길게 일하는 사회이다. 정부와 기업은 이 장시간 노동 체제를 유지하겠노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정부는 300인 미만 사업장에서 노동시간을 위반할 경우 처벌을 사실상 유예하는 계도기간을 두겠다고 발표했다. 기업들한테 걱정 말고 장시간 노동을 시키라는 신호이다. 오늘도 피곤에 찌든 노동자들은 죽어간다. 육체적으로도 죽고, 사회적으로도 죽어간다. ‘제발 건강하게 일하자’는 이 평범한 요구조차도 수용할 수 없다면 이 나라 기업과 정부는 왜 존재하는가. 49년 전 전태일처럼 우리는 외친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근로기준법 개악을 중단하라.” 노동시간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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