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지난해 김영민 교수가 쓴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칼럼은 젊은이들에게 한줄기 빛이었다. 친척이 자신의 근황에 대해 물으면 ‘당숙이란 무엇인가’ ‘추석이란 무엇인가’ ‘결혼이란 무엇인가’와 같이 상대의 허를 찌르는 질문으로 맞받아치라는 글이었다. 풍문에 따르면, 몇몇 젊은이들이 진짜로 진격의 맞받아치기를 감행했다고 한다. 예상대로 모두 장렬히 패퇴했으며 친척들은 명절 때 다시는 안 모이기로 했다고 한다. 통쾌함에 비해 손실이 컸다. 차라리 어른이 아예 질문을 하지 않으면 어떨까. 물론 어려운 일이다. 나이 들수록 말이 많아진다. 듣는 사람도 없는데 혼잣말하는 숱한 어른을 보라. 말하기는 권력이다. 말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이 권력자다. 주인과 노예, 위와 아래,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강하게 분리되어 있을수록 더 심하다. 권력자의 말하기는 겉으론 아니어도 결국 명령이다. ‘운동화가 편한가요?’라고 물으면, 직원은 다음날 구두로 갈아 신는다. 에둘러 말하는 간접화법으로 명령한다. 집도 마찬가지다. ‘결혼 언제 할래?’라는 질문은 결혼하라는 명령이고 ‘취직은 했어?’는 취직하라는 명령이다. 그래서 어른은 질문을 자제할 책임이 있다. 질문하지 말고 감탄하라. ‘하늘이 높구나’ ‘그새 풀이 많이 자랐네’ ‘의젓해졌구나’. 미래를 묻지 말고 과거를 얘기하라. ‘할아버지는 이런 분이셨다’ ‘여기가 엄마가 다닌 학교란다’. 소소한 얘기를 하라. ‘이렇게 하면 밤이 모양 나게 잘 깎여’ ‘전을 망가뜨리지 않고 넘기는 방법을 알려주마’. 질문은 젊은이들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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