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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삼성 입장문 독해법 / 송경화

등록 2019-06-25 17:47수정 2019-06-26 13:48

송경화
산업팀 기자

삼성은 지난 14일 바이오 계열사 명의로 ‘입장문’을 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불법 경영권 승계 의혹 및 회계사기에 대해 검찰이 수사를 시작한 뒤 삼성은 처음으로 “송구하다”며 사과했다. 이례적이었다. 앞서 삼성전자 명의로 두차례 낸 ‘참고자료’는 보도 자제를 요청하는 ‘압박용’이었으니 언뜻 ‘이제 바짝 엎드렸구나’ 싶을 만했다. 그러나 행간은 그렇지 않다. 김앤장의 자문을 거쳐 발표됐다는 4줄짜리 입장문은 뜯어봐야 정확한 입장과 전략이 읽힌다.

① 증거 인멸 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 물의를 빚은 것에 대해 대단히 송구하고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② 임직원들이 구속되고 경영에 차질이 빚어진 데 대해서도 막중한 책임을 느낀다.

③ 앞으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회사의 자료 관리를 포함한 경영 시스템을 점검, 정비해서 준법경영을 철저히 실천하겠다.

④ 진행중인 검찰 수사에도 성실한 자세로 적극 협조해서 진상이 신속히 확인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송구”는 “물의” 탓인데 원인은 “증거 인멸”에 국한된다. 검찰이 증거 인멸과 관련한 내부 증언을 받아내고 물증을 확보했으니, 이른바 ‘빼박캔트’(빼도 박도 못한다)다. ‘공장 바닥’까지 뜯는 후진적 행태가 만천하에 드러나 여론은 급속히 악화됐다. 삼성 내부에서조차 부끄럽다고들 했다. 인정할 건 일단 인정하겠다고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본류로 여겨지는 불법 경영권 승계와 회계사기 문제엔 철저하게 선을 긋고 있다. “재발”하지 않게 “점검”하겠다고 언급한 대목은 “회사 자료 관리를 포함한 경영 시스템”에 한정된다. 서버를 뜯고 바닥에 묻는 짓은 다시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대신 눈에 띄는 건 “경영 차질”을 언급하고, 진상이 “신속히” 확인되도록 하겠다고 강조한 점이다. 허투루 넣은 말은 하나도 없다고 보면 된다. 최근 삼성은 언론의 개별 취재에 응하며 비슷한 표현을 반복해왔다. 증거 인멸로 임직원이 하나 둘 구속되기 시작할 때부터 “다 잡아가면”이라는 말이 자주 들렸다. “바이오 사업 해야 하는데 다 잡아가면 어떡하느냐” “삼성전자 사업지원티에프(TF)는 계열사 업무를 조율하는 곳인데 (소속 임원을) 다 잡아가면 어떡하느냐”는 식이다. 처음엔 농담처럼 들었는데 반복해 듣다 보니 인이 박일 정도였다.

하고 싶은 말은 “경영 차질”이었다. 이즈음 여러 신문과 방송은 삼성이 수사 탓에 “발이 묶였다”고 앵무새처럼 되뇌었다. 이 대목에서 증거 인멸은 “부수적 논란”으로 치부된다. 미-중 무역분쟁 역시 “이렇게 어렵기만 한 상황”에 동원됐고, 화웨이 대신 더 많이 팔려나갈 삼성 스마트폰 전망에 삼성 쪽은 연일 손사래쳤다.

삼성이 16일 꺼내든 ‘참고자료’는 화룡점정이었다. 제목은 ‘이재용 부회장, 급변하는 경영환경 속 전략행보 가속화’였다. 삼성전자는 불과 이틀 전 바이오 계열사 명의의 “송구” 입장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태도로 이 부회장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 부회장이 투자 현황을 직접 챙기고 있다”며 지난해 그가 석방된 뒤 발표한 투자 계획을 강조하며 여론에 상기시켰다. 이 부회장의 발언까지 직접 공개하며 이례적으로 자료를 낸 이유를 묻자 삼성 쪽은 답했다. “다 잡아갔잖아요. 누가 하냐고요. 그래서 이 부회장이 어쩔 수 없이 나선 것입니다.”

이 부회장 소환을 두고 검찰은 숨고르기를 하고 있다. 대법원은 불법 경영권 승계 문제 심리를 지난 21일 마쳤다. 선고는 8월께로 예상된다. 시장에서는 그 전에 삼성이 여론 환기를 위해 투자 계획을 또 발표할 수 있다는 전망이 쏟아진다. 삼성은 증거 인멸에 대해선 “할 말이 없다”고들 하지만 회계사기 등과 관련해선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며 ‘붙어볼 만하다’는 태세다. 이제부터 진짜 싸움이라 여기는 듯하다.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태도다.

freehw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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